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관세 폭탄이 동맹국에도 예외 없이 떨어지고 있다. 자동차와 반도체 등이 사정권에 들어 한국경제에 비상이 걸린 상황에서 한국 조선업이 관세 폭탄에 대응할 수 있는 카드로 주목 받는다. 트럼프 대통령이 직접 ‘SOS’를 쳐 기대를 모은 K-조선은 해군 함정 건조를 동맹국에 맡길 수 있는 법안 발의로 전성시대를 꿈꾼다. 한국은 미국의 조력자가 될 수 있을까? 파트너가 될지 소모품이 될지 미국의 현실과 진심을 살펴본다. <편집자주>
지난해 10월 경남 거제시 한화오션 거제사업장에서 '월리 쉬라'함 정비 현장을 둘러보고 있는 김동관 한화그룹 부회장(앞줄 오른쪽 첫 번째)과 스티븐 쾰러 미국 해군 태평양함대 사령관(앞줄 오른쪽 두 번째) (사진=한화그룹)
■ 미국, 조선소 400여개→21개로 줄어
한 때 세계 최강을 자랑하던 미국의 조선업은 오랜 시간에 걸쳐 쇠퇴했다. 열악한 조선 인프라와 조선업의 후퇴는 해군력 약화로 이어졌다. 설상가상, 정책적으로 조선업을 부양한 중국이 치고나가며 격차가 확연히 벌어졌다. 남중국해 등에서 해상 패권을 강화하려는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조선 능력 확보를 통한 해군력 능력이 절실한 것으로 보인다. 열악한 조선 인프라 및 해군력 보완을 위한 단기적 대책으로 군함 함정 유지 보수에 대한 아웃소싱과 군사용 선박에 대한 발주가 대안으로 제시됐다.
최근 나이스신용평가가 발표한 ‘미국의 조선업 부흥정책 방향과 그 영향’ 리포트에 따르면 미국 조선업은 한때 세계 1위를 기록했지만, 1980년대 이후 냉전 완화에 따른 함정 수요 감소와 정부의 산업 지원 축소로 인해 점차 쇠퇴했다. 현재 미국의 조선업 시장점유율은 0.1% 수준이며, 과거 400여 개에 달했던 조선소는 현재 21개로 줄어들었다.
■현재 295척 함정, 2030년까지 390척 확보 계획
미국 공화당의 마이크 리와 존 커티스 상원의원은 지난 5일 ‘해군 준비태세 보장법’과 ‘해안경비대 준비태세 보장법’을 공동 발의했다. 해당 법안은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 회원국이나 미국과 상호 방위조약을 맺은 인도·태평양 국가들이 미 해군 함정을 건조하거나 부품을 만들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해안경비대 준비태세 보장법 역시 해안경비대 선박을 동맹국에서 건조할 수 있는 내용을 담았다.
이들 의원이 법안을 발의한 이유는 미국 해군이 현재 운영하는 함정수가 준비태세를 유지하는데 크게 못 미치기 때문이다. 미 해군이 준비태세를 유지하는 데 필요한 함정 수는 355척이지만, 현재 운용 중인 함정은 295척에 불과하다.
미국의 조선업이 쇠퇴를 거듭하는 동안 중국과의 차이는 압도적으로 커졌다. 중국의 연간 선박 건조 능력은 2325만GT에 달하는 것으로 파악됐다. 함정 수는 2020년 350척으로 이미 미국을 추월했다. 조선업 육성을 위한 대규모 금융 지원을 통해 2009년 이후 시장 점유율 1위를 유지하고 있는 중국은 2024년 전체 시장의 53.4%를 차지했다. 양국 간의 조선 능력 차이는 곧 해군력 격차로 확대돼 미국은 중국 견제를 위해 조선 능력 확보가 필수적인 상황이다.
HD한국조선해양 SMR 추진선 이미지 (사진=HD현대)
이에 따라 미국은 2054년까지 함정 수를 390척으로 늘릴 계획이지만, 연간 조선 능력이 10만GT(Gross Tonnage·총톤수)에 불과해 목표 달성이 쉽지 않은 상황이다. 부족한 함정을 미국 내에서 만들기엔 비용과 시간이 충분치 않아 동맹국 조선소를 적극 활용한다는 것이 미국의 계획이다. 이에 따르면 함정의 구매 비용은 총 1조750억달러로 향후 30년 동안 약 1561조원이 소요된다.
■ 연간 상선 건조 실적 5척···중단기 목표 도달 위해 한국 도움 절실
미국의 연간 상선 건조 실적은 1975년 70척에서 2024년 현재 5척 미만으로 줄어들었다. 해상교역을 수행하는 미국 국적의 상선비중은 2.6%에 불과해 외국 의존도가 매우 높다. 상선은평상시 해상교역 경쟁력 유지에 필요할 뿐 아니라, 전시에 필수물품 및 군사화물을 운송하는전략적 자원이다.
군사적 해상수송에 필요한 인력수급 또한, 해당국가의 상선 시장으로부터 이루어진다. 따라서 에너지 운송을 비롯한 국가 무역 구조 상 외국 상선 의존도가 높은점은 유사 시 안보 이슈로 이어질 수 있다. 이를 종합했을 때, 해상 교역 경쟁력 강화 및 국가 안보 유지 차원에서, 미국의 상선 확충 필요성이 높아지고 있다.
한국 조선업체들은 이미 세계적인 기술력을 인정받고 있으며, 상선뿐만 아니라 군함과 특수선 건조에서도 경쟁력을 갖추고 있다. 특히, 한국은 미 해군이 요구하는 품질과 생산 속도를 충족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국가 중 하나로 평가받고 있다. 미국은 조선업의 회복을 통해 군사력을 확보하기 위해 한국의 도움이 절실한 상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