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은철 GC녹십자 대표.(사진=이한울 기자)
“백신과 혈액제제라는 전통적인 두 기둥, 일반의약품(OTC)과 만성질환 등 일차 진료라는 도전적인 두 영역, 그리고 국내와 글로벌이라는 확장된 두 개의 그라운드가 상호 보완하고, 상호 강화하며 상호 견인하면서 위기를 넘고 성장을 이끄는 강한 동력이 되리라 확신한다”
허은철 GC녹십자 대표가 2025년 신년사에서 한 말이다. 올해 GC녹십자는 면역결핍증 치료제 알리글로와 헌터증후군 치료제 헌터라제, 백신을 앞세워 글로벌 제약사로 나아감과 동시에 최대 매출 경신을 노리고 있다. 이러한 성과는 11년째 GC녹십자를 이끌고 있는 허은철 대표의 노력의 결과로 평가된다.
23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허 대표는 지난 2015년 조순태 부회장과 함께 녹십자 공동대표이사에 오르자마자 면역글로블린 5% 제품으로 미국 식품의약국(FDA)허가에 도전했다. 하지만 2016년 11월 FDA가 제조 공정 자료 보완을 지적했고 22017년 9월 추가 보완까지 요청해 허가가 지연됐다. 이에 따라 2021년 고농도인 10% 약물(현재의 알리글로)로 허가를 추진했고 2023년 말에야 허가 획득에 성공했다.
약 10년만에 미국 문턱을 넘은 알리글로는 지난해부터 본격적인 실적 성장세에 진입했다. 알리글로는 지난해 7월 GC녹십자의 미국 자회사 GC바이오파마 USA를 통해 출시됐다. 지난해 알리글로의 매출은 약 450억원을 기록했다. GC녹십자는 올해 알리글로의 미국 시장 매출 확대를 본격화해 1500억~2000억원 대의 매출을 올리겠다는 계획이다. 미국 면역글로불린 시장은 약 16조원(116억 달러) 규모로 지난 10년간 연 평균 10.9%의 성장률을 보이고 있다. 녹십자는 매년 50% 이상의 성장률 기록하면서 시장점유율을 확대해 나간다는 전략이다.
또한 GC녹십자는 알리글로의 안정적인 원료 공급처 확보를 위해 1380억원을 투자해 미국 혈액원 ABO홀딩스 지분 전량을 인수했다. ABO 홀딩스는 미국 캘리포니아주에 위치한 회사로 뉴저지, 유타, 캘리포니아 등 3개 지역에 6곳의 혈액원을 운영하고 있다. 텍사스주에 2곳의 혈액원이 추가로 건설 중이며 완공이 되는 오는 2026년부터 총 8곳의 혈액원이 가동될 예정이다. 회사 측은 이번 혈액원 인수로 혈장분획제제의 원료 확보에서부터 생산, 판매에 이르기까지 수직계열화가 완성됐다고 설명했다.
허 대표의 글로벌 의지는 확고한 것으로 유명하다. 미국 진출을 준비하면서 사명을 GC녹십자로 바꾼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또한 2018년에는 미국 워싱턴주 시애틀에 신규 법인 큐레보를 설립했다. 차세대 먹거리인 프리미엄 백신의 개발 및 상용화를 용이하게 진행하기 위해서다. 프리미엄 백신은 기초 백신보다 가격이 높고 성인 위주로 접종되며 미국과 유럽을 중심으로 시장이 형성돼 있다.
알리글로 뿐 아니라 헌터증후군 치료제 헌터라제도 글로벌 공략에 빛을 발하고 있다. 녹십자는 지난해 러시아 연방 보건부로부터 자사의 중증형 헌터증후군 치료제인 '헌터라제 ICV'의 품목허가를 획득했다. 러시아에서 중증형 헌터증후군 치료제 품목허가는 이번이 최초다. 녹십자는 2021년 세계 최초로 일본에서 헌터라제ICV의 품목허가를 받았고 러시아가 세계 두 번째 품목허가 국가가 됐다.
헌터라제 ICV는 머리에 삽입한 장비를 이용해 약물을 뇌실에 직접 투여함으로써 중추신경 증상을 개선시키는 방식이다. 이는 인지능력을 상실하거나 심신운동 발달지연 등 중추신경 손상에 기인한 증상까지 완화해 준다. 전 세계 헌터증후군 환자 중 중추신경손상을 보이는 중증 환자 비율은 약 70%에 이르는 만큼 러시아 품목허가로 헌터라제 수출액은 크게 상승할 것으로 회사 측은 기대하고 있다. 판매는 올해 본격적으로 진행될 예정이다.
■오너 3세 취임 11년 차…글로벌 제약사로 비상시작
(출처=금융감독원 사업보고서)
허은철 대표는 허채경 한일시멘트 창업주의 손자이자 고(故) 허영섭 전 GC녹십자 회장의 차남, 허일섭 현 GC(녹십자홀딩스)회장의 조카다. 1972년생으로 서울대를 졸업하고 미국 코넬대 식품공학 박사 과정을 마쳤다. 1998년 녹십자 경영기획실에 입사한 후 목암생명과학연구소와 GC녹십자 R&D기획실을 거쳐 2009년 최고기술경영자(CTO)로 승진했다. 기획조정실장을 역임하며 경영 전문성도 키웠다. 2015년 공동 대표직을 맡게 됐고 이듬해인 2016년 3월부터 단독대표에 올라 회사의 성장을 순조롭게 이끌어 왔다.
허 대표 취임 이후 GC녹십자 매출은 ▲2016년 1조1979억원 ▲2017년 1조2879억원 ▲2018년 1조3349억원 ▲2019년 1조3571억원 ▲2020년 1조5041억원 ▲2021년 1조5378억원 ▲2022년 1조7113억원으로 점차 증가했다. 다만 2023년에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해 헌터라제 수출이 줄었고 코로나19 엔데믹 전환으로 독감 백신 매출이 줄어들면서 1조6266억원으로 전년 대비 4.9% 줄어들었다. 의정갈등 여파가 지속됐던 지난해의 경우 매출 1조6900억원, 영업이익 510억원 수준으로 추정된다.
업계는 알리글로의 성공에 대한 기대감이 고조되고 있는 만큼 허 대표가 잠시 주추했던 실적을 만회하고 글로벌 사업을 본궤도에 올려놓아 새롭게 도약을 해낼 수 있을지 주목하고 있다.
허은철 녹십자 대표는 신년사를 통해 “우리의 궁극적인 목표는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선도하는 것”이라며 “제2, 제3의 신약이 연이어 해외 시장에서 성공을 거두고 전 세계가 우리의 일터가 되고, 마침내 선진 글로벌 제약사로 자리매김하는 날이 반드시 올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