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반그룹 창업주 김상열 서울미디어홀딩스 회장(왼쪽)과 장남 김대헌 기획총괄 사장(오른쪽 위), 장녀 김윤혜 호반프라퍼티 경영총괄 사장(오른쪽 아래). (사진=호반그룹)


호반그룹이 다시 ‘하늘길’을 바라보고 있다. 10년 전 아시아나항공 인수전에서 실패했던 그들은 이제 대한항공 지주사인 한진칼의 2대 주주로 올라섰다. 내부적으로는 3남매 체제를 가동하며 건설 중심 구조에서 벗어나려는 움직임을 본격화한 것으로 풀이되고 있다.

그러나 겉으로는 분산된 듯 보이는 지배구조는 여전히 장남 중심의 위임 체제에 머물러 있다. 사업 다각화도 확장과 리스크 사이에서 불안한 균형을 유지하고 있다. 항공업 진출은 그 균형을 맞추기 위한 시험대로 보인다.

■ 김상열의 후선, 3남매의 전면…그러나 분산 승계는 아직

호반그룹의 권력 구조는 전통적인 장자 승계 모델을 기초로 하면서도, 세 자녀에게 각기 다른 역할을 분담하는 굳이 말하자면 위임형 체제를 실험 중인 것으로 보인다.

장남 김대헌 사장은 호반건설의 최대주주(지분 54.73%)이자 그룹 핵심 사업을 책임지고 있다. 차남 김민성 기획관리실장(전무)은 호반산업을 통해 제조·전선 부문을 맡고 있다. 장녀 김윤혜 경영총괄사장은 리조트, 호텔, 유통을 포함한 호반프라퍼티를 이끌고 있다.

김대헌 호반건설 사장 (사진=호반건설)


실제 경영권 통제는 장남에게 집중돼 있다. 호반건설은 호반산업의 지분 11.4%를 보유하고 있다. 프라퍼티 계열 핵심 자회사에도 일정 지분을 가지고 있다. 이는 3남매가 각자 영역을 분담하고 있지만 총괄 권한은 장남에게 남겨두는 지배 구조를 유지하고 있다.

■ 실패에서 시작된 야심…항공업은 오래된 숙원

호반의 항공업 진출은 단기적 대응이 아닌 장기 기획된 전략으로 분석된다. 앞서 호반은 지난 2015년 금호산업 인수전에 참여하며 아시아나항공 확보를 노렸던 시도가 있었다. 당시 채권단 요구 가격은 1조원이었지만, 호반은 6000억원대를 제시해 고배를 마셨다. 이 경험은 내부적으로 탈건설 전략의 필요성을 각인시키는 계기가 됐다.

지난해 호반은 한진칼의 지분을 18.46%까지 끌어올리며 다시 하늘길 진입에 나섰다. 이번엔 단순 참여가 아니라 전략적 전환의 선언에 가깝다는 평가다. 호반 회장의 마지막 소원이 항공 분야로 알려져 있다.

이는 그룹 내 사업 포트폴리오와도 연결된다. 항공은 김윤혜 사장의 호텔·리조트 사업과 관광 시너지를, 김민성 전무의 대한전선과는 항공기 전력 공급망 가능성을, 김대헌 사장의 건설 부문과는 공항 인프라 개발 연결성을 기대할 수 있다. 하지만 실현 가능성과 수익성 확보까지는 긴 시간이 필요해 보인다.

■ 건설업 위기, 사업 다각화는 피할 수 없는 선택

지난해 호반건설의 연결 기준 매출은 2조3706억원으로 전년 대비 11.9% 감소했다. 영업이익도 2716억원으로 32.3%나 줄었다. 특히 분양 매출은 전년 1조5820억원에서 1조1476억원으로 27.5% 급감해 실적 악화의 주 원인이 됐다.

이는 단순한 경기 침체의 결과가 아니라 호반의 기존 사업 모델 자체가 한계에 봉착했음을 의미할 수 있다. 그간 성장의 주축이었던 LH 택지지구 분양은 공급 축소로 전환점을 맞았다. 외곽 대단지 중심의 전략은 통하지 않게 됐다. 현재 호반의 전체 매출 중 약 70%가 주택 분양에 의존하고 있다는 점은 리스크다.

따라서 사업 다각화는 생존 전략이다. 건설업을 벗어난 대비를 하는 것이다. 항공업뿐 아니라, 제조업, 리조트, 벤처, 언론으로 이어지는 다방면의 확장으로 이어졌다.

■ 김상열 회장의 언론행…경영권 승계의 완결 포석

김상열 회장은 2018년 호반건설 대표이사직에서 물러난 이후 2021년 전문경영인을 선임하며 사실상 경영 일선에서 퇴장했다. 하지만 단순한 은퇴가 아니다. 그는 서울미디어홀딩스를 통해 서울신문, EBN 등 언론사들을 운영하며 그룹의 외부 커뮤니케이션과 이미지 관리, 정책 대응력 강화를 위한 기반을 마련하고 있다.

또한 장학재단과 사회공헌 사업을 병행하면서 창업주로서의 사회적 위상을 유지하고 있다. 그룹의 리스크는 2세 경영진에게 넘기고, 자신은 대외 영향력을 보존하는 전략이다. 이는 은퇴한 창업주라기보다는 정치적 구심점으로 재포지셔닝한 것으로 업계는 평가하고 있다.

미디어를 보유한 대기업 오너는 정책과 여론 형성에서 경쟁우위를 점할 수 있다. 호반의 언론 사업은 단순한 다각화가 아니라 지배구조 재편 이후에도 창업자가 간접적 영향력을 유지하려는 전략으로 보는 시선이 지배적이다.

■ 막강한 재무 체력…그러나 항공업은 새로운 리스크

호반그룹의 이러한 공격적 확장이 가능한 배경엔 막강한 자금력이 있다. 지난해 기준 호반건설은 현금 및 현금성 자산 1조원 이상을 보유하고 있으며, 유동비율 500% 이상, 부채비율 18.7%로 업계 최고 수준의 재무 안정성을 자랑한다. 외부 차입 없이도 M&A가 가능한 상태다.

이런 안정성은 그룹 고유의 ‘90% 원칙’과 ‘무차입 경영’ 철학 덕분이다. 분양률이 90%에 미달하면 다음 사업을 착수하지 않았다. 자기자본 비중을 극대화해 리스크를 낮추는 방식이다.

문제는 항공업은 이와는 전혀 다른 사업 영역이라는 것이다. 고정비가 크고 경기 민감도가 높으며, 지분 확보만으로는 실질 경영권을 확보하기 어렵다. 한진칼의 지분을 늘리기 위해선 더 큰 실탄이 필요하고 조원태 회장 측과의 장기 분쟁도 각오해야 한다.

호반은 이에 대해 조급하지 않다는 입장이지만 업계에선 수십년의 지분 전쟁을 감안해야 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항공업 진출은 결국 호반그룹의 전 사업 포트폴리오 안정성과 구조적 대응력을 동시에 시험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는 분석이다.

이 변화는 단순한 사업 다각화를 넘어 구조적 전환을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경영권 재편과 신사업 리스크가 동시에 놓인 고난도 복합 전략으로 볼 수 있다. 다만, 그 조각이 들어맞을지는 아직 알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