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조선소 방문한 마크 켈리 애리조나주 상원의원 (사진=연합뉴스)
미 해군 함정 시장 개방 소식이 전해지자 국내 특수선 분야에서 양강 구도를 형성해 온 HD현대중공업과 한화오션에 대한 기대감이 높아지고 있다. 최근 미국에서 발의된 ‘해군 준비태세 보장법’과 ‘해안경비대 보장법’은 미 해군 함정 신조 시장 개방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보다 먼저 발의된 ‘미국의 번영과 안보를 위한 조선업과 항만시설법’(SHIPS for America Act, 이하 선박법)은 미국이 자국 조선업 강화를 목표로 삼고 있어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는 분석도 나온다.
국내 수상함, 잠수함 등 특수선 분야는 HD현대중공업과 한화오션이 비슷한 기술력으로 양강 구도를 형성하고 있다. 수상함에서는 HD현대중공업이, 잠수함 부문에서는 한화오션이 근소한 차이로 수주실적에서 앞선다. 특히 최근 양사는 7조8000억원 규모의 한국형 차기 구축함(KDDX) 사업을 두고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미 조선업 시장 개방, 대규모 수주 기회 열려
현재 미 함정의 약 40%만이 제때 수리가 완료되고, 운영하는 함정수(291척)가 준비태세를 유지하는데 필요한 355척에 크게 못 미치는 상황이다. 해당 법안에 통과되면 20조원 규모의 MRO(유지, 보수, 정비)시장과 함께 약 1조750억달러(약 1561조원) 함정 신조 시장이 열린다.
선박법은 미국 조선업을 강화하기 위해 10년 내 미국 국적 상선을 250척으로 확대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또한, 미국 정부 보조 화물은 미국 국적 선박을 이용하도록 규정하며, 2029년부터 중국에서 수입하는 물품의 일부는 미국 국적 선박을 통해 운송하도록 하는 방안을 포함하고 있다. 미국 내에서 선박을 신조하거나 수리할 경우 금융 인센티브를 제공하고, 조선소 투자 시 25% 세액 공제를 허용하는 조항도 포함됐다. 반면, 중국과 러시아 등 ‘우려 국가’ 선박을 통한 수입품에는 추가 관세를 부과할 방침이다.
단기적으로 전략상선단에 외국산 선박을 사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한국 조선업에 수혜가 예상된다. 또, 미국 선박을 한국에서 수리할 길도 열린다. 수리비의 경우, 동맹국가나 업체를 통한 수리는 세금이 면제되는데 중국 등 ‘우려 국가’의 조선소에서 미국 선박을 수리할 때는 200%의 세금을 내므로 가격 경쟁력을 얻을 수 있다. 특히 미국 내 조선소에 투자한 한화오션의 경우 절대적인 수혜가 가능할 것으로 예상된다.
2024년 바이든 행정부 당시 HD현대중공업 조선소 방문한 미국 해군장관 (사진=HD현대)
신조 선박 규모 확인 및 세제 혜택 요건 유불리 계산 필요
그러나 선박법에서 규정하는 250척의 상선이 신조 선박인지 여부가 불분명하며, 추가적인 세금 혜택 요건이 생길 가능성도 제기된다. 또한, 미국 조선업 경쟁력이 일정 수준 이상으로 올라설 경우 보호무역 기조가 강화될 가능성이 높아, 장기적으로 한국 조선업에 불리한 환경이 조성될 수도 있다.
선박법은 현재 미국 상선의 규모를 설명하면서 ‘국제무역에서 80여척만이 미국 국기를 게양한다’고 설명하고 있다. ‘미국 국적 상선’이 의미하는 바가 미국 국기가 게양된, 즉 미국국적으로 등록된 상선 250척으로 볼 여지가 있다. 새로 생산할 경우, 일감이 크게 늘어나게 되지만 배를 빌려 쓸 가능성도 있다.
트럼프 2기 행정부가 들어서면서 한때 반도체를 지원하는 ‘칩스법’ 보조금 축소가 우려된 것처럼 선박 보조금 수령에도 추가 조건이 붙을 수 있다. 미국 내 조선업 역량이 일정 수준에 도달하면 세제 혜택 등 인센티브를 제공받는 과정이나 조건에 단서조항을 추가할 가능성이 있다. 지난해 칩스법 세제 혜택 제공 과정에서도 반도체 생산 관련 기밀이 유출될 수 있는 정보 공유나 수익 공유 등의 독소조항 논란이 있었다. 트럼프 행정부에서도 같은 논란이 생길 수 있어 대비가 필요하다.
국가 기간산업 해외 이전, 산업 생태계 붕괴 우려
미국의 조선업 육성 기조가 국내 조선업을 후퇴시킬 가능성에 대해서도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 지난 1월 현대제철이 미국 남동부 지역에 약10조원을 투자해 제철소 건설을 검토 중이라는 소식이 전해졌다. 지난해 11월 포항2공장의 전체 가동 중단 추진 이후 나온 미국 공장 신설은 노조의 반발을 불러왔다. 국가기간 기간 산업에 대한 해외 이전은 산업 생태계 붕괴, 구조조정, 지역 경제 위기 등의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선박법을 발의한 마크 켈리 미국 애리조나주 상원의원은 지난 18일(현지시간) 펜실베이니아주 필라델피아에 위치한 한화 필리 조선소를 찾아 “미국 조선업의 재건이 단순한 해군 함정 건조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상선 건조 및 공급망 형성이 반드시 함께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