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SM C&C, 몽작소, tvN)
[뷰어스=노윤정 기자] 최근 로맨틱코미디 장르의 작품 SBS ‘기름진 멜로’, ‘훈남정음’, tvN ‘멈추고 싶은 순간 : 어바웃 타임’(이하 어바웃 타임) 등이 평일 드라마 프라임 시간대에 연달아 편성되며 안방극장에 ‘로코 바람’을 예고했다. 이들은 계절과 어울리는 따뜻하고 유쾌한 감성으로 시청자들을 사로잡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하지만 야심 찬 출사표와 달리 성적은 부진하다. 일부 작품들은 스타 캐스팅으로 팬층을 끌어당기고 높은 화제성을 보이고는 있다. 하지만 기대만큼 큰 호응을 이끌어내진 못한 모양새다. 시청층을 폭 넓게 아우르지 못한다는 의미다. 자연히 시청률도 저조하다.
‘기름진 멜로’는 8회 방송분이 기록한 6.8%(닐슨코리아 전국 가구 기준/ 이하 동일 기준)가 자체 최고 시청률이다. 현재는 4~5%대 시청률을 보이는 형편이다. 한 주 늦게 방영을 시작한 MBC ‘검법남녀’에 동시간대 시청률 2위 자리도 내주었다. ‘훈남정음’도 남궁민-황정음 조합이 가진 화제성에 못 미치는 시청률을 기록 중이다. 5회 방송분에서는 시청률이 3%대까지(3.7%) 떨어졌다. ‘어바웃 타임’의 경우, 지난달 29일 방영한 4회 방송분에서 닐슨코리아 집계 기준 케이블, 위성, IPTV 통합 유료플랫폼 전국 가구 평균 1.5% 시청률을 기록하는 데 그쳤다.
(사진=SBS, tvN 방송화면)
■ 클리셰 범벅, “어디서 본 듯한데…”
로맨틱코미디는 누구나 쉽게 공감할 수 있는 ‘사랑’이라는 감정을 코믹한 색채로 가볍게 즐길 수 있도록 그리는 장르다. 따라서 시청자들의 진입장벽이 높지 않고, 어느 정도의 흥행성도 담보하고 있다. 그런데 현재 방영 중인 로맨틱코미디 드라마들은 시청자들에게 아쉬운 평가를 받고 있다.
일단, 작품들이 이미 시청자들에게 익숙해진 전개를 취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 이유를 찾을 수 있다. 사실 로맨스 드라마는 어느 정도 뻔한 스토리라인을 가진다. 하지만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동어반복 같은 전개로는 시청자들의 시청 욕구를 자극할 수 없는 법이다.
‘기름진 멜로’, ‘훈남정음’, ‘어바웃 타임’ 속 여자 주인공의 면면을 보자. ‘기름진 멜로’의 단새우(정려원)는 남 부러울 것 없는 재벌 2세로 살다가 집안이 파산하면서 인생의 온갖 불행을 떠안게 된 인물이다. 하지만 항상 밝고 씩씩하며, 순수하다. ‘훈남정음’ 속 유정음(황정음)은 첫사랑에게 버림받은 상처와 꿈을 포기한 아픔을 마음에 품고 있다. 하지만 온몸에서 당차고 밝은 에너지가 느껴진다. ‘어바웃 타임’의 최미카엘라(최미카/이성경) 역시 마찬가지다. 자신이 시한부 인생이라는 것을 알게 된 후에도 밝고 씩씩하며, 좌절하기보단 죽기 전에 자신의 꿈을 이루려고 노력한다.
남자 주인공은 또 어떤가. ‘기름진 멜로’ 서풍(준호)은 근무하는 호텔 중식당에 미슐랭 투스타 식당이라는 타이틀을 안길 정도로 실력 있는 중식 셰프다. 요리에 관한 일에는 누구보다 깐깐하고 까칠하며, 말투도 투박하다. 하지만 내 사람에게는 다정하다. 두칠성(장혁)은 조폭 출신 동네 중국집 사장으로, 단새우에게 첫눈에 반해 키다리아저씨 같은 사랑을 시작한다. ‘훈남정음’ 속 강훈남(남궁민) 캐릭터 설정 역시 익숙하다. 집안, 외모, 능력 무엇 하나 빠지는 면이 없다. 하지만 혼외자로 태어나 자란 출생배경으로 인해 사랑을 믿지 않고 냉소적이다. ‘어바웃 타임’ 이도하(이상윤)는 로맨틱코미디 속 남자 주인공의 전형을 따른다. 재벌가 셋째 아들로 그룹 상속에 대한 야망이 있고 결혼에 있어서 사랑보단 조건을 우선시한다. 천성이 이기적인데, 범불안장애로 인해 까칠해지기까지 했다.
능력 있고 시니컬한 남자 주인공과 어떤 역경에도 꿋꿋한 캔디형 여자 주인공의 조합은 클리셰 중에서도 클리셰다. 여기에 주인공들이 만나는 과정도 다른 작품에서 많이 봐왔던 모습들이다. 전적으로 우연에 기댄다. ‘기름진 멜로’ 두칠성, 단새우, 서풍은 우연히 같은 날 같은 미용실을 이용하며 처음으로 만났고, 단새우가 부탁한 자장면을 만들기 위해 서풍이 두칠성의 중국집으로 향하며 세 사람이 다시 한 자리에서 만나게 됐다. ‘훈남정음’ 강훈남과 유정은은 5년 전 공항에서 우연히 마주했던 것을 시작으로, 제주도, 한강에서 우연한 만남을 반복했다. ‘어바웃 타임’ 이도하와 최미카 역시 차 사고로 처음 만난 후 뮤지컬 오디션장, 중국 하이난에서 우연히 마주쳤다. 반복된 우연이 인연이 된다. 로맨틱코미디 드라마에서 흔하게 사용되는 첫 만남 공식이다.
첫 만남부터 사랑에 빠져가는 과정까지 낯설지 않다. 시니컬하고 사랑을 믿지 않는, 혹은 사랑에 상처 받은 남자가 반복된 우연 속에서 운명의 여자를 만나 사랑에 빠지는 이야기는 이제 시청자들에게 신선함을 주기 어렵다. 또한 ‘기름진 멜로’의 경우, 표현이 까칠한 남자와 감정을 순수하게 표현하는 남자가 한 여자에게 빠지며 익숙한 삼각관계를 만들었다. ‘훈남정음’과 ‘어바웃 타임’에는 각각 여자 주인공과 오랜 시간 친구로 지내온 자상한 남사친(남자사람친구), 모든 조건이 완벽한 남자 주인공의 약혼자가 등장한다. 이 역시 클리셰적인 요소라고 볼 수 있다.
(사진=SBS, tvN 방송화면)
■ 더 큰 문제는 바로 '서사'
물론, 클리셰가 꼭 나쁘다고만 할 수는 없다. 어떤 설정이 ‘클리셰’라고 여겨질 정도로 작품에 많이 사용돼 왔다면, 그만큼 오랜 시간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아왔다는 의미다. 클리셰가 주는 익숙함은 작품에 대한 접근성을 높여주기도 한다. 진부함, 식상함을 극복할 탄탄한 스토리만 있다면 말이다.
결국 문제는 스토리가 가지는 힘의 부재다. ‘기름진 멜로’는 사랑, 복수, 요리, 담고자 하는 이야기가 많다. 또, 보는 이들을 설레게 하는 동시에 웃기고 싶어 한다. 하지만 이 모든 요소들이 유기적으로 엮여 하나의 ‘맛’을 낸다는 느낌을 주진 못한다. 메인 스토리의 한 축을 구성했어야 할 서풍의 복수극이 제 힘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각각의 스토리를 한 데 모이게 하는 중심축이 없으니, 모든 이야기들이 겉 돌고 극이 진전되질 않는다.
‘훈남정음’ 역시 마찬가지다. 강훈남과 유정음의 관계가 어떻게 변화할지는 첫 회 방송만 봐도 예상이 가능하다. 그렇다면 ‘훈남정음’이 해야 할 일은 탄탄하게 스토리를 구성해 시청자들이 강훈남과 유정음의 감정 변화에 함께 호흡하게 하는 것이다. 하지만 극 중 두 사람의 감정이 쌓여가는 과정은 클리셰와 다소 작위적인 상황들에 의존한다. 그러다 보니 개연성이 떨어진다. 주인공들의 감정선을 따라가기가 어렵다. 강훈남과 유정음의 키스신에 ‘설렌다’보다 ‘뜬금없다’는 반응이 먼저 나온 이유다.
‘어바웃 타임’은 현실감이 없다. ‘수명 시계’라는 판타지적인 소재 때문만은 아니다. 재벌가 남자와 고단한 삶을 사는 여자의 스토리도 일단 차치할 수 있다. 문제는 이도하와 최미카의 러브라인이 크게 설득력을 갖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이도하가 갑작스럽게 최미카를 좋아하게 된 이유를 정확히 꼬집기 어렵다. 공감하기 어려우니 시청자들 입장에서는 현실감이 떨어지고 비현실적인 소재, 상황들과 맞물려 극이 붕 떠있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 극 안에 판타지적인 소재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로맨스와 시청자들 사이의 거리감을 좁힐 서사가 보이지 않는다.
이처럼 최근 방영되고 있는 로맨틱코미디 장르가 부진한 이유는 바로 스토리의 부재다. 경쟁작들 사이에서 시청자들의 눈을 붙들어둘 만큼 매력적인 스토리가 없다. 서사가 죽으니 주인공들의 어울림 역시 살아나지 못한다. 작품 속 로맨스 씬 하나하나만 놓고 본다면, 충분히 설레고 멋있다. 하지만 결국 그냥 흘러지나가는 씬이 돼 버린다. 스토리가 없으니 씬이 의미 없이 소비되는 것이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극이 멋있는 장면, 대사들의 짜깁기가 되어서는 안 된다. 배우들의 역량에만 기대서도 안 된다. 로맨틱코미디 작품들이 부진을 벗어나기 위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다름 아닌 스토리에 힘을 싣는 작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