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이민당국이 공개한 현대차-LG엔솔 공장 건설현장 단속 전경. (사진=연합뉴스)
미국 이민당국이 현대차와 LG에너지솔루션의 조지아주 합작 배터리 공장(HL-GA) 건설 현장을 급습해 한국인 300여명을 구금하면서, 국내 기업들의 대미 사업에 빨간불이 켜졌다. 구금된 이들은 오는 10일 전세기로 복귀하지만, 일정에 차질이 빚어져 향후 공장 완공이 불투명해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8일 현대차·LG에너지솔루션은 미국 출장자를 대상으로 "필수 불가결한 경우가 아니면 보류 검토를 권고한다"며 "긴급·필수 출장이 필요한 경우에 한해서만 출장이 가능하다"고 안내했다.
앞서 지난 5일 미국 이민세관단속국(ICE)과 국토안보수사국, 마약단속국(DEA), 조지아주 순찰대 등은 현대차그룹-LG에너지솔루션의 합작 배터리 공장 건설 현장에서 대대적인 불법체류자 단속을 벌여 475명을 체포했다. 이 중 약 300여명 이상이 한국인인 것으로 파악됐다.
이들은 정식 주재원 비자(L비자)·투자자 비자(E비자)가 아닌, 단기 상용 비자(B1) 또는 전자여행허가(ESTA)를 통해 입국해 일하다 적발된 것으로 조사됐다.
B1은 최대 6개월간 비즈니스 활동을 할 수 있는 비자, ESTA는 무비자로 90일 동안 머무를 수 있는 전자여행허가다. 다만 해당 비자로는 미국에서 공장 건설과 같은 일을 할 수 없다. B1 비자의 경우 회의 참석이나 계약 등을 위한 목적으로만 발급된다.
정부는 구금된 인원을 국내로 송환하기 위한 절차에 돌입했다. 지난 7일 대통령실은 "관계 부처와 경제단체, 기업이 한마음으로 대응한 결과 석방 교섭이 마무리됐다"며 "행정 절차가 끝나는 대로 전세기를 보내 안전 귀국을 지원할 것"이라고 밝혔다.
문제 해결을 위한 대응도 약속했다. 강훈식 대통령 비서실장은 "유사 사례 방지를 위해 출장자 비자 체계 점검·개선 방안을 추진할 것"이라고 전했다.
그럼에도 배터리 업계는 비자 리스크가 쉬이 해결되지 못할 것으로 내다본다. 이번 사태의 경우 미국의 비자 발급 제도가 경직돼 있는 만큼 필요 불가결한 관행에서 비롯됐다는 것. 기업 입장에선 공사 진행을 위해 수시로 인력을 파견할 수밖에 없지만, 이를 가능케 하는 노동비자(H-1B)는 발급에만 수개월이 걸리기 때문이다.
현재 미국의 H-1B 쿼터는 매년 8만5000여개로 제한돼 있으며, 미국 이민국에 따르면 지난달 2026 회계연도에 발급될 H-1B 쿼터는 이미 모두 소진됐다. 한국은 이공계 연구직을 중심으로 매년 2000명 내외가 비자 승인을 받는 것으로 알려졌다.
여기에 트럼프 행정부가 불법체류자 단속, 자국 산업 육성에 집중하고 있는 만큼 비자 문제가 장기화될 가능성이 높다는 지적도 나온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7일 인터뷰를 통해 "(배터리 등)전문 인력을 미국에 합법적으로 미국에 입국하는 것이 가능하도록 하겠다"면서도 "전문가를 불러들여 우리 국민을 훈련시켜서 그들(미국인)이 직접 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단기적인 비자 문제는 해결돼도, 장기적으로 한국 기업들에게 현지 공장에 새 전문인력을 고용해야 하는 숙제가 남겨진 것으로 풀이된다. 앞서 트럼프 대통령은 단속 다음날인 지난 5일 "내 생각에는 그들은 불법 체류자였고, 이민세관단속국(ICE)은 자기 할 일을 한 것"이라고 전한 바 있다.
그간 미국에 진출한 한국 기업들은 미국 정부가 한국 기업으로부터 거액의 투자 유치를 해놓고도 막상 관련 비자를 충분히 발급하지 않는 문제에 대해 지적해왔다. 배터리 공장과 같은 산업 분야에서는 각종 최첨단 장비를 다루는 역량이 요구되지만, 현지에서 숙련된 노동자를 고용하기는 매우 어렵기 때문이다.
당장의 사업 일정에도 차질이 빚어질 전망이다. 현재 국내 배터리 3사는 북미에서 내년까지 총 7개 공장 완공을 목표로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정식 비자를 발급받는데에는 최소 수개월이 걸리는 만큼, 예정대로 사업을 완수하는 건 불가능할 가능성이 높다.
LG에너지솔루션은 전사 역량을 총동원해 대응에 나선 상태다. 김기수 CHO(최고인사책임자)가 지난 7일 현지로 출국했으며, 출장 전면 중단, 약품 전달, 구금자 가족 면회 추진 등 비상 대응에 돌입했다. 구성원·협력사 인원들의 안전한 복귀 등 신속한 문제 해결을 위해 전방위적 지원을 이어간다는 방침이다.
현대차 미국법인 또한 "사업을 운영하는 모든 시장에서 법률과 규정을 철저히 준수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고, 여기에는 고용 확인 요건과 이민법도 포함된다"며 "도급업체와 하도급업체의 고용 관행을 철저히 점검하겠다"고 밝혔다.
업계는 한국만을 위한 취업비자 신설이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그러나 E4 특별비자 연 1만5000개를 발급하는 '한국 동반자 법안'은 무관심 속에 10년 넘게 미국 의회에서 보류된 상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