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개봉한 영화 '다우트(Doubt)'의 포스터. 퓰리처상을 수상한 존 패트릭 섄리의 동명 희곡이 원작이다. 작가가 직접 영화의 각본과 감독을 맡았고, 희곡과 마찬가지로 평단으로부터 호평을 받았다.(자료=네이버 영화) “잘못을 바로잡으려면 하나님에게서 멀어질 수도 있죠.” 1964년 미국의 한 성당을 배경으로 한 영화 ‘다우트(Doubt)’에서 알로이시스 수녀(메릴 스트립 분)는 플린 신부(필립 세이무어 호프만 분)를 의심합니다. 신도인 한 흑인 소년을 성적으로 유혹하고, 더럽혔다고 말이죠. 이를 확신한 그녀는 명확한 증거도 없이 신부를 죄인으로 몰아붙입니다. 자신의 확신을 증명하기 위해 유도 심문은 물론 거짓말도 서슴지 않습니다. 신부는 “확신(certainty)은 감정(emotion)이지 사실(fact)이 아니다”라고 강변하지만 수녀는 “필요하다면 교회법을 무시하고 지옥도 불사하겠다”며 전근을 종용합니다. 신부는 어이가 없어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합니다. “잘못을 바로잡으려면 민주주의에서 멀어질 수도 있죠.” 알로이시스 수녀에게서 최근 윤석열 대통령의 모습이 오버랩됐습니다. 윤 대통령은 “범죄자 집단인 야당이 자유민주주의 체제의 전복을 기도하고 있다”며 비상계엄을 선포했죠. 자기 확신에 경도된 나머지 국무위원들의 모든 반대를 뿌리치고 민의의 전당인 국회를 군홧발로 짓밟았습니다. 필요하다면 민주주의의 희생은 물론이고 지옥도 불사하겠다는 태도가 알로이시스 수녀와 묘하게 닮았습니다. 플린 신부처럼 국민들은 어이가 없어 말문이 막혔지요. “우리은행 검사 결과 발표를 미룬 건 매운맛으로 시장과 국민께 알리기 위함이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지난 20일 기자들에게 한 말을 접했을 때 솔직히 귀를 의심했습니다. ‘비상계엄’을 접했을 때만큼은 아니지만 충격적이기는 매한가지. 다들 계엄 사태가 경제에 미칠 여파를 최소화하기 위해 전전긍긍하고 있는 마당에 금융시장 안정을 책임져야 할 사람의 입에서 마치 라면 맛처럼 ‘순한 맛, 매운 맛’ 구분해 가며 “지금보다 더 강한 기조로 검사를 진행하겠다”는 말이 어떻게 튀어나올 수 있는 것일까. 도무지 그 정신세계가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알로이시스 수녀를 보면서 윤 대통령을 떠올렸듯, 이 원장을 보면서 윤 대통령이 떠올랐습니다. 왜 이런 연상 작용이 가능했을까.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사고의 매커니즘은 동일하기 때문일 겁니다. 이들은 모두 ‘내가 옳다’는 확신에 가득 차 있습니다. 내가 옳은 게 확실하다면 나는 무조건 이겨야 합니다. 옳은 것이 이기는 것이 정의니까요. 정의를 구현하기 위해서는 그 어떤 희생도 감수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알로이시스 수녀에게 그것은 신앙이었습니다. 하나님을 섬기겠다고 서약한 수녀가 자신만의 정의를 구현하려다 하나님을 저버리고 마는 어처구니없는 아이러니에 빠진 것이죠. 윤 대통령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자신만의 정의에 사로잡혀 지켜야 할 민주주의를 기꺼이 희생하는 우를 범합니다. 가장 극단적인 주객전도의 사례가 아닐까 합니다. 그렇다면 이 원장의 ‘그것’은 무엇일까. 자가당착의 끝판에 다다른 윤 대통령과 달리, 현재로선 ‘자신에게 쏟아지는 비난’ 정도인 것 같습니다. 금융감독원장 취임 이래 줄곧 자신이 생각하는 정의구현을 위해 그 어떤 비난도 감수할 수 있다는 태도를 견지해 왔죠. 도대체 이런 태도는 어떻게 형성되고 단단해지는 걸까. 단초는 ‘개인의 경험’에서 찾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무슨 근거로 내가 범죄자임을 확신하느냐는 플린 신부의 질문에 알로이시스 수녀는 “나는 사람들을 알아요(I know people)”라고 답합니다. ‘내 오랜 경험에 비춰보면 너는 파렴치한 범죄자 부류야’라고 단정 짓습니다. 법조계를 출입한 후배 기자들 전언에 따르면 이복현 원장은 ‘이재용 회장을 구속시킨 검사’라는 자부심이 대단했다고 합니다. 알려져있듯 삼성그룹의 로비력은 타의 추종을 불허합니다. 덕분에 창업주 이병철 회장은 물론이고, 2대 이건희 회장까지 많은 불법을 저지르고도 구속까지 가진 않았습니다. 기소조차 되지 않거나 기껏해야 집행유예였죠. 오죽하면 재벌은 어떤 범죄를 저질러도 3년 징역형에 5년 집행유예를 선고받는다는 ‘3-5 법칙’이라는 신조어까지 생겼을까요. 재벌 앞에만 서면 작아지는 이런 법조계의 흑역사를 깨트린 이가 바로 이복현 검사입니다. 사실 얼마나 많은 유혹과 압박이 있었겠습니까. 하지만 열혈검사 이복현은 이를 모두 뿌리치고 2017년 이재용 회장을 구속시키는데 성공합니다. 그 과정에서 재판장에게 대들 듯 따지기는 예사였고, 재판부 항의 차원에서 법정을 중도 퇴장하는 행동도 불사했다고 합니다. 이런 저돌적인 언행은 언론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고, 과거 재벌 재판의 흑역사가 소환되면서 재판의 공정성 논란으로 이어졌습니다. 언론을 자기편으로 끌어들여 불리한 국면을 뒤집는 것에 탁월한 재능을 보인 검사였다고 법조 기자들은 이복현 검사를 추억합니다. 강한 자기 확신을 바탕으로 모든 고난과 역경, 시련을 극복해 나가는 영웅의 서사를 써내려 간 것이죠. 자기 확신이 정상 범주를 벗어난 이에게 우리는 ‘도그마에 빠졌다’고 말합니다. 도그마는 이성과 논리가 통하지 않는 독단적인 신념을 이릅니다. 보고 싶은 대로 보고, 듣고 싶은 대로 듣고, 믿고 싶은 대로 믿는 것이죠. 요즘 젊은 세대 표현으로는 ‘정신 승리’입니다. 졌음에도 이겼다고 생각해버리고 마는…. 절대 다수의 사람들이 비상계엄은 잘못이라고 하는데도 윤 대통령은 잘못이 아니라고 합니다. 내 생각이 진리요 정의이니 그 무엇에게도 꺾이지 않겠다는 결연한 의지인 것입니다. ‘하나님도 까불면 나한테 죽는다’는 모 목사의 정신세계와 맞닿아 있습니다. 사람은 불완전한 존재입니다. 누구든 부지불식간 도그마에 빠질 수 있습니다. 도그마에 빠지지 않으려면 끊임없이 성찰해야 합니다. 주변의 많은 사람들과 의견을 주고받으며 이성적이고, 상식적이며, 합리적인 사고를 하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일개 범부가 그러할진대 많은 권한과 책임을 지닌 리더라면 더 각고의 노력이 필요함은 두말할 필요가 없겠지요. 상식적인 사람은 결코 진실이 하나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나에게 진실이 있듯, 타인에게도 진실이 있다고 믿습니다. 그리고 나의 진실이 소중하듯, 타인의 진실도 소중하게 여깁니다. 중국의 여류 소설가 다이허우잉은 이를 ‘저마다의 진실’이라고 표현하기도 합니다. 상식에서 한참 벗어난 비상계엄 사태를 겪으며 우리는 몇 가지 사실을 뼈저리게 깨닫고 있습니다. 윤석열이라는 사람을 몰라도 너무 몰랐고, 결과적으로 대통령을 잘못 뽑았다는 것입니다. 리더를 잘못 뽑은 대가를 온 국민이 톡톡히 치르고 있습니다. 성찰이 부족한 계몽주의자가 어디까지 폭력적일 수 있는지, 우리 공동체를 얼마나 위험에 빠트릴 수 있는지 우리는 소설이나 드라마가 아닌, 현실에서 생생하게 목도하고 있습니다. 더 끔찍할 정도로 우려스러운 건 잠재적인 윤석열이 우리 사회에 얼마나 분포하고 있는지 가늠조차 할 수 없다는 현실입니다. 영화 에일리언에서 가장 공포스러웠던 장면은 드디어 외계 생물을 제압했다고 안도하는 순간, 수없이 많은 새끼들이 알에서 깨어나길 기다리고 있는 장면이 클로즈업 될 때였습니다. “나는 대통령이 감옥이 아니라 병원에 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베르너 사세 함부르크대 명예교수가 얼마 전 한 인터뷰에서 말한 내용입니다. 한국을 사랑해서 반세기 동안 한국을 연구하고, 지금은 홍신자 무용가와 결혼해 전남 담양에서 살고 있다고 합니다. 그는 “대통령만이 아니라 한국 사회 전반에 뿌리내린 심각한 문제”라고 진단했습니다. 우리 사회 공포의 본질을 내국인이 아닌, 외국인이 더 정확히 꿰뚫어 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오로지 경쟁만 부추기는 한국의 교육이 돈과 권력만 좇는 지식인, 정치인을 낳았다. 그들이 학벌 좋고 지식은 많은 엘리트인지는 몰라도 타인과 공동체를 생각하는 가슴(마음)은 없다. 나치도 전부 지식인들이었다.” 하나님에게서 멀어진 알로이시스 수녀는 영화 말미에 “나는 의문(doubt)이 많다”며 오열합니다. 윤 대통령에게도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오열하는 순간이 올까요.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이 1992년 내놓은 ‘붉은돼지(紅豚)’에서 주인공 포르코 로소(Porco Rosso)는 “파시스트가 되느니 돼지로 사는 편이 낫다”고 말합니다. 포르코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려 합니다. - 편집자 주

[포르코의 뷰] 이복현의 '매운 맛'

최중혁 기자 승인 2024.12.26 09:31 의견 0
2008년 개봉한 영화 '다우트(Doubt)'의 포스터. 퓰리처상을 수상한 존 패트릭 섄리의 동명 희곡이 원작이다. 작가가 직접 영화의 각본과 감독을 맡았고, 희곡과 마찬가지로 평단으로부터 호평을 받았다.(자료=네이버 영화)


“잘못을 바로잡으려면 하나님에게서 멀어질 수도 있죠.”

1964년 미국의 한 성당을 배경으로 한 영화 ‘다우트(Doubt)’에서 알로이시스 수녀(메릴 스트립 분)는 플린 신부(필립 세이무어 호프만 분)를 의심합니다. 신도인 한 흑인 소년을 성적으로 유혹하고, 더럽혔다고 말이죠. 이를 확신한 그녀는 명확한 증거도 없이 신부를 죄인으로 몰아붙입니다. 자신의 확신을 증명하기 위해 유도 심문은 물론 거짓말도 서슴지 않습니다. 신부는 “확신(certainty)은 감정(emotion)이지 사실(fact)이 아니다”라고 강변하지만 수녀는 “필요하다면 교회법을 무시하고 지옥도 불사하겠다”며 전근을 종용합니다. 신부는 어이가 없어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합니다.

“잘못을 바로잡으려면 민주주의에서 멀어질 수도 있죠.”

알로이시스 수녀에게서 최근 윤석열 대통령의 모습이 오버랩됐습니다. 윤 대통령은 “범죄자 집단인 야당이 자유민주주의 체제의 전복을 기도하고 있다”며 비상계엄을 선포했죠. 자기 확신에 경도된 나머지 국무위원들의 모든 반대를 뿌리치고 민의의 전당인 국회를 군홧발로 짓밟았습니다. 필요하다면 민주주의의 희생은 물론이고 지옥도 불사하겠다는 태도가 알로이시스 수녀와 묘하게 닮았습니다. 플린 신부처럼 국민들은 어이가 없어 말문이 막혔지요.

“우리은행 검사 결과 발표를 미룬 건 매운맛으로 시장과 국민께 알리기 위함이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지난 20일 기자들에게 한 말을 접했을 때 솔직히 귀를 의심했습니다. ‘비상계엄’을 접했을 때만큼은 아니지만 충격적이기는 매한가지. 다들 계엄 사태가 경제에 미칠 여파를 최소화하기 위해 전전긍긍하고 있는 마당에 금융시장 안정을 책임져야 할 사람의 입에서 마치 라면 맛처럼 ‘순한 맛, 매운 맛’ 구분해 가며 “지금보다 더 강한 기조로 검사를 진행하겠다”는 말이 어떻게 튀어나올 수 있는 것일까. 도무지 그 정신세계가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알로이시스 수녀를 보면서 윤 대통령을 떠올렸듯, 이 원장을 보면서 윤 대통령이 떠올랐습니다. 왜 이런 연상 작용이 가능했을까.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사고의 매커니즘은 동일하기 때문일 겁니다.

이들은 모두 ‘내가 옳다’는 확신에 가득 차 있습니다. 내가 옳은 게 확실하다면 나는 무조건 이겨야 합니다. 옳은 것이 이기는 것이 정의니까요. 정의를 구현하기 위해서는 그 어떤 희생도 감수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알로이시스 수녀에게 그것은 신앙이었습니다. 하나님을 섬기겠다고 서약한 수녀가 자신만의 정의를 구현하려다 하나님을 저버리고 마는 어처구니없는 아이러니에 빠진 것이죠. 윤 대통령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자신만의 정의에 사로잡혀 지켜야 할 민주주의를 기꺼이 희생하는 우를 범합니다. 가장 극단적인 주객전도의 사례가 아닐까 합니다.

그렇다면 이 원장의 ‘그것’은 무엇일까. 자가당착의 끝판에 다다른 윤 대통령과 달리, 현재로선 ‘자신에게 쏟아지는 비난’ 정도인 것 같습니다. 금융감독원장 취임 이래 줄곧 자신이 생각하는 정의구현을 위해 그 어떤 비난도 감수할 수 있다는 태도를 견지해 왔죠.

도대체 이런 태도는 어떻게 형성되고 단단해지는 걸까. 단초는 ‘개인의 경험’에서 찾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무슨 근거로 내가 범죄자임을 확신하느냐는 플린 신부의 질문에 알로이시스 수녀는 “나는 사람들을 알아요(I know people)”라고 답합니다. ‘내 오랜 경험에 비춰보면 너는 파렴치한 범죄자 부류야’라고 단정 짓습니다.

법조계를 출입한 후배 기자들 전언에 따르면 이복현 원장은 ‘이재용 회장을 구속시킨 검사’라는 자부심이 대단했다고 합니다. 알려져있듯 삼성그룹의 로비력은 타의 추종을 불허합니다. 덕분에 창업주 이병철 회장은 물론이고, 2대 이건희 회장까지 많은 불법을 저지르고도 구속까지 가진 않았습니다. 기소조차 되지 않거나 기껏해야 집행유예였죠. 오죽하면 재벌은 어떤 범죄를 저질러도 3년 징역형에 5년 집행유예를 선고받는다는 ‘3-5 법칙’이라는 신조어까지 생겼을까요. 재벌 앞에만 서면 작아지는 이런 법조계의 흑역사를 깨트린 이가 바로 이복현 검사입니다.

사실 얼마나 많은 유혹과 압박이 있었겠습니까. 하지만 열혈검사 이복현은 이를 모두 뿌리치고 2017년 이재용 회장을 구속시키는데 성공합니다. 그 과정에서 재판장에게 대들 듯 따지기는 예사였고, 재판부 항의 차원에서 법정을 중도 퇴장하는 행동도 불사했다고 합니다. 이런 저돌적인 언행은 언론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고, 과거 재벌 재판의 흑역사가 소환되면서 재판의 공정성 논란으로 이어졌습니다. 언론을 자기편으로 끌어들여 불리한 국면을 뒤집는 것에 탁월한 재능을 보인 검사였다고 법조 기자들은 이복현 검사를 추억합니다. 강한 자기 확신을 바탕으로 모든 고난과 역경, 시련을 극복해 나가는 영웅의 서사를 써내려 간 것이죠.

자기 확신이 정상 범주를 벗어난 이에게 우리는 ‘도그마에 빠졌다’고 말합니다. 도그마는 이성과 논리가 통하지 않는 독단적인 신념을 이릅니다. 보고 싶은 대로 보고, 듣고 싶은 대로 듣고, 믿고 싶은 대로 믿는 것이죠. 요즘 젊은 세대 표현으로는 ‘정신 승리’입니다. 졌음에도 이겼다고 생각해버리고 마는…. 절대 다수의 사람들이 비상계엄은 잘못이라고 하는데도 윤 대통령은 잘못이 아니라고 합니다. 내 생각이 진리요 정의이니 그 무엇에게도 꺾이지 않겠다는 결연한 의지인 것입니다. ‘하나님도 까불면 나한테 죽는다’는 모 목사의 정신세계와 맞닿아 있습니다.

사람은 불완전한 존재입니다. 누구든 부지불식간 도그마에 빠질 수 있습니다. 도그마에 빠지지 않으려면 끊임없이 성찰해야 합니다. 주변의 많은 사람들과 의견을 주고받으며 이성적이고, 상식적이며, 합리적인 사고를 하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일개 범부가 그러할진대 많은 권한과 책임을 지닌 리더라면 더 각고의 노력이 필요함은 두말할 필요가 없겠지요. 상식적인 사람은 결코 진실이 하나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나에게 진실이 있듯, 타인에게도 진실이 있다고 믿습니다. 그리고 나의 진실이 소중하듯, 타인의 진실도 소중하게 여깁니다. 중국의 여류 소설가 다이허우잉은 이를 ‘저마다의 진실’이라고 표현하기도 합니다.

상식에서 한참 벗어난 비상계엄 사태를 겪으며 우리는 몇 가지 사실을 뼈저리게 깨닫고 있습니다. 윤석열이라는 사람을 몰라도 너무 몰랐고, 결과적으로 대통령을 잘못 뽑았다는 것입니다. 리더를 잘못 뽑은 대가를 온 국민이 톡톡히 치르고 있습니다. 성찰이 부족한 계몽주의자가 어디까지 폭력적일 수 있는지, 우리 공동체를 얼마나 위험에 빠트릴 수 있는지 우리는 소설이나 드라마가 아닌, 현실에서 생생하게 목도하고 있습니다. 더 끔찍할 정도로 우려스러운 건 잠재적인 윤석열이 우리 사회에 얼마나 분포하고 있는지 가늠조차 할 수 없다는 현실입니다. 영화 에일리언에서 가장 공포스러웠던 장면은 드디어 외계 생물을 제압했다고 안도하는 순간, 수없이 많은 새끼들이 알에서 깨어나길 기다리고 있는 장면이 클로즈업 될 때였습니다.

“나는 대통령이 감옥이 아니라 병원에 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베르너 사세 함부르크대 명예교수가 얼마 전 한 인터뷰에서 말한 내용입니다. 한국을 사랑해서 반세기 동안 한국을 연구하고, 지금은 홍신자 무용가와 결혼해 전남 담양에서 살고 있다고 합니다. 그는 “대통령만이 아니라 한국 사회 전반에 뿌리내린 심각한 문제”라고 진단했습니다. 우리 사회 공포의 본질을 내국인이 아닌, 외국인이 더 정확히 꿰뚫어 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오로지 경쟁만 부추기는 한국의 교육이 돈과 권력만 좇는 지식인, 정치인을 낳았다. 그들이 학벌 좋고 지식은 많은 엘리트인지는 몰라도 타인과 공동체를 생각하는 가슴(마음)은 없다. 나치도 전부 지식인들이었다.”

하나님에게서 멀어진 알로이시스 수녀는 영화 말미에 “나는 의문(doubt)이 많다”며 오열합니다. 윤 대통령에게도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오열하는 순간이 올까요.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이 1992년 내놓은 ‘붉은돼지(紅豚)’에서 주인공 포르코 로소(Porco Rosso)는 “파시스트가 되느니 돼지로 사는 편이 낫다”고 말합니다. 포르코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려 합니다. -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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