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못하던 것도 잘하자’
메리츠증권이 달라졌다. 종합금융회사(이하 종금) DNA를 십분활용해 차별화된 성장전략을 꾀했던 메리츠증권이 브로커리지 시장은 물론 기업금융(IB)까지 확장 시나리오를 전개 중이다. 당장 리테일 시장에 내놓은 ‘제로 수수료’ 정책은 업계 반향을 일으키고 새롭게 꾸려질 IB부문에 대한 경계심도 감지되기 시작했다. 강점 극대화에 집중했던 메리츠증권은 왜 이렇게 달라진걸까.
■ 장원재 사장의 '슈퍼365', 굴욕적 MS 반등하나
4일 메리츠증권에 따르면 ‘슈퍼365’ 계좌의 잔고는 2일 기준 4조3000억원으로 집계됐다. 불과 1년 전 3000억원에 그쳤던 잔고가 단기간 4조원 가량 불어난 것은 단연 ‘제로 수수료’ 이벤트 효과다.
메리츠증권이 '슈퍼365'를 출시한 것은 지난 2022년 12월. 당시 메리츠증권은 예수금에 대해 제로 수준이던 예수금에 대해 연 3.15%, 외화 4.0%라는 획기적 금리를 내세우면서 호평을 받았다.
특히 이 상품은 장원재 사장이 S&T 부사장을 맡고 있던 당시 직접 구상해 내놓은 결과물이었던 만큼 리테일 확대에 대한 의지로 받아들여졌다.
하지만 마음 급한 메리츠증권의 성에 찰 정도로 자금이 불어나지는 않았다. 메리츠증권의 실적에서 브로커리지가 차지하는 비중은 2022년 3% 수준에 불과했고 지난해 3분기 기준으로도 7% 수준에 만족해야 했다. 리테일 고객 예탁자산은 지난 2022년 4분기 21조3000억원에서 2023년 4분기 23조8000억원으로 2조5000억원 증가에 그쳤다.
결국 지난 11월 메리츠증권은 슈퍼365계좌 고객들에게 2026년 말까지 국내 및 미국 주식 거래 수수료에 환전수수료까지 ‘제로화’를 선언했다. 업계에서는 수수료 경쟁 재점화 가능성에 불편함을 숨기지 않고 있지만 메리츠증권에게 이같은 선택은 피할수 없는 "절박함"이었다는 전언이다. 어느새 6조원대까지 불어난 자기자본에도 부동산금융에 치우쳐진 사업구조의 한계는 극복해야 할 과제였다는 것. 지난 2022년까지 폭발적이었던 메리츠증권의 성장세는 2023년과 2024년 부동산 경기 침체와 맞물려 확연히 움츠러든 상태다.
“내부에서 수년째 이어져온 고민입니다. 이익을 창출해야 하는 기업의 자기자본이 이전과는 확연히 다르게 불어났으니 몸집에 걸맞는 사업구조가 필요하잖아요. 퇴직연금 상품 공급업자로서의 비중 확대와 ELS 비즈니스, 트레이딩 수익 창출 등도 그 일환이고요. 하지만 리테일 시장 점유율이 1% 미만이니 사실 증권사라고 하기엔 부끄럽기 짝이 없죠. 더이상 미룰 수 없다고 판단했고 현재 내부에서 상당히 절박한 심정으로 노력 중입니다.”
2026년까지 제로 수수료 정책으로 인해 발생하는 비용은 연간 총 1000억원 수준에 달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하지만 견고한 진입장벽을 뚫을 수 있다면 충분히 감내할 수준이다.
당장 수조원대 자금이 유입되고 있지만 웃음 짓기엔 이르다. 2026년말까지 유입된 고객들을 '체리피커'가 아닌 '집토끼'로 만들기 위해선 새로운 서비스와 상품 경쟁력을 보강해야 한다는 숙제는 이제부터 시작이기 때문이다.
■ 정통 IB로의 확장, 맨파워 강화
(사진=정영채 전 NH투자증권 사장)
사업구조 확장 시나리오는 리테일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메리츠증권은 부동산 파이낸싱프로젝트(PF)에 치우쳐졌던 IB 포트폴리오 다변화를 위해 정영채 전 NH투자증권 사장을 상임고문으로 영입했다. 제대로 판을 키워보겠다는 의지를 그대로 드러낸 것이다.
정 전 사장이 적을 옮긴 것은 2005년 대우증권 이후 이번이 처음이다. 20여년간 IB부문의 성장을 이끌었던 그가 메리츠증권행을 택한 것은 오너 회사가 갖는 특유의 경영 마인드와 메리츠의 확고한 경영철학이 작용했을 것으로 풀이된다.
반면 메리츠증권 입장에서는 당장 ECM(주식자본시장)/DCM(부채자본시장) 등 전통 IB 부문에서 취약했던 네트워크 확대와 경쟁력 있는 인력 확보 효과부터 기대하고 있다. 정 전 사장이 NH투자증권 IB 부문의 시스템 구축부터 모든 작업을 진두지휘했던 만큼 경쟁력 강화에도 속도가 붙을 것이란 전망이다.
한 대형 증권사 임원은 “메리츠증권이 종금에서 출발해 부동산 경기 활황을 타고 이례적인 성장 스토리를 만들어왔지만 시황 등을 감안했을 때 한쪽에 쏠린 사업구조로는 성장에 대한 한계점이 분명했다”며 “아이디어와 상품성이 핵심인 리테일, 맨파워 영향이 큰 IB에서 승부수를 띄운 만큼 변화의 신호탄은 확실히 쏘아올렸으니 당분간 메리츠의 플레이에 대해 주목해봐야 할 것 같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