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서대문구의 분양을 완료하고 입주를 앞둔 아파트. (사진=손기호 기자)

“전세대출 줄인다고 하니까 분양이 쏟아지는 것 같아요.”

6월 아파트 분양시장이 이례적 활기를 띠고 있다. 7월 DSR 3단계 규제 시행을 앞두고, 규제 적용 전 마지막 청약을 노리는 실수요자들이 대거 몰리고 있다.

■ “막차 청약” 쏠림…6월 분양시장 이례적 활기

6일 부동산플랫폼 직방에 따르면, 이달(6월) 전국 아파트 분양 예정 물량은 2만6407가구로, 전년 동월 대비 39% 늘었다. 수도권 1만3865가구, 지방 1만2542가구가 공급되며, 서울 ‘잠실르엘(1865가구)’, 인천 ‘청라피크원푸르지오(1056가구)’, 경기 ‘오퍼스한강스위첸(1029가구)’ 등 대규모 단지가 잇따른다.

부산, 충북, 대구 등 지방 대도시도 공급이 확대된다. 실제로 5월 전국 아파트 분양 실적률은 72%로, 수도권 주요 단지에서는 두 자릿수 청약 경쟁률이 이어지고 있다.

직방 빅데이터랩 김은선 랩장은 “DSR 3단계는 입주자모집공고일 기준이기 때문에 6월 분양 단지에는 적용되지 않아, 실수요자들의 청약 쏠림이 당분간 지속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 대출 규제 본격화…거래 급랭·미분양 적체

오는 11일부터 SGI서울보증과 주택도시보증공사(HUG) 등은 전세대출 보증비율을 100%에서 90%로 낮추고, 유주택자 중 LTV 60% 초과자에게 DSR 40%를 적용하기 시작했다. 연소득 3500만원으로 전세보증금 6억원 아파트에 입주하려던 차주는 기존 5억원 대출이 가능했지만, 이제는 대출 자체가 불가능하거나 대폭 줄어들었다.

서울지역 전세 매물은 반년 새 11%나 줄었고, 강동구는 63%, 동대문구는 39%가 감소했다. 전세대출 문턱이 높아지자 집주인들이 직접 입주하거나 매매로 돌리는 현상, 전세 수요의 월세 전환, 전세가격 약세와 월세 상승 등 연쇄 반응이 나타나고 있다.

7월부터는 더 심하다. 수도권 주택담보대출에 스트레스 DSR 3단계가 도입되기 때문이다. 스트레스 금리가 1.2%에서 1.5%로 상향되고, 적용 대상도 모든 가계대출로 확대된다.

이렇게 되면 연소득 1억원 차주는 30년 만기 변동형 주담대 기준으로 3300만원, 5000만원 소득자는 1700만원까지 대출 한도가 줄어든다. 이 때문에 5월 한 달간 5대 시중은행 주택담보대출은 3조원 가까이 늘었고, 서울·수도권 일부 지역에서는 매수세가 일시적으로 살아나는 ‘풍선효과’가 관측됐다. 하지만 업계에서는 7월 이후엔 거래가 더 얼어붙을 것이라며 규제 시행 전후로 시장이 급격히 위축될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다.

■ 미분양·PF 부실, 줄도산 우려…“정책 전환 없인 연착륙 불가”

분양시장 활기와 달리 대출 규제의 충격파는 이미 건설업계 실적과 현장에 고스란히 반영되고 있는 모습이다.

한국건설산업연구원 자료에 따르면 올해 1분기 건설기성은 27조120억원으로 전년 대비 20.7% 급감해 IMF 외환위기 직후인 1998년 3분기 이후 최대 감소폭을 기록했다. 4월 건설기성도 9조5319억원으로 전년 대비 19.8% 감소했고, 건설 수주액은 12조645억원으로 17.5% 줄어들며 15개월 만에 최대 감소폭을 보였다. 미분양 주택은 2만6422호로 12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지방의 경우 공급 과잉과 수요 억제 정책이 겹치며 미분양 적체가 심각하다.

PF(프로젝트파이낸싱) 시장 경색도 심각하다. 지난해 말 기준 전체 PF 위험노출액은 210조4000억원, 이 중 22조9000억원(10.9%)이 유의·부실 우려 여신이다. 미분양 등으로 PF 대출 회수가 어려워지면서 연체율이 급증하고 만기 연장 불가 사업장이 속출하고 있다.

실제로 올해 법정관리를 신청한 중견 건설사만 11곳에 이른다. 지난해 건설사 폐업은 3071개사로 전년 대비 41.5% 늘었다. 강원도 춘천의 318가구 신축 아파트는 시공사 부도로 작년 10월부터 공사가 중단된 상태다. 37층 골조와 전기 배선까지 완료됐지만 자금난으로 입주 시기가 작년 6월에서 올해 7월로 미뤄졌고, 올해 안 공사 재개 여부도 불투명하다.

대형 건설사들도 예외는 아니다. 올 1분기 대형사 영업이익률은 평균 4.5%로, 2021년 10%에 달했던 이익률이 절반 이하로 떨어진 상태다. 현대건설, 대우건설 등 대형건설사들은 저마진 프로젝트 누적, 공사비 상승, 미분양 악화의 삼중고에 시달리고 있다.

업계에서는 대출 규제만으론 시장 연착륙이 어렵다고 보고 있다. 헤럴드경제가 주요 건설업 CEO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를 보면 56.3%가 ‘스트레스 DSR 등 대출규제’를 가장 먼저 폐지해야 할 정책으로 꼽았다.

건설산업 전문가는 “대출 규제는 신규 및 갈아타기 수요를 크게 위축시키고 임대용 주거 시장 침체를 가속화한다”며 “실제로 전세대출 규제 강화 이후 서울 주요 지역 전세 매물은 급감했고 월세 전환과 매매 전환, 전세가격 약세 등 시장 구조가 흔들리고 있다”고 지적했다.

정부는 2월 책임준공 부담 완화, 지방 미분양 대책, SOC 예산 증액 등 건설시장 안정대책을 발표했다.

하지만 업계 관계자는 “공사비 현실화와 미분양 주택 매입 확대, 스마트 건설기술 개발, 구조조정 등 근본적 대책이 병행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전문가들은 단기적 대출 규제보다 실수요자 중심의 유연한 금융정책과 주택 공급 구조 개편, 건설사 재무 건전성 개선, 산업 구조조정 등이 시급하다고 꼽는다. KDI에 따르면 올해 건설투자가 전년 대비 1.3% 감소할 전망이다. 시장 부진이 당분간 이어질 것이라는 설명이다.

6, 7월 연속 대출 태풍 이후에도 금리, 정책, 추가 규제 등 다양한 변수로 시장이 다시 관망세로 전환될 수 있다는 우려가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