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소설' 지현우(사진=페퍼민트앤컴퍼니 제공)
[뷰어스=남우정 기자] “나이가 들어서 그런가. 눈물이 많아졌어요.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 보면서도 울컥울컥 해요”
JTBC 드라마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로 분 연하남 열풍에 원조 국민 연하남이 빠질 줄은 꿈에도 몰랐다. 2004년 갓 신인이던 지현우는 드라마 ‘올드미스 다이어리’(이하 ‘올미다’)를 통해 국민 연하남으로 등극했다. 신예 연하남인 정해인을 보며 지현우는 그 시절을 떠올렸다.
“옛날 생각 많이 나죠. 이젠 할 수 없는 캐릭터니까. 그때 좀 더 재미있게 했으면 좋았겠다는 생각을 해요. 다시 한다면 절대 그때처럼은 못할 것 같아요. 그 땐 뭘 잘 몰라서 할 수 있었지만 지금은 내가 (예)지원누나의 에너지를 받아줄 수 있을까 생각해요(웃음)”
2003년 KBS 20기 공채 탤런트로 데뷔한 지현우는 ‘올미다’의 지PD 캐릭터 덕분에 대중들에게 눈도장을 찍을 수 있었지만 당시 그의 나이는 21살이었다. 지현우는 시청자들이 왜 지PD에 빠졌는지 몰랐을 정도로 어렸다고 말했다.
'살인소설' 지현우(사진=페퍼민트앤컴퍼니 제공)
“그땐 누나들의 마음이 하나도 이해 못했어요. 왜 지PD를 좋아하고 팬이 생겼나 생각했어요. 근데 시간이 지나니 알겠더라고요. 그 시절 많이 그립죠. 무서운 것 없이 다 도전했던 그 때의 패기가 그립죠. 지금은 책임감이 커지고 생각이 많아졌어요. 그땐 시청율도 전혀 신경을 안 썼는데 지금은 이 작품 안 되면 다음 작품을 할 수 있을까 생각도 들어요. 안정적이진 않은 직업이잖아요. 시청자에게 신뢰를 줄 수 있는 길이 쉽지 않다는 걸 느껴요”
국민 연하남에 누나들의 로망이던 지현우도 어느덧 데뷔한지 15년이 지났다. 누나들에 둘러싸여 있던 지현우는 이제 현장에서 많은 후배들과 마주하게 됐다. 연차가 쌓인 만큼 성숙해지고 책임감도 늘었다.
“책임감이 커지는 것 같아요. 연차가 지날수록 후배들이 생기잖아요. 그 후배들에게 민폐 끼치고 싶지 않고 도와주고 싶은 마음도 들고 창피하고 싶지 않아요. 결국 제일 중요한 게 연기를 잘 해서 작품이 잘 되는 거죠. 그러다보니 현장에 몰입해서 스태프들 못 챙길 때도 있어서 미안하죠. 15년이 지나다 보니까 팬들도 결혼해서 이제 육아전쟁 중이에요. 신기하죠. 어떤 팬들은 지금이 더 좋다고 해요. 어릴 땐 팬들을 잘 몰랐는데 요즘은 팬미팅 하면 대화를 많이 하는 편이라 오히려 지금이 좋다고 하더라고요”
'살인소설' 지현우(사진=페퍼민트앤컴퍼니 제공)
■ “‘살인소설’ 순태, 해보지 않았던 캐릭터 끌렸죠”
연차와 함께 책임감이 쌓이고 지현우가 한 작품의 폭도 넓어지고 깊어졌다.
스크린 컴백작 영화 ‘살인소설’은 그간 지현우가 보여준 적 없는 얼굴을 보여준다. 유력한 차기 시장후보로 지명된 남자 경석(오만석)이 의문의 남자 순태를 만나면서 누군가 설계한 함정에 빠져 겪게 되는 24시간을 그린 스릴러에서 지현우는 뭔가를 숨기고 있는 소설가 순태 역을 맡았다.
“일단 해보지 않았던 캐릭터에 블랙코미디 적인 요소들이 강해서 끌렸어요. 심각한 상황에서도 웃음이 나오고 시골에 있는 캐릭터들이 순수한데 웃기죠. 경석이 비리 정치인이지만 일반 사람들의 한번쯤 봤을 법한 사람이라는 지점도 마음에 들었어요. 순태는 그런 사람을 가지고 요리를 하죠. 상상으로만 했던 일을 현실에서 할 수 있는 사람이고 거짓말로 일관하는 사람을 자백하게 만드는 게 매력적이었어요. 다들 청문회에서 ‘기억이 안 난다’고 하는 걸 보고 답답했잖아요. 순태라면 그런 걸 캐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죠”
해보지 않은 캐릭터였기에 지현우의 욕심은 엄청났다. 지현우는 촬영이 진행된 두 달동안 촬영지인 대전에 머물러 촬영장 붙박이로 불렸다. 현장에서도 직접 녹음한 대본을 계속해서 들으며 최대한 순태에게 가까워지려고 노력했다.
“잘 하고 싶었으니까요. 평소 인간 지현우로, 집에 있을 때 모습이 아닌 최대한 순태에 가깝게 있고 싶었어요. 감정을 깨고 싶지 않아서 촬영지에 있어 봤어요. 그 시간이 좋았고 촬영지가 대전이었는데 나랑은 잘 맞더라고요. 두 달 정도 머물렀던 것 같아요”
'살인소설' 지현우(사진=페퍼민트앤컴퍼니 제공)
‘살인소설’은 스릴러로만 단정 지을 수 없다. 부패한 사회 부조리를 끄집어 낸 블랙 코미디로 씁쓸한 웃음을 선사한다. 캐릭터부터 엔딩까지 뻔한 권선징악 설정 자체가 배재됐다. 지현우는 오히려 그런 현실적인 부분에서 더 큰 매력을 느꼈다.
“개인적으론 그런 엔딩을 좋아해요. 인생사가 항상 해피엔딩이 아니잖아요. 드라마 ‘송곳’과 ‘원티드’도 그랬죠. 그런 상황들이 현실적이죠. 그런 걸 보고 관객들이 잘못된 것에 소리를 높여주면 변화할 수 있겠다 싶어요. 원래 현실적인 걸 좋아하기도 해요. 말도 안 되는 건 연기자로 공감이 잘 안돼요. 이해가 안 되는 걸 연기하게 되면 하는 척을 하는 건데 그걸 못하겠더라고요”
국민 연하남으로 주목을 받은 후 지현우는 한때 로맨틱코미디 장르에서 활약했다면 최근엔 드라마 ‘송곳’ ‘원티드’에 ‘살인소설’까지 사회적 현상과 메시지를 담은 작품에 출연하고 있다. 배우에게 주어진 역할에 책임감을 느끼고 차근차근 성장해 가는 게 여실히 느껴지는 행보다.
“우연의 일치이기도 하고 타이밍이 흘러들어온 부분도 커요. ‘송곳’은 ‘올드미스 다이어리’ 감독 작품이었고 전혀 다른 결의 작품이라 하고 싶었어요. 그 이후로 그런 작품들이 들어온 것 같아요. 대본을 읽을 때 울컥하는 부분들이 있는데 그걸 보면서 내가 연기하는 작품이 힘겹게 싸우는 분들에게 조금이라도 힘이 됐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