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율감각 쾌락반응을 일컫는 ASMR(Autonomous Sensory Meridian Response)이 하나의 문화 현상으로 자리 잡고 있다. 트리거(Trigger, 심리적 자극)를 통해 ASMR을 유도하는 콘텐츠는 팟캐스트, 유튜브 등 뉴미디어를 넘어 이젠 대중매체에서도 어렵지 않게 접할 수 있다. 이처럼 ASMR이 각종 콘텐츠에서 각광받는 소재로 떠오른 이유는 무엇일까. 현대인들이 ASMR 콘텐츠를 소비하는 심리와 효과를 살펴본다. -편집자주-
(사진=미니유 유튜브 영상 캡처)
[뷰어스=노윤정 기자] 국내에 ASMR(Autonomous Sensory Meridian Response, 자율감각 쾌락반응)을 알린 사람은 누구일까. 바로 유튜버이자 국내 1세대 ASMR 크리에이터인 미니유(본명 유민정)다. 미니유는 국내에서 ASMR을 검색하면 가장 많이 언급되는 인물로, ASMR이 무엇인지 국내에 잘 알려져 있지 않던 시절 ASMR 영상을 제작해 동영상 공유 사이트 유튜브에 올리기 시작했다. 2013년 9월부터 벌써 5년째 활동하고 있으며 운영하고 있는 세 개 채널에 등록된 콘텐츠만 800개가 넘는다.
미니유는 여느 사람들과 다르지 않은 사회 초년생 시절을 보냈다. 연극배우가 되고 싶었지만 오디션에서 계속 탈락의 고배를 마셨고 회사를 몇 차례 옮기면서 마음이 지쳐갔다. 그때 위안이 되어준 것이 바로 ASMR이다. 우연히 접한 ASMR 영상에 크게 위로를 받았다. 하지만 당시만 해도 국내에는 ASMR 콘텐츠는커녕 개념조차 잘 알려져 있지 않았다. 당연히 한국어로 된 ASMR 콘텐츠는 전무하다시피 했다. 그래서 직접 만들기 시작했다.
미니유에게 ASMR은 실질적인 효과를 떠나 ‘위로’ 그 자체였다. 그것만으로 가치가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사람들에게 위로를 전하는 것, 그게 바로 미니유가 ASMR 영상을 계속해서 제작하는 이유다. ASMR을 국내에 더 많이 알리고 싶다는 소망을 갖고 있는 국내 1세대 ASMR 크리에이터 미니유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 어떻게 처음 ASMR 콘텐츠를 접했는지 궁금합니다.
“인터넷에서 외국 ASMR 업로더들에 대한 글을 보게 되면서 처음 접했어요. 영상을 보다 보니까 뭔가 마음도 편안해지고 좋더라고요. 쭉 듣다 보니까 한국어로도 듣고 싶어졌어요. 그런데 제작된 영상이 없었고 ‘너무 좋은데 왜 없을까, 내가 한 번 시작해봐야겠다’라는 생각이 들어 이 일을 시작하게 됐습니다. (…) ‘팅글’(Tingle)이라는 게 있어요. 뇌를 간지럽히는 듯한 느낌을 받는 현상인데 나는 어렸을 때부터 그런 현상을 느꼈었어요. 누가 머리카락을 만줘졌을 때 머릿속이 간질간질해진다고 해야 하나? 그런 현상을 자주 느꼈는데 ASMR 영상을 보고 이게 나만 느끼 게 아니고 외국에는 그런 걸 유도하는 영상도 있었다는 걸 알게 돼서 신기했어요”
▲ 처음엔 취미로 시작했을 텐데, 전업 유튜버가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취미로 시작했을 때가 한창 취업을 준비하던 시기였어요. 여러 회사에 들어갔다 나오는 걸 반복하면서 마음이 많이 지쳐있었죠. 그때 ASMR 영상을 취미로 제작하면서 위안을 많이 얻었어요. 그러다보니까 아무래도 내 적성에 맞는 건 이쪽인 것 같다, 돈을 얼마를 벌든 상관없이 난 이걸 직업으로 삼아야겠다는 확신이 들었어요. 큰 용기를 가지고 결단을 내렸다기보다 그냥 해야겠단 마음으로 시작한 것 같아요. 뭔가 하고 싶은 게 있으면 깊게 생각 안 하고 일단 시도부터 하는 타입이에요”
(사진=미니유 유튜브 영상 캡처)
▲ 제작한 영상 중에 어떤 영상이 가장 반응이 좋았나요?
“반응이 좋았던 건 참 많지만….(웃음) 가장 기억에 남는 영상이 있긴 해요. 비오는 날에 직접 비를 맞으면서 빗소리를 녹음한 영상이 있어요. ‘당신의 비 대신 맞아줄게요’라는 제목으로 당신의 슬픔과 고통을 내가 함께 하겠다, 이런 의미로 만들었거든요. 실제로 비를 맞으면서 촬영하고 빗소리를 입혔어요. 나중에 영상을 올리고 댓글을 보는데 ‘눈물이 났다’, ‘너무 힘든데 누가 같이 있다는 느낌이 들어서 위로가 됐다’는 반응이 많아서 뿌듯했어요. 앞으로도 이렇게 사람들에게 위로를 줄 수 있는 콘텐츠를 많이 만들어야겠다는 생각도 더 하게 됐고요”
▲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소리가 있나요?
“빗소리를 좋아해요. 비오는 소리, 우산에 비 떨어지는 소리를 되게 좋아해요. 그것 말고도 자연 소리를 좋아하는 편이에요”
▲ 처음 ASMR 영상을 만들기 시작했을 때와 지금을 비교하면 어떤 점이 달라진 것 같나요?
“내가 처음 ASMR 영상을 올렸을 땐 대부분 사람들이 이게 뭐하는 영상인지 몰랐어요. 그래서 ‘이게 뭐냐’, ‘왜 혼자 속삭이고 있냐’라는 내용의 댓글도 많았고 악성 댓글도 있었어요. 그런데 요즘은 방송이나 광고에도 ASMR이 쓰이고 있잖아요. 옛날에 비해 많이 대중화가 된 것 같아서 그런 점이 신기하고 초반에 만들었던 사람으로서 뿌듯하기도 해요”
▲ ASMR 콘텐츠를 소비하는 사람들이 늘어난 이유는 무엇이라고 보는지 궁금합니다.
“아무래도 요즘 현대인들이 너무 지치고 힘들다보니까 쉴 곳이 필요한 것 같단 생각이 들어요. 그런데 비싼 마사지숍에 가서 안마를 받거나 여행을 떠나기엔 한계가 있으니 손쉽게 휴대폰만으로 힐링할 수 있는 콘텐츠를 찾은 것 같아요. 또 많이 외롭다보니까 누군가 나와 함께 있다는 느낌, 누군가 나를 케어해주고 있다는 느낌을 간접적으로 받음으로써 위로를 느끼는 것 같아요. 그래서 많이 찾는 게 아닐까요?”
▲ 그만큼 요즘 위로와 쉼이 필요한 사람이 많다는 의미일 텐데, 이런 사회적 현상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나도 그렇게 외롭고 힘들고 지친 시기를 경험했던 사람이라서 많이 공감하고 있어요. ‘젊은 현대인들을 위한 탈출구 같은 게 필요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한 적도 많아요. 사회적으로 사람들을 너무 몰아붙이는 것 같아요. 조금 쉴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요? 마음의 여유가 정말 부족한 것 같단 생각이 들어요”
(사진=미니유 유튜브 영상 캡처)
▲ ASMR은 주로 청각적 자극을 통해 얻는 감각인데, 이런 소리 콘텐츠의 강점은 무엇이라고 보나요?
“과거에 좋았던 기억을 끄집어 불러일으키는 매개체가 된다고 생각해요. 예를 들어 어렸을 때 엄마가 머리를 쓰다듬어 주면서 귀를 파주던 소리를 ASMR 콘텐츠로 재구성해 들려줌으로써 당시 엄마의 손길 등 과거의 좋았던 기억까지 불러일으킬 수 있는 매개체가 아닐까 생각해요. 그래서 더 ‘힐링’이라는 코드와 잘 맞는 것 같아요”
▲ ASMR에 대해 아직 연구가 부족하다보니 실제 효과에 대해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는 사람들도 있어요.
“물론 연구는 더 돼야 하겠지만 솔직히 과학적인 효과가 있고 없고가 뭐가 중요한가 싶기도 해요. 예전에 함께 인터뷰 했던 정신과 의사가 말씀하시기를 ‘과학적인 근거가 있고 없고를 떠나서 그 콘텐츠를 접했을 때 나한테 긍정적인 효과가 있다면 소비하면 된다’고 하셨거든요. ASMR을 유도하는 소리를 들었을 때 나한테 맞지 않는 것 같고 불쾌감을 준다면 안 들으면 돼요. 긍정적인 영향, 편안함을 준다면 들으면 되고요. 중독에 대한 걱정도 있는데 그게 ASMR의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해요. 소비하는 분들이 잘 컨트롤하면서 즐길 수 있는 콘텐츠가 됐으면 좋겠어요”
▲ 아직도 ASMR 콘텐츠에 대한 부정적인 시선이 많이 있나요?
“요새는 별로 없는데 초반에는 공격적인 기사들도 많았어요. ‘불면증에 정말 효과가 있는가’, ‘선정적인 내용의 콘텐츠도 있다’ 이런 내용들이었죠. 실제로 ASMR을 ‘19금’으로 변질 아닌 변질을 해서 생산하는 분들도 있는데 사실 5년 전쯤엔 나도 그런 부분을 많이 걱정했어요. 사람들이 ASMR을 잘 모르는 상태에서 그런 선정적인 콘텐츠를 먼저 접하면 잘못된 선입견이 생길 수 있잖아요. 그런데 참 신기한 게 그런 콘텐츠는 자연적으로 도태되고 사라지더라고요. 사람들이 소비하지 않는다는 뜻인 것 같아요. 또 처음엔 내 영상에도 악성 댓글이 엄청 많았어요. 왜냐하면 이 영상이 뭔지 잘 몰랐으니까요. 별로 속상하진 않았어요. 내가 더 많이 알려서 언젠가는 당당해질 수 있는 날이 오면 좋겠다는 오기가 생기기도 했죠”(웃음)
(사진=미니유 유튜브 영상 캡처)
▲ 계속 ASMR 크리에이터로서 활동할 수 있는 원동력은 무엇인가요?
“일단 내가 참 재미있어서 하는 일이기도 한데, 사람들이 내 영상을 보고 위안을 얻었다고 말해주는 게 참 좋더라고요. 좀 더 많은 사람들에게 편안함을 주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도움이 됐다, 위로 받았다’ 이런 말들이 내가 이 일을 계속 할 수 있게 하는 원동력이에요”
▲ 활동하면서 가장 보람을 느꼈던 순간은 언제였나요?
“한 구독자분이 보내준 메일을 읽으면서 눈물을 엄청 흘린 적이 있어요. 우울증이 너무 심해서 약도 오래 복용하고 안 좋은 시도도 했는데 내 영상을 보고 정말 새 삶을 얻었다고 말씀하시더라고요. 그 메일을 보고 ‘아 나는 이 일을 평생 해야겠다, 정말 알게 모르게 내가 누군가의 생명을 구할 수도 있는 거구나’라는 걸 그때 느꼈어요”
▲ ASMR 크리에이터로 갖고 있는 목표가 궁금해요.
“ASMR이 내가 가장 심적으로 힘들고 어두웠던 시기에 일으켜 세워주고 인생의 2막을 열어줬다고도 할 수 있어요. 그래서 특별하고 감사해요. 이렇게 내가 도움 받고 행복을 느끼는 만큼 더 많은 사람들에게 ASMR을 알리고 긍정적인 영향을 끼치는 콘텐츠를 만드는 게 목표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