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기억해' 김희원(사진=오아시스이엔티 제공)
[뷰어스=남우정 기자] 장면을 훔치는 사람을 의미하는 신스틸러(scene stealer). 배우 김희원은 수많은 작품에 출연하며 짧지만 강렬한 인상을 남긴 신스틸러로 불렸다. 그리고 이젠 신스틸러에서 당당히 주연으로 거듭났다.
‘나를 기억해’는 결혼을 앞둔 여교사 서린(이유영이)에게 정체를 알 수 없는 마스터가 과거 사건을 협박하면서 벌어지는 일을 그린 영화로 김희원은 서린을 도와 마스터를 찾아내는 전직 형사 국철 역을 맡았다. 데뷔 11년 만에 처음 맡은 주연작이지만 김희원은 영화 시작 20분이 지나야 처음 등장한다며 민망해 했다.
“전혀 이전과 다른 게 없어요. 조연으로 나올 때도 인터뷰를 많이 했고 홍보 활동도 똑같아요. 예능도 나가고 라디오도 나가고. 주연이라서 그렇기 보단 영화가 잘 되기 위해선 내 나름대로 최선을 다 해야죠. 과연 주연인가 싶기도 할 정도로 똑같아요. 포스터에 얼굴이 있어서 주연인 줄 알아요(웃음)”
'나를 기억해' 김희원(사진=오아시스이엔티 제공)
사회적으로 미투 운동이 활발히 진행되고 있기 때문에 여성 성범죄를 소재로 한 ‘나를 기억해’는 자연스럽게 주목을 받고 있다. 하지만 김희원은 현 시점에서 개봉할 수밖에 없는 영화의 사정을 강조했다.
“지금 이 시기에 영화가 개봉돼 노림수가 아니냐고도 하는데 이 영화는 개봉 시기를 정할만큼 힘이 없어요. 1년6개월을 개봉 못하고 있다가 나왔어요. 누가 미쳤다고 ‘어벤져스3’ 전 주에 개봉하겠어요(웃음)”
성폭력, 몰카, 청소년 범죄 등 ‘나를 기억해’가 다루는 소재는 쉽게 다룰 수 없는 재료들이다. 서린의 감정선을 따라 이야기가 진행되다 보니 영화 분위기가 전체적으로 무거울 수밖에 없다. 그 가운데에서 김희원이 연기한 오국철은 간간히 영화에 숨 쉴 공간을 불어넣는다. 피시방에서 초딩들과 싸우고 고등학생들에게 팬티 바람으로 굴욕을 당하는 국철의 모습은 극에 웃음을 불어넣는다. 찰진 대사는 김희원과 만나니 더 맛이 살아났다.
“애드립 반 대사 반이에요. 나름 상황을 정리하고 이어 갔어요. 연기를 하다보면 글로서는 다 표현하기 힘든 게 있어 캐릭터에 도움이 되는 것은 현장에서 애드립으로 만들기도 해요. 어떤 캐릭터가 주어지면 그걸 분석해서 살아있게 만드는 게 배우의 직업이잖아요. 캐릭터가 잘 살아났는지는 모르겠으나 그렇게 살리다 보면 다르게 말할 수는 있겠다 싶어요”
'나를 기억해' 김희원(사진=오아시스이엔티 제공)
■ “‘불한당’ 후 1년, 너무 큰 호사 누리고 있죠”
2010년 ‘아저씨’에서 악역 연기로 대중들에게 확실한 눈도장을 찍은 김희원은 이후 ‘미생’의 박과장, ‘송곳’ 정민철, ‘불한당’ 병갑 등의 캐릭터를 만나 악역하면 떠오르는 배우가 됐다. 겉모습만 보면 센 이미지를 떠올리겠지만 술은 한잔도 입에 데지 못하고 커피도 아메리카노는 써서 카라멜 마끼야또만 먹는 남자다. 그나마 ‘무한도전’ 등 예능을 통해서 순둥순둥한 반전 이미지를 보여줘 대중들과 좀 더 가까워졌다.
“실제론 애들이 모여서 담배 피우고 있으면 일단 무서워하는 어른이죠(웃음) 센 이미지에 대한 후회는 없어요. 예능을 통해서 다르다는 걸 보여줄 수 있어 괜찮아요. 근데 내가 순하긴 하지만 예능에서 보여준 것만큼 완전 순하진 않아요. 생전 처음 본 사람에게 어떻게 친한 척을 해요. 다른 분들이 워낙 말도 잘하고 ‘어떻게 하나’ 하는 상황에 말을 못했더니 그렇게 보여진 것 같아요”
영화, 드라마 가리지 않고 그야말로 쉬지 않고 일하는 김희원이다. 열심히 일하는 이유에 대해 김희원은 자의반 타의반이라고 했다. 일이 없었던 무명 시절의 기억을 그는 잊지 못했다.
'나를 기억해' 김희원(사진=오아시스이엔티 제공)
“아직도 일이 없었을 때 트라우마가 심하게 있어요. 일이 잡힌 상태에서 놀면 몰라도 아무 일 없이 놀면 힘들어요. 예전에 일이 없어서 괴로워하고 우울증 걸렸었죠. 그러다 보니까 일을 안 쉬려고 노력하는 경우도 있고 다행히 많이 찾아준 주신 것도 맞물렸어요. 어떤 배우들 보면 ‘3개월은 쉴래’하는데 부러워요. 나도 좀 그랬으면 좋겠어요”
일이 없어 힘든 때도 있었지만 이제 김희원은 아이돌 못지않는 팬들을 자랑하는 배우가 됐다. 작년에 선보였던 작품 ‘불한당’으로 그는 칸에도 갔고 생일을 맞아 지하철에 광고까지 내주는 열성적인 팬들도 생겼다. 그만큼 배우로서 책임감도 생겼다. 쉽게 쉴 수 없고 연기를 허투루 할 수 없는 이유다.
“너무 큰 호사를 누리고 있죠. 신기하고 감사해요. 그리고 책임감이 많이 생겼어요. 전에도 연기에 대한 책임감이 있었지만 더 신중하고 관객들에게 더 부끄럽지 않게 연기해야겠다고 생각해요. 그런 생각 때문에 부담감이 커졌어요. 그전엔 ‘이렇게 하면 재미있겠지’라는 생각으로 했는데 책임감 있게 연기를 해야 하니 더 걱정이 많아요. 이번 영화도 과연 책임감 있게 했나 생각하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