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지(사진=마스트엔터테인먼트)
[뷰어스=한수진 기자] “뮤지컬 ‘드림걸즈’ 출연 당시에 베스티 활동도 함께 하고 있었어요. 그때 가수활동 하면서 처음 보람을 느꼈죠”
흔히 아이돌의 뮤지컬 도전이라면 인지도를 바탕으로 캐스팅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유지는 달랐다. 실력 하나로만 승부를 봤고, 아예 뮤지컬배우로 전향까지 했다.
뮤지컬은 지금 그의 인생의 전부다.
“가수를 했을 땐 자존감이나 자신감이 굉장히 낮았어요. 사실 운도 따라줘야 하고 실력도 따라줘야 하는 판이잖아요. 그런데 당시엔 그룹이 잘 안되는 게 내 탓이라고만 생각했어요. 그래서 자존감도 많이 낮아졌죠. 그런데 뮤지컬배우로 전향하고 나서 자존감이 높아지고 모든 일에 감사하는 마음을 갖게 됐어요. 돌아보니 걸그룹 하면서 겪었던 일들이 많은 도움이 되는 거 같아요. 그런 경험 덕분에 지금에라도 뮤지컬로 옮길 수 있었다고 생각해요. 그냥 힘들었던 일도, 좋은 경험도, 괴로운 경험도 다 감사해요”
유지의 걸그룹 생활은 그리 순탄치 않았다. 그저 노래가 좋아서 시작한 일이었지만 결과에 대한 책임감이 늘 그를 옥죄었다. EXID를 시작으로 베스티까지 두 차례나 그룹에서 탈퇴한 그는 정신적으로도 많이 지친 상태였다. 그야 말로 벼랑 끝 가수 생활을 한 그는 자신에게 첫 보람을 안긴 뮤지컬배우로 새 길을 걷기 시작했다.
간절함과 노력 덕분일까. 유지는 단 두 번의 뮤지컬 출연 만에 대작 ‘노트르담 드 파리’ 여주인공 에스메랄다 역을 꿰찬다. 그것도 차지연, 윤공주 등 기라성 같은 대선배들과 함께였다.
“처음 에스메랄다 배역을 맡게 됐다는 소식을 먼저 듣고 난 후에 트리플캐스팅 됐다는 걸 들었어요. 에스메랄다 역할이 돼 좋았던 것도 잠시였고 걱정부터 되더라고요. 정말 대단하신 선배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게 돼서 영광이고 좋긴 했지만 언니들에 비해서 난 경험도 없고 부족한 점도 많다 보니까 그냥 막막했던 것 같아요. 언니들보다 내가 부족한 게 당연하잖아요. 어쨌든 보는 사람 입장에선 비교가 될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딱 한 가지 생각으로 열심히 준비했죠. ‘작품에 누를 끼치지 말자’ ‘민폐 끼치지 말자’는 생각으로요”
찬사가 쏟아졌다. 무대 위 유지는 에스메랄다 그 자체였다. 눈빛은 살아있고, 무대를 누비는 그의 몸짓은 강한 집중력을 갖게 한다. 우리가 알던 그 유지가 맞나 싶었을 정도다. 이는 곧 평단의 호평으로 이어진다.
“나도 잘 모르겠어요. 그런데 그건 있는 것 같아요. 연습하면서 선배들한테 캐릭터와 잘 어울린다는 말을 많이 들었어요. 전작 ‘드림걸즈’ 할 때도 그 이야기를 들었죠. 당시 연기에 관해서 어려움을 느끼고 있었는데 한 선배가 와서 ‘너 근데 디나야. 서있어도 디나 같아’라는 이야기를 많이 해주셨어요. 또 디나도 그렇고 이번 에스메랄다도 나이가 어려요. 그런 정서적인 게 나와 맞지 않았나 싶어요”
유지(사진=마스트엔터테인먼트)
■ “‘넌 최고의 에스메랄다’라는 칭찬 덕분에 힘 얻었죠”
‘노트르담 드 파리’ 속 에스메랄다는 치명적인 아름다움과 순수한 영혼을 동시에 지닌 인물이다. 내면과 외면의 괴리가 크고, 서사의 굴곡이 짙은 인물이다. 결코 연기하기 쉬운 캐릭터는 아니다.
“처음엔 섹시하기만 한 캐릭터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연습하면서 소설을 읽다보니까 때 묻지 않고 순수한 인물이더라고요. 외적인 섹시함이 강해서 남자들의 욕망의 대상이 되기도 하지만 에스메랄다는 그걸 모르는 캐릭터에요. 이런 부분을 참고했던 것 같아요. 사실 언제부턴가 순수한 걸 보면 눈물을 많이 흘려요. 이번에도 무대하면서 콰지모도가 불쌍해서 눈물이 그렇게 나는 거예요. 연출님이 나의 이런 모습을 보고 그러셨는지 모르겠지만 내적으로 에스메랄다의 성격을 가장 많이 담은 인물이라고 했더라고요”
더욱이 공연을 앞두고 불안해하는 그에게 차지연, 윤공주가 많은 조언을 해줬다고 한다. 그 덕에 힘을 낼 수 있었다고 털어놓는다.
“두 분이서 조언을 정말 많이 해줬어요. (차)지연 언니의 경우는 내가 가수 활동을 많이 한 걸 알고 그런 부분에 대해 조언을 많이 해줬어요. 가수 습관을 빨리 빼야한다는 말과 함께 제스처 할 때나 몸짓으로 표현할 때 팁도 많이 알려주셨죠. 앞으로 뮤지컬하면서 어떤 부분을 조심해야하는 지에 대해서도 많은 이야기를 해줬어요. (윤)공주 언니의 경우는 칭찬을 많이 해줬어요. 못하는데도 불구하고 ‘넌 그냥 최고다’고 말해줬죠. 어느 날은 언니한테 궁금한 걸 묻다가 운적이 있어요. 내 마음대로 되지 않으니까. 내가 진짜 오디션만 합격했다고 해서 욕심 부렸나는 생각까지 했어요. 그런데 언니가 좋은 말을 많이 해줬어요. ‘넌 그냥 에스메랄다 같아’라면서 ‘난 너의 가능성을 많이 봤다. 넌 최고의 에스메랄다야’라고 해줬죠. 빈말일 수 있고 위로의 말일 수도 있지만 나한테 정말 많은 힘이 됐어요. 두 분 다 정말 많이 도와줬어요”
이러한 주위의 격려에도 우려한 참사가 일어난다. 공연 도중 성대가 터져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던 것이다. 유지는 좋지 않은 목 상태로 제 기량을 발휘할 수 없어 속상한 마음을 털어놓는다.
“사실 지금 성대가 터졌어요. 병원에서 2주 동안은 말하지 말라고 했죠. 더 터지면 답이 없다고 하더라고요. 수술해야한다고 했어요. 그래서 조심스럽게 노래 부르니까 아쉬운 부분이 많아요. 모든 공연을 맘에 들게 해도 모자라다고 생각하는데 목이 이러니까. 더욱이 출연 회차도 많이 없어서 무대 하나하나가 굉장히 소중한 상황이에요. 큰 작품의 큰 역할을 맡았고 배역을 맡은 배우 중 경험이 제일 없다 보니까 관리를 진짜 열심히 하려고 했거든요. 참사가 났던 날이 있어요. 최선을 다해서 노래를 부르고 있는데 갑자기 음소거가 된 거죠. 꾸역꾸역 노래를 부르는데 클라이맥스에서 목소리가 안 나왔어요. 10년 동안 노래를 하면서 이런 적이 없었거든요. 병원에 갔더니 혈관이 터져서 출혈이 났다고 하더라고요”
그럼에도 그의 얼굴엔 가수 때와 달리 화색이 돈다. 뮤지컬을 하고 있는 현 삶에 상당한 만족감이 느껴진다. 더 이상 가수로서 활동 계획이 없다는 그는 뮤지컬배우로만 전념할 뜻을 밝힌다.
“가수로서의 미련은 다 털어버린 것 같아요. 더 할 수도 있겠지만 어느 정도 해봤고 나한테 안 맞는 직업이라는 걸 느꼈거든요. 지금이 너무 행복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