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다산책방)
[뷰어스=문서영 기자] “그놈의 돕는다 소리 좀 그만할 수 없어? 살림도 돕겠다, 애 키우는 것도 돕겠다, 내가 일하는 것도 돕겠다. 이 집 오빠 집 아니야? 오빠 살림 아니야? 애는 오빠 애 아니야? 그리고 내가 일하면, 그 돈은 나만 써? 왜 남의 일에 선심 쓰는 것처럼 그렇게 말해?”
결국 터져 나온 그녀의 목소리. 이 사회를 살아가는 여성들이 겪었고 겪고 있는 날 것의 현실을 담은 ‘82년생 김지영’은 서점가를 강타했다. 거기서 한발 더 나아가 더 이상의 김지영이 없길 바라는 작가들이 뭉쳤다.
페미니즘 이슈가 한창인 지금, 한국 사회에서 글을 쓰는 여성으로 살아가는 3-40대 작가들이 페미니즘이라는 테마 아래 소설집 ‘현남 오빠에게’를 발표했다. ‘82년생 김지영’ 작가인 조남주와 여섯 명의 작가들은 일곱 편의 이야기가 단지 이야기에 머물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 또 앞으로도 이와 같은 이야기들이 꾸준히 이어지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아 작가들은 인세의 일부를 여성인권단체에 기부하기로 결정했다.
조남주의 ‘현남 오빠에게’는 서울에서의 대학생활이 낯설기만 했던 스무 살의 ‘나’의 이야기다. ‘나’는 여러모로 도움이 되어준 남자친구 현남 오빠에게 의지한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자신을 가르치려 드는 그에게 문득문득 어떤 불편함을 느끼게 된다. 여성으로서 일상에서 느끼는 어떤 불편함, 어떤 꺼림칙함을 폭력이라고 느끼기까지의 긴 시간을 돌이켜보고 용기 내어 고백하는 생생한 심리 소설인 동시에 서늘한 이별 편지다.
각각 서른 중반을 지난 여성 ‘유진’의 이야기를 담은 최은영의 ‘당신의 평화’, 어느새 갱년기에 접어든 두 아이 엄마 ‘나’의 이야기를 담은 김이설의 ‘경년更年’, 여성성이 필요할 때에만 등장하고 사라지는 여성이 등장하는 이야기 최정화의 ‘모든 것을 제자리에’, 규칙을 뒤집는 이야기를 들려주는 손보미의 ‘이방인’, 특유의 신화적인 상상력에 힘입어 유구한 여성 살해의 역사를 암시하는 구병모의 ‘하르피아이와 축제의 밤’, 여성에게 여성이기 때문에 해줄 수 있는 출산에 대한 아름다운 우화를 그린 김성중의 ‘화성의 아이’ 등이 ‘현남 오빠에게’에 수록돼 있다.
‘현남 오빠에게’는 여성들의 애인과 남편, 가족과 친구 등에게도 공감과 위로, 성찰의 기회가 될 수 있을까. 적어도 이 작품은 한국 사회에서 여성으로 살아가는 이들에게만큼은 울컥 치미는 반가움과 그리움을 선사한다. 조남주, 최은영, 김이설, 최정화, 손보미, 구병모, 김성중 지음 | 다산책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