차례대로 하나 트래블로그, 하나 크로스마일(단종), 신한 쏠트래블 체크카드./자료=각사 홈페이지 캡처
바야흐로 트래블카드 춘추전국시대다. 9월 추석 황금 연휴를 앞두고 카드사들의 '트래블 전쟁'이 한창이다.
카드업계에 따르면 올해 7월 누적 카드 해외 결제 금액은 13조7809억원. 전년 동기 대비 20% 늘었다. 하나카드, 현대카드, 신한카드의 해외 결제가 크게 늘었다. 각사별 증가율은 하나카드 57%, 현대카드 36%, 신한카드 22% 순이다.
대부분의 트래블카드는 환전 수수료 무료, 해외 현지 ATM 출금 수수료 무료를 앞세워 마케팅하고 있다. 실시간으로 원하는만큼 금액을 환전할 수 있어, 여행 후 '동전'이 남지 않는 것도 장점이다.
그런데 이런 혜택, 언제까지 유지될 수 있을까.
■ 혜자카드의 운명, 혜택 축소하다 끝내 단종
세계 어디든 무료라고 해놓고 수수료 나오던데?
'혜택은 시점에 따라 변경될 수 있습니다'. 카드사들마다 잊지 않고 기입해 놓는 문구를 이용자들도 꼭 기억해야 한다. 카드사들이 카드 수수료나 연회비 혜택을 축소하다가 무이자 기간을 단축하고, 끝내 단종되는 경우가 다반사기 때문이다. 일명 '혜자 카드'라 불리는 많은 카드들은 '혜택 축소 → 갱신 금지 →단종'의 수순을 밟는다.
특히 여행 매니아들 사이에서는 '마일리지 카드'로 뒷통수를 맞은 기억이 아직 생생하다. 한 때 항공 마일리지의 끝판왕, 전설의 여행 카드로 불렸던 '하나 크로스마일리지 카드'가 2018년 단종되면서 많은 이용자들이 상실감을 느끼기도 했다.
한때 여행자들 사이에서 전설의 혜자 카드로 불렸던 '하나 크로스마일 카드'./자료=하나카드 홈페이지
트래블카드들도 비슷한 전철을 밟을 가능성이 농후해 보인다.
카드사 약관을 보면, 부가서비스 변경가능 사유에 '카드 이용 시 제공되는 포인트 및 할인 혜택 등의 부가서비스는 카드 신규출시 이후 3년 이상 축소·폐지 없이 유지된다'고 적시돼 있다. 부가서비스를 3년 이상 제공한 상태에 상품의 수익성이 현저히 낮아진 경우로 혜택을 변경할 수 있다는 의미다.
실제로 트래블로그의 경우, 싱가포르달러 환전 수수료 및 환율 우대 100% 혜택은 올해까지만 적용되는 것으로 전해졌다.
■ 사용할 수 없는 카드라고?
"도쿄 ATM기에서 '사용할 수 없는 카드'라고 나와서 엔화 잔뜩 환전해 놓은 거 무용지물됐어요."(하나카드 트래블로그)
"호텔 체크인할 때 보증금 신용카드로 하세요. 보증금 다시 들어와서 재환전 수수료 냈습니다."(신한 쏠트래블 체크카드)
"하나카드는 MRT(고속대중교통) 안되는 곳 있음"(하나카드 트래블로그)
"세부 공항에서 2만페소 출금하려다 카드 먹혔습니다."(신한 쏠트래블 체크카드)
여행자들 사이에서는 트래블카드 이용 후기와 주의점도 공유되고 있다. '수수료 무료'라는 광고만 기억하고 여행을 떠났다가 당황할 수 있다. 카드마다 세부적으로 재환전 수수료가 발생하거나, 현지 ATM의 개별 수수료가 부과되는 경우도 있다. 특히 현지 은행 등과 제휴를 맺지 못해 ATM 출금조차 안되는 경우가 있어 주의가 요구된다.
트래블카드들은 결제 시에는 혜택이 전혀 없고 해외결제 수수료, 환전 수수료 면제가 유일한 혜택인만큼, 보통 2% 이상 되는 신용카드 캐시백, 포인트 적립률을 고려해 해외에서도 일반 신용카드가 결제가 더 이득이라는 견해도 있다.
이러한 단점들에도 불구하고 트래블카드의 인기는 여전히 높다.
'트래블카드' 시장을 선도하고 있는 것은 대부분 '체크카드'다. 연회비가 없다는 장점 덕에 여행객들은 최소 두세 종류의 트래블카드를 들고 비행기에 오른다.
신한카드의 경우, 지난 2월 출시한 ‘신한 쏠(SOL)트래블 체크카드’가 발급 매수 100만장을 넘기면서 트래블카드계의 강자로 떠올랐다. 전 세계 공항 라운지 연 2회 무료 혜택이 선택의 가장 큰 이유로 꼽힌다.
하나카드는 ‘트래블로그’를 2022년 출시, 올해 가입자가 500만명을 돌파했다. 누적 환전액도 2조원을 넘었다. KB국민카드는 ‘트래블러스 체크카드’로, 우리카드는 ‘위비트래블 체크카드’로 트래블카드 시장에 뛰어들었다.
■ 결국 카드사들이 원하는 건 '신용카드'
사실 '연회비 없는 체크카드'는 카드사 입장에서 크게 재미 보기 힘든 상품이다.
카드 해외 결제 금액이 13조7809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대폭 늘었지만, 카드사들의 평균 연체율도 1.84%로 지난해에 비해 증가했다. 특히 하나카드는 위험 수준인 2%에 근접한 1.94%를 기록했다. 실적은 개선됐지만 ‘불황형 흑자’로 해석되는 이유다.
이런 이유로 '수수료 제로'의 제살 깎아먹기식 마케팅을 오래 유지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카드사들의 주요 비즈니스 모델인 '대출'로 고객을 유도하기 위해서는 결국 '신용카드' 형태로 옮겨갈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일례로 하나카드의 경우 지난 5월 트래블로그 신용카드를 출시했다. 트래블로그 체크카드에 적용된 수수료 면제 등 혜택을 기본으로 국내외 전 가맹점 1% 적립, 해외 가맹점 3% 적립 등 혜택을 더했다.
스마트한 이용자들 사이에선 오히려 중소형 카드사들의 상품이 '알짜'라는 말도 나온다. 상당수의 대형 은행 고객을 등에 업고 업계를 장악할 수 있는 대형사들과는 달리, 중소형 카드사들은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더 나은 혜택을 제시하고, 이용자들이 이탈하지 않도록 혜택의 기간도 오래 유지한다는 측면에서다.
한 카드 업계 관계자는 "규모가 작은 카드사들은 카드 단종 등으로 고객들이 빠져나가면 더 큰 타격을 입기 때문에, 대형사보다 더 경쟁력 있는 헤택을 제공하고 그 유지 기간도 긴 편"이라고 귀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