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나인스토리 제공
“편견에 가득차서는 모두 나를 만나기 전부터 분석하고 점수까지 매겨놓더군요”
2015년 초연 이후 벌써 네 번째 공연되고 있는 연극 ‘엘리펀트 송’은 8년째 정신병원에서 살고 있는 열다섯 살 소년 마이클의 이해할 수 없는 이야기들로 시작된다. 갑자기 행방이 묘연해진 로렌스를 찾기 위해 정신과 의사 그린버그 박사는 마이클을 찾는다. 마이클이 마지막으로 로렌스를 본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마이클은 수많은 이야기를 꺼내놓으면서도 매번 코끼리 이야기로 빠지기 일쑤다.
수간호사 피터슨은 마이클의 두뇌게임에 휘말리지 말라고 수차례 경고한다. 이 경고는 그린버그 박사에게 하는 말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관객들에게 하는 말이기도 했다. 그린버그 박사는 피터슨의 말을 가볍게 여기고 로렌스의 행방을 알아내기 위해 마이클의 위험한 거래를 받아들인다.
마이클은 그린버그 박사의 질문에 대답을 하는 조건으로 세 가지를 요구한다. 첫째, 자신의 진료기록을 보지 말 것. 둘째, 원하는 대답에 대한 보상으로 초콜릿을 줄 것. 셋째, 피터슨을 이 문제에서 완전히 배제시킬 것.
거래가 성사된 이후에도 마이클은 도무지 알 수 없는 코끼리 이야기로 관객들을 홀린다. 극은 ‘스릴러’로 포장된 채 그린버그 박사와 관객들로 하여금 ‘로렌스 찾기’에 여념이 없게 만든다. 그의 교묘한 이야기, 대화술에 모두가 홀릴 수밖에 없다.
사진=나인스토리 제공
그런데 마이클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중요한 본질을 놓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에게서 상처 받은 어린 아이의 모습이 조금씩 비친다. 로렌스가 아닌, 마이클에게 시선을 두면서 가려졌던 진실이 조금씩 드러나기 시작한다. 그가 왜 코끼리에 그토록 집착했는지, 모든 대화의 끝에 왜 코끼리가 존재했는지의 비밀도 서서히 밝혀진다.
관객들 역시 정신병원에 오랜 기간 입원한 마이클의 이해할 수 없는 말들에 편견을 가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 편견이 걷히는 순간 관객들은 먹먹함, 그리고 걷잡을 수 없는 슬픔과 죄책감에 사로잡히게 된다. 마이클이 내뱉은 그 어떤 말도 ‘장난’은 없었다.
정일우는 이번 시즌의 마이클 역으로 9년 만에 연극 무대에 섰다. 정일우는 단출한 무대 구성과 조명 속에서 지독한 애정결핍과 트라우마의 결정체인 마이클을 섬세하게 표현해냈다. 특히 극의 후반 보여주는 감정의 변화는 관객들의 눈물을 훔치게 했다. 정일우와 호흡을 맞춘 그린버그 역의 고영빈, 피터슨 역의 이현진은 무채색에 가까운 톤에서 오는 진중함과, 그 속에 반전의 웃음 포인트까지 겸비하며 관객들의 몰입을 높인다.
연극 ‘엘리펀트 송’은 2020년 2월 2일까지 서울 종로구 예스24스테이지 3관에서 공연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