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제이스엔터테인먼트) [뷰어스=노윤정 기자] “민형주로 살면서 정말 행복했어요” 이시강에게 SBS ‘해피시스터즈’는 남다른 의미를 가지는 작품이다. 첫 일일극 도전이었고, 첫 지상파 드라마 주연작이었다. 드라마가 폭 넓은 시청 층의 사랑을 받으며, 배우 이시강의 인지도를 높여준 작품이기도 하다. 때문일까. 이시강은 ‘해피시스터즈’를 하면서 가장 많이 느낀 감정이 '행복'과 '감사함'이라고 말했다. ■ 민형주로 살았던 8개월 ‘해피시스터즈’라는 작품에 참여하는 과정은 녹록하지 않았다. 민형주 역을 맡을 배우는 오디션을 통해 뽑았다. 오디션 기간만 두 달여가 걸렸다. 수 명의 배우들이 캐스팅 물망에 올랐다가 탈락했다. 자신 역시 그렇게 떨어지고 다른 배우가 그 자리를 대신할 수도 있었다. 그 사실을 알았기에 더 치열하게 임했다. 기회가 간절했다. 그렇기에 이시강은 “뭐든 시켜만 준다면 잘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기회가 쉽사리 오지 않잖아요. ‘해피시스터즈’도 주연을 오디션으로 뽑을 거라는 생각을 안 했었고, 오디션에서 최종 2인이 남았을 때 떨어졌던 경우가 많아서 마음을 비우고 있었어요”라고 당시를 회상했다. 최종 합격하기까지 약 두 달. 그 기간 동안 자신이 가진 것과 캐릭터에 대해 연구한 것을 모두 보여주려 노력했고, 민형주라는 캐릭터를 맡게 됐다. 스스로의 노력으로 일궈낸 천운 같은 기회였다. 하지만 부담감도 느꼈다. 120부작이라는 긴 호흡의 드라마에 주연으로 발탁됐다는 사실은 무게감부터 달랐다. “첫 리딩 때부터 주연으로서 이끌어가야 한다는 책임감이 대단했어요. 그만큼 죽을 힘을 다했어요. 그래서 ‘해피시스터즈’는 가슴 한 편에 잊지 못할 작품으로 남을 것 같아요” (사진=제이스엔터테인먼트) 작품에 참여하면서 특별히 바란 점은 없었다. 높은 시청률이나 화제성을 기대하지도 않았다. 그저 ‘죽을힘’을 다해 자신에게 주어진 역할을 제대로 해내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 그렇기에 작품과 자신에게 쏟아지는 관심과 사랑이 더욱 얼떨떨하고 감사했다. “주변 친구들이나 동료들이 드라마 잘 보고 있다고 하니까, ‘어떻게 보지? 그 아침에 어떻게 보지?’라는 생각도 들고 신기하더라고요. 태어나서 아침드라마 처음 봤다는 사람도 많았어요. 늘 아침드라마를 보던 분들이 아니라 우연히 봤다가 빠지게 됐다는 분들이 많아서 뿌듯하고 보람 있었어요. 아침에 일어나면 주변 친구들에게서 ‘우리 부모님이 잘 보고 있다고 전해 달래’라는 문자가 몇 통씩 와 있어요. 그런 메시지들을 보면서 눈 뜨는 게 정말 행복했죠. 동시에 연기를 더 잘해야겠다는 책임감이 들었어요. 좋아해주시는 만큼 보답해야겠다는 감정이 컸던 것 같아요” 이시강은 준비기간까지 포함해 약 8개월을 민형주로 살았다. 120부작을 이끌어야 한다는 부담은 물론, ‘이렇게 공부했으면 사법고시도 패스할 수 있었겠다’는 우스갯소리를 할 정도로 대본 양도 많았다. 그만큼 매일을 치열하게 보냈다. 하지만 동시에 촬영장에서는 민형주로 사는 그 순간을 충분히 즐겼다. “하나도 힘들지 않았어요. 행복했어요. 행복한 시간이 빨리 간다고 하잖아요. 체감 상으로는 두세 달밖에 안 지난 것 같아요. 그만큼 즐기고 있었나 봐요. 100회가 됐을 때는 끝나는 시간이 다가온다는 생각에 무섭더라고요. 마지막 회 대본을 받는 것도 무서웠어요. 시간이 너무 빨리 지나갔어요” (사진=제이스엔터테인먼트) ■ 축구 유망주→아이돌 그룹 멤버→배우 이시강이 되기까지 이시강의 이력은 독특하다. 파격적이라고 할 수도 있다. 초등학생 때부터 10년 넘는 시간 동안 축구 선수로 경력을 쌓았다. 유망하다는 말을 들을 정도로 실력도 출중했다. 그러나 이시강은 스무 살이 되던 해, 돌연 축구를 그만뒀다. 흔히 떠올릴 수 있는 부상으로 인한 진로 전향은 아니었다. 이시강은 그 이유를 “단순했어요. 그냥 연기가 하고 싶었어요”라고 설명했다. 그저 연기가 더 재미있게 느껴졌을 뿐이다. 그래서 축구장을 떠났고, 이후 ‘거침없이 하이킥’ 엑스트라, ‘스펀지’ 실험맨 등 단역을 맡아 연기를 시작했다. 이시강은 배우라는 꿈을 이루기 위해 차근차근 준비해나갔다. 군대를 일찍 다녀와야 이후 활동하는 데 지장이 없을 거라는 생각으로 21살에 입대했다. 군대에서 쉬는 시간을 줄여가며 독학한 일본어 실력을 바탕으로 전역 후 일본으로 떠났다. 그곳에서 우연히 한 TV 프로그램에 출연한 것을 계기로 인기를 얻어 아이돌 그룹 키노로 데뷔했다. 가수로서 어느 정도 기반을 잡아가고 있었다. 하지만 배우의 꿈을 포기할 수 없어 다시 한국행을 택했다. “연기를 놓으면 안 될 것 같아서 다시 한국으로 돌아왔어요. 처음부터 다시 시작했죠. 6년 동안 드라마 5편, 영화 1편, 뮤직비디오 3편, 광고는 거의 100편정도 찍었어요. 이게 6년 사이에 벌어진 일들이에요. 죽기 살기로 최선을 다했는데, 다행히 조금씩 성과가 생기더라고요. 포기하지 않고 성실하게만 한다면 안 되는 일은 없다고 생각해요. 할아버지가 될 때까지 연기하면 돼요. 그때까지 연기하면 난 성공한 거라고 생각해요” (사진=제이스엔터테인먼트) 축구를 계속했다면 운동선수로서 성공했을지도 모른다. 일본에 계속 있었다면 가수로서 안정적인 인기를 얻으면서 활동할 수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시강은 자신이 원하는 일을 하기 위해 남들이 보기에 안전하게 보이는 길을 포기했다. 보통 이상의 용기와 스스로에 대한 믿음이 없다면 불가능한 일이다. 실제로 만난 이시강은 자신감이 넘치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그 자신감이 ‘근거 없는 자신감’은 아니다. 이시강은 맡은 캐릭터의 화술을 온전히 자신의 것으로 만들기 위해 한 대사를 수없이 반복해서 뱉어볼 정도로 노력했고, 노력한 만큼 자신을 믿는 사람이었다. “자신감의 원천은 노력이에요. 말로만 하지 않는 거죠. 그냥 하면 돼요. 열심히만 하는 게 아니라, 목표를 이루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연구하고 실천하는 거죠. 연기를 잘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접근해야 하는지 세부적인 내용들을 계속 고민하고, 도전도 많이 해요. 연극이나 영화도 도전이었어요. 늘 처음은 도전이잖아요. ‘해피시스터즈’도 도전이었고요. 일일극은 처음이니까 당연히 부족했을 거예요. 처음에는 시청자분들이 보시기에 어색하다고 느끼셨을 텐데, 실제로 촬영 환경이 어색했어요. 그래서 빨리 적응하기 위해 쉬는 날에도 촬영장에 갔어요. 감독님이나 스태프분들께 단점을 이야기해 달라고 해서 고치려고 노력했고요” 실생활에도 연기와 스스로의 발전을 위한 노력이 곳곳에 묻어있었다. 이시강은 작품이 끝났으니 함께 연기를 공부하는 친구들과 다시 스터디를 시작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쉬는 기간에는 뭘 하느냐고 묻자 “아침에 일어나면 운동하고, 공연을 보러 다녀요. 드라마를 좋아해서 잠들기 전까지 드라마를 몰아보기도 하고요. 아, 요즘은 집 인테리어를 하고 있어요. 엄청 예쁘게 꾸며놨어요. 올 화이트예요”라고 답하며 웃었다. 운동이나 인테리어 모두 인간 이시강, 배우 이시강으로서 좀 더 멋지게 살기 위한 ‘관리’였다. (사진=제이스엔터테인먼트) 이시강의 인생 모토는 단순하다.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선택한 일에 최선을 다한다. 배우로서 이시강의 목표 역시 단순하고 당연한 것이었다. 너무 당연하기에 오히려 간과하기 쉬운 목표다. 그렇지만 이시강의 이야기를 모두 듣고 나니 그의 목표가 겉만 번지르르한 말이 아닌 진심을 담은 말로 들린다. “죽을 때까지 연기하고 싶어요. 보는 사람들이 ‘이시강은 정말 연기를 잘하는 배우’라는 생각을 하도록 죽을 때까지 최선을 다하려고요. 죽을 때까지 부족하고 만족도 안 되겠지만, 그렇게 노력하면서 살 생각이에요. 또, 같이 일하고 싶은 배우로 기억되고 싶어요. 누군가 어떤 작품을 보고 내가 생각나서 같이 일하고 싶다고 말해준다면 정말 행복할 거예요. 그리고 역할의 크기에 상관없이 카메라 앞에 많이 서면서 대중에게 친숙하고, 한결 같고, 사람 냄새 나는 배우로 다가가고 싶어요. 나중에라도 변했다는 말은 절대 듣고 싶지 않아요”

[마주보기] 이시강처럼 인생을 산다면

노윤정 기자 승인 2018.05.28 09:13 | 최종 수정 2136.10.22 00:00 의견 0
(사진=제이스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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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뷰어스=노윤정 기자] “민형주로 살면서 정말 행복했어요”

이시강에게 SBS ‘해피시스터즈’는 남다른 의미를 가지는 작품이다. 첫 일일극 도전이었고, 첫 지상파 드라마 주연작이었다. 드라마가 폭 넓은 시청 층의 사랑을 받으며, 배우 이시강의 인지도를 높여준 작품이기도 하다. 때문일까. 이시강은 ‘해피시스터즈’를 하면서 가장 많이 느낀 감정이 '행복'과 '감사함'이라고 말했다.

■ 민형주로 살았던 8개월

‘해피시스터즈’라는 작품에 참여하는 과정은 녹록하지 않았다. 민형주 역을 맡을 배우는 오디션을 통해 뽑았다. 오디션 기간만 두 달여가 걸렸다. 수 명의 배우들이 캐스팅 물망에 올랐다가 탈락했다. 자신 역시 그렇게 떨어지고 다른 배우가 그 자리를 대신할 수도 있었다. 그 사실을 알았기에 더 치열하게 임했다.

기회가 간절했다. 그렇기에 이시강은 “뭐든 시켜만 준다면 잘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기회가 쉽사리 오지 않잖아요. ‘해피시스터즈’도 주연을 오디션으로 뽑을 거라는 생각을 안 했었고, 오디션에서 최종 2인이 남았을 때 떨어졌던 경우가 많아서 마음을 비우고 있었어요”라고 당시를 회상했다.

최종 합격하기까지 약 두 달. 그 기간 동안 자신이 가진 것과 캐릭터에 대해 연구한 것을 모두 보여주려 노력했고, 민형주라는 캐릭터를 맡게 됐다. 스스로의 노력으로 일궈낸 천운 같은 기회였다. 하지만 부담감도 느꼈다. 120부작이라는 긴 호흡의 드라마에 주연으로 발탁됐다는 사실은 무게감부터 달랐다.

“첫 리딩 때부터 주연으로서 이끌어가야 한다는 책임감이 대단했어요. 그만큼 죽을 힘을 다했어요. 그래서 ‘해피시스터즈’는 가슴 한 편에 잊지 못할 작품으로 남을 것 같아요”

(사진=제이스엔터테인먼트)
(사진=제이스엔터테인먼트)

작품에 참여하면서 특별히 바란 점은 없었다. 높은 시청률이나 화제성을 기대하지도 않았다. 그저 ‘죽을힘’을 다해 자신에게 주어진 역할을 제대로 해내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 그렇기에 작품과 자신에게 쏟아지는 관심과 사랑이 더욱 얼떨떨하고 감사했다.

“주변 친구들이나 동료들이 드라마 잘 보고 있다고 하니까, ‘어떻게 보지? 그 아침에 어떻게 보지?’라는 생각도 들고 신기하더라고요. 태어나서 아침드라마 처음 봤다는 사람도 많았어요. 늘 아침드라마를 보던 분들이 아니라 우연히 봤다가 빠지게 됐다는 분들이 많아서 뿌듯하고 보람 있었어요. 아침에 일어나면 주변 친구들에게서 ‘우리 부모님이 잘 보고 있다고 전해 달래’라는 문자가 몇 통씩 와 있어요. 그런 메시지들을 보면서 눈 뜨는 게 정말 행복했죠. 동시에 연기를 더 잘해야겠다는 책임감이 들었어요. 좋아해주시는 만큼 보답해야겠다는 감정이 컸던 것 같아요”

이시강은 준비기간까지 포함해 약 8개월을 민형주로 살았다. 120부작을 이끌어야 한다는 부담은 물론, ‘이렇게 공부했으면 사법고시도 패스할 수 있었겠다’는 우스갯소리를 할 정도로 대본 양도 많았다. 그만큼 매일을 치열하게 보냈다. 하지만 동시에 촬영장에서는 민형주로 사는 그 순간을 충분히 즐겼다.

“하나도 힘들지 않았어요. 행복했어요. 행복한 시간이 빨리 간다고 하잖아요. 체감 상으로는 두세 달밖에 안 지난 것 같아요. 그만큼 즐기고 있었나 봐요. 100회가 됐을 때는 끝나는 시간이 다가온다는 생각에 무섭더라고요. 마지막 회 대본을 받는 것도 무서웠어요. 시간이 너무 빨리 지나갔어요”

(사진=제이스엔터테인먼트)
(사진=제이스엔터테인먼트)

■ 축구 유망주→아이돌 그룹 멤버→배우 이시강이 되기까지

이시강의 이력은 독특하다. 파격적이라고 할 수도 있다. 초등학생 때부터 10년 넘는 시간 동안 축구 선수로 경력을 쌓았다. 유망하다는 말을 들을 정도로 실력도 출중했다. 그러나 이시강은 스무 살이 되던 해, 돌연 축구를 그만뒀다. 흔히 떠올릴 수 있는 부상으로 인한 진로 전향은 아니었다. 이시강은 그 이유를 “단순했어요. 그냥 연기가 하고 싶었어요”라고 설명했다.

그저 연기가 더 재미있게 느껴졌을 뿐이다. 그래서 축구장을 떠났고, 이후 ‘거침없이 하이킥’ 엑스트라, ‘스펀지’ 실험맨 등 단역을 맡아 연기를 시작했다. 이시강은 배우라는 꿈을 이루기 위해 차근차근 준비해나갔다. 군대를 일찍 다녀와야 이후 활동하는 데 지장이 없을 거라는 생각으로 21살에 입대했다. 군대에서 쉬는 시간을 줄여가며 독학한 일본어 실력을 바탕으로 전역 후 일본으로 떠났다. 그곳에서 우연히 한 TV 프로그램에 출연한 것을 계기로 인기를 얻어 아이돌 그룹 키노로 데뷔했다. 가수로서 어느 정도 기반을 잡아가고 있었다. 하지만 배우의 꿈을 포기할 수 없어 다시 한국행을 택했다.

“연기를 놓으면 안 될 것 같아서 다시 한국으로 돌아왔어요. 처음부터 다시 시작했죠. 6년 동안 드라마 5편, 영화 1편, 뮤직비디오 3편, 광고는 거의 100편정도 찍었어요. 이게 6년 사이에 벌어진 일들이에요. 죽기 살기로 최선을 다했는데, 다행히 조금씩 성과가 생기더라고요. 포기하지 않고 성실하게만 한다면 안 되는 일은 없다고 생각해요. 할아버지가 될 때까지 연기하면 돼요. 그때까지 연기하면 난 성공한 거라고 생각해요”

(사진=제이스엔터테인먼트)
(사진=제이스엔터테인먼트)

축구를 계속했다면 운동선수로서 성공했을지도 모른다. 일본에 계속 있었다면 가수로서 안정적인 인기를 얻으면서 활동할 수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시강은 자신이 원하는 일을 하기 위해 남들이 보기에 안전하게 보이는 길을 포기했다. 보통 이상의 용기와 스스로에 대한 믿음이 없다면 불가능한 일이다. 실제로 만난 이시강은 자신감이 넘치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그 자신감이 ‘근거 없는 자신감’은 아니다. 이시강은 맡은 캐릭터의 화술을 온전히 자신의 것으로 만들기 위해 한 대사를 수없이 반복해서 뱉어볼 정도로 노력했고, 노력한 만큼 자신을 믿는 사람이었다.

“자신감의 원천은 노력이에요. 말로만 하지 않는 거죠. 그냥 하면 돼요. 열심히만 하는 게 아니라, 목표를 이루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연구하고 실천하는 거죠. 연기를 잘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접근해야 하는지 세부적인 내용들을 계속 고민하고, 도전도 많이 해요. 연극이나 영화도 도전이었어요. 늘 처음은 도전이잖아요. ‘해피시스터즈’도 도전이었고요. 일일극은 처음이니까 당연히 부족했을 거예요. 처음에는 시청자분들이 보시기에 어색하다고 느끼셨을 텐데, 실제로 촬영 환경이 어색했어요. 그래서 빨리 적응하기 위해 쉬는 날에도 촬영장에 갔어요. 감독님이나 스태프분들께 단점을 이야기해 달라고 해서 고치려고 노력했고요”

실생활에도 연기와 스스로의 발전을 위한 노력이 곳곳에 묻어있었다. 이시강은 작품이 끝났으니 함께 연기를 공부하는 친구들과 다시 스터디를 시작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쉬는 기간에는 뭘 하느냐고 묻자 “아침에 일어나면 운동하고, 공연을 보러 다녀요. 드라마를 좋아해서 잠들기 전까지 드라마를 몰아보기도 하고요. 아, 요즘은 집 인테리어를 하고 있어요. 엄청 예쁘게 꾸며놨어요. 올 화이트예요”라고 답하며 웃었다. 운동이나 인테리어 모두 인간 이시강, 배우 이시강으로서 좀 더 멋지게 살기 위한 ‘관리’였다.

(사진=제이스엔터테인먼트)
(사진=제이스엔터테인먼트)

이시강의 인생 모토는 단순하다.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선택한 일에 최선을 다한다. 배우로서 이시강의 목표 역시 단순하고 당연한 것이었다. 너무 당연하기에 오히려 간과하기 쉬운 목표다. 그렇지만 이시강의 이야기를 모두 듣고 나니 그의 목표가 겉만 번지르르한 말이 아닌 진심을 담은 말로 들린다.

“죽을 때까지 연기하고 싶어요. 보는 사람들이 ‘이시강은 정말 연기를 잘하는 배우’라는 생각을 하도록 죽을 때까지 최선을 다하려고요. 죽을 때까지 부족하고 만족도 안 되겠지만, 그렇게 노력하면서 살 생각이에요. 또, 같이 일하고 싶은 배우로 기억되고 싶어요. 누군가 어떤 작품을 보고 내가 생각나서 같이 일하고 싶다고 말해준다면 정말 행복할 거예요. 그리고 역할의 크기에 상관없이 카메라 앞에 많이 서면서 대중에게 친숙하고, 한결 같고, 사람 냄새 나는 배우로 다가가고 싶어요. 나중에라도 변했다는 말은 절대 듣고 싶지 않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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