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반그룹 창업주 김상열 서울미디어홀딩스 회장(왼쪽)과 그의 딸 김윤혜 호반프라퍼티 경영총괄 사장. (사진=호반그룹)

호반그룹과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 간 한진칼 지분 쟁탈전이 1.5%포인트 차이의 초박빙 승부로 치달았다. 업계에서는 호반의 목적이 김윤혜 경영총괄사장을 위한 승계용 관광업 포트폴리오 완성으로 분석되고 있어, 항공업 전문성과 자본력이 정면충돌하고 있다.

■ 김윤혜를 위한 관광사업 확장 전략…리조트-항공 연계 야심

28일 호반그룹과 업계에 따르면, 호반은 “단순 투자”라고 주장하지만 업계에서는 이를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 호반호텔앤리조트가 82차례에 걸쳐 한진칼 지분을 매수한 것은 우연이 아닌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이는 김상열 회장의 장녀인 김윤혜 경영총괄사장이 총괄하는 호반프라퍼티 체계 하에서 이루어진 전략적 포석으로 해석되고 있다.

김윤혜 경영총괄사장은 현재 리솜리조트, 호반프라퍼티를 통해 관광·서비스업 분야를 담당하고 있다. 여기에 대한항공까지 확보하면 리조트-항공 연계 사업이 가능해진다는 관측이 나온다. 제주 중문과 고성 화진포에 조성 중인 복합관광단지에 대한항공 노선을 연결하고, 해외 관광객을 직접 유치하는 ‘승계용 관광업 포트폴리오’ 완성을 노리고 있다는 분석이 제기되고 있다.

특히 호반은 과거에도 자녀들 소유 회사에 일감과 수익을 몰아주는 방식으로 경영권 승계 작업을 추진해왔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윤혜 사장을 위한 포트폴리오 확장이라는 것이다.

문제는 이런 접근이 항공업의 본질을 무시한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는 점이다. 항공업은 브랜드 컬렉션의 대상이 아니라 수만명의 생명을 책임지는 안전 산업이라는 것이 업계의 중론이다. 호반의 접근이 ‘포트폴리오 확장’ 관점으로 해석될 수 있어 우려를 낳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 “항공업은 아무나 할 수 없다”…업계의 강한 반발

호반그룹의 공격적 행보에 항공업계는 우려를 넘어 반발하고 나선 것으로 전해진다. 항공업계 관계자는 “항공업은 트렌드에 민감해 산업을 제대로 알아야 흐름을 읽고 대응할 수 있다”며 “조원태 회장을 비롯한 대한항공 경영진들은 30년 이상 항공업계에서 잔뼈가 굵은 인물들”이라고 강조했다.

항공업은 자본력뿐만 아니라 고도의 전문성이 요구되는 분야로 평가된다. 비행기 한 대를 띄우기 위해 조종사와 승무원은 물론 지상조업사 등 다수의 현장 인력이 투입된다. 이들의 숙련도와 전문성은 승객 안전을 좌우하는 만큼 이를 통합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운영 역량과 노하우가 필수적이라는 것이 업계의 우려사항이다.

글로벌 항공사와 항공기 및 엔진 제작사와의 폭넓은 인적 네트워크도 중요한 요소로 지적된다. 대한항공은 운항 규모가 크고 기단 관리 범위가 넓어 체계적인 협력망 없이 안정적인 운영이 어렵다는 분석이 나온다. 항공업을 넘어 방산 사업까지 영위하고 있다는 것도 비전문 기업이 쉽게 감당하기 어려운 요소로 꼽힌다.

특히 대한항공이 아시아나항공과의 통합을 마무리하는 중요한 시점에서 경영 불안정이 초래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통합 대한항공은 매출 16조원 규모의 거대 항공사가 되는데, 이를 안정적으로 운영하려면 수십년간 축적된 항공업 노하우가 필수라는 것이 업계 관계자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 (사진=한진그룹)


■ 조원태의 필사적 방어…LS와 손잡은 백기사 연대

조원태 회장은 호반의 도전에 맞서 LS그룹과 전략적 연대를 구축한 것으로 알려졌다. 두 그룹은 지난 4월25일 업무협약을 체결했고, 5월16일에는 LS가 대한항공을 상대로 650억원 규모의 교환사채를 발행했다.

이 교환사채는 정교한 백기사 메커니즘을 담고 있는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향후 호반그룹이 한진칼에 대한 적대적 M&A를 본격화할 경우를 대비, 대한항공이 교환권을 행사해 LS 주식을 확보하고, LS는 자사주 매각 대금으로 한진칼 지분을 매입하는 구조로 해석되고 있다.

다만 이번 교환사채는 투자하는 쪽인 대한항공에 불리한 조건으로 체결된 것으로 나타났다. 교환가액이 LS 주가 대비 120% 프리미엄이 붙어 있어 순수한 투자 목적이 아닌 전략적 연대 목적으로 보인다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이는 조 회장이 얼마나 절박한 상황인지를 보여주는 것으로 해석되고 있다.

한진칼과 LS그룹의 연대에는 호반그룹과 LS그룹 간의 기존 갈등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앞서 지난 2019년 LS전선이 대한전선을 상대로 제기한 특허 침해 소송이 2021년 호반의 대한전선 인수로 직접적인 대립으로 번졌고, 호반이 올해 3월 ㈜LS 지분 약 3%를 인수하면서 갈등이 심화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 1.5%P 차이의 초박빙 승부…우호지분의 불안정성

현재 호반그룹 18.46%, 조원태 측 19.96%로 격차는 1.5%p에 불과한 상황이다. 조 회장 측은 델타항공(14.90%)과 한국산업은행(10.58%) 등 우호지분을 포함해 50%를 확보했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이 또한 불안정하다는 관측이 나온다.

산업은행은 정부 정책에 따라 언제든 입장을 바꿀 수 있고, 델타항공도 글로벌 항공업계 재편에 따라 전략을 수정할 가능성이 있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특히 네이버, GS그룹 등 비공시 우호주주들의 경우 언제든 입장을 바꿀 수 있어 50% 지분 확보가 견고하다고 보기 어렵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더 큰 문제는 조 회장의 개인 지분이 5.78%에 불과하다는 구조적 취약점으로 지적되고 있다. 과거 조현아 전 부사장과의 ‘남매의 난’처럼 오너 일가 내 갈등이 재점화될 가능성도 상존한다는 우려도 있다. 이런 취약점을 호반이 정확히 노리고 있는 셈이다.

호반그룹은 “대한항공 인수를 위해서라면 20년, 즉 다음 세대까지 싸울 각오가 돼 있다”고 공언한 것으로 전해진다. 하지만 이는 오히려 호반의 접근이 얼마나 비현실적인지를 보여준다는 비판이 나온다. 20년간 경영권 분쟁을 벌이는 것이 대한항공과 승객들에게 어떤 피해를 줄지는 전혀 고려하지 않은 발상이라는 지적이다.

■ 전문성 vs 자본력…“승객 안전이 걸린 대결” 지적

결국 이번 쟁탈전은 승객 안전을 최우선으로 하는 전문 경영과 자녀 승계를 위한 브랜드 수집 간의 대결로 해석되고 있다. 조 회장이 내세울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무기는 전문성으로 평가된다. 조 회장과 대한항공 경영진들이 30년 이상 항공업계에서 쌓은 경험과 노하우는 돈으로 살 수 없는 자산이라는 것이다.

반면 호반은 막강한 자본력은 있지만 항공업에 대해서는 경험과 노하우가 상대적으로 크게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호반그룹 어디에도 항공업 경험자는 찾아볼 수 없기 때문이다.

다만 이남우 한국기업거버넌스포럼 회장이 “협업이라는 명목하에 자사주를 우군에게 매각해 지배권을 굳히는 것은 반칙”이라며 “주주가치를 침해하는 의사결정”이라는 비판도 있었다. 어떻게 보면 양측 모두를 지적한 것이다. 주주 이익보다는 경영권 확보에만 매달리고 있다는 비판이다.

더 큰 문제는 호반의 도전이 대한항공의 안정적 운영을 해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는 점이다. 업계에서는 “호반그룹이 20% 이상 지분을 확보하면 본격적인 경영권 분쟁이 시작될 것”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대한항공이 입을 피해와 승객들이 감수해야 할 위험에 대해서는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다는 것이 문제라는 지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