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스튜디오 온스타일)
[뷰어스=손예지 기자] 웹드라마는 비교적 적은 시간을 들여 드라마 한 편을 볼 수 있다는 게 장점이다. 그러나 이는 동시에 한계로 작용한다. 편당 분량이 짧아 다양한 이야기를 늘어놓기 충분치 않기 때문이다. 등장인물의 나이와 직업, 배경만 다른 로맨스가 웹드라마의 주를 이루게 된 배경이다.
그 속에서 스튜디오 온스타일이 선보인 ‘좀 예민해도 괜찮아’(연출 김기윤)와 ‘연애 강요하는 사회’(연출 고재홍)의 의미는 분명 남달랐다. 두 작품 모두 20살 여자 대학생을 주인공 삼아 ‘좀 예민해도 괜찮아’는 젠더이슈를, ‘연애 강요하는 사회’는 연애가 하나의 스펙이 되어버린 현대사회를 각각 그렸다.
영리한 선택이었다. 온스타일의 타깃 시청층인 1539 여성이 사회적으로 관심갖는 사안을 웹드라마와 접목한 덕분에 관심 끌기에 성공했다. 최근 전편이 공개된 ‘좀 예민해도 괜찮아’는 첫 회 게시 한 달 만에 누적 조회수 2000만 건을 돌파하는 성과를 냈다. 채널 자체 최고 기록에 해당한다.
사회적으로 유의미한 메시지를 전하고자 한 점도 높이 평가할 만하다. ‘좀 예민해도 괜찮아’는 12개 에피소드를 통해 페미니즘을 소개하고 현대사회에서 여자들에게 가해지는 성차별과 폭력 등의 위험성을 보여줬다. 그런가 하면 ‘연애 강요하는 사회’는 여자 주인공이 “연애를 해야 예뻐진다”는 커플들에게 싱글의 장점을 설파하는 모습이 흥미로웠다.
그러나 기존의 웹드라마와 마찬가지로 결국은 로맨스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한 점은 아쉽다.
(사진='좀 예민해도 괜찮아' 캡처)
제작진은 애초 ‘좀 예민해도 괜찮아’를 ‘주인공 신혜(김다예)가 젠더사건을 겪으며 올바른 페미니스트로 성장하는’ 드라마라고 소개했다. 이에 따라 술자리나 클럽에서 여자에게 가해지는 성추행이나 페미니스트에 대한 편견, 디지털 성범죄 유형 중 하나인 성관계 동영상에 대한 에피소드를 내보낸 바 있다. 그렇다면 각 에피소드는 ‘올바른 페미니스트로 성장하는’ 결말을 도출했을까.
여자 주인공 신혜(김다예)는 백마 탄 왕자님처럼 나타난 남자 주인공 도환(김영대) 덕분에 성추행을 피한다. 페미니스트 채아(홍서영)와 갈등하던 연인 지호(나종찬)는 포털사이트에 ‘페미니즘’을 검색해본 뒤 자신의 무지를 쉽게 반성한다. 상대가 원하지 않는 만남과 스킨십이 ‘폭력’이라는 걸 안다면서도 사과하기 위해 무작정 채아의 집앞을 찾아가 무릎을 꿇고 입을 맞춘다. 채아는 “널 더 사랑한 내가 죄”라는 말로 용서한다. 예지(이유미)는 남자친구가 성관계 동영상을 찍자고 해 고민이라는 이야기를 털어 놨다가 친구들에게서 리벤지 포르노의 위험성에 대해 듣는다. 그러자 “우리 오빠는 그런 사람 아니다”라고 발끈한다. 예지는 오랜 고민 끝에 남자친구에게 “나는 나도 소중하다”며 촬영을 거부한다. 남자친구가 “내가 잘못했다”며 사과하는 장면으로 이 에피소드는 해피엔딩을 맞았다.
‘좀 예민해도 괜찮아’는 현대 사회에서 여자가 ‘나’를 지키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보여주지만, 사회가 ‘왜’ 이렇게 되었는지에 대한 설명은 부족하다. 그나마도 기승전 로맨스로 귀결되는 스토리로 진짜 강조되어야 할 메시지를 희석시켰다는 지적도 받는다.
(사진='연애 강요하는 사회' 캡처)
‘연애 강요하는 사회’는 또 어떤가. 극 중 사진 촬영이 취미인 고양이 집사 사랑(김소혜)은 ‘연애 좀 하라’는 주위의 닦달에 시달린다. 남자와 함께 있는 모습이 목격되기라도 하면 ‘둘이 사귀는 사이냐’ ‘잘 해보라’는 오지랖을 듣는다. 사랑은 연애 외에도 할 일이 많아 바쁘고 같이 있던 남자와는 아무 사이가 아니라고 해명한다. 그러나 결국 3회 만에 연애를 시작한다.
분위기에 휩쓸려 시작한 연애는 사랑에게 부담으로 다가온다. 남자친구 승혁(김영재)을 만나느라 친구와 놀거나 고양이를 돌볼 시간을 빼앗기는 것도 불만이다. 극 중 승혁은 잘생기고 훤칠한 데다 사랑을 극진히 대하는 인물로 묘사된다. 애정의 정도가 다소 일방적인 모양새다. 내 의지가 아니라 주위의 분위기에 휩쓸려 시작된 관계이기에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다. 이것이 바로 ‘연애 강요하는 사회’가 비판하고자 했던 지점일 게다. 이 과정에서 승혁은 잘생기고 훤칠한 데다 연인에게 극진한 인물로 묘사된다. 이와 비교했을 때 사랑의 태도가 배려심 없고 이기적인 태도로 비쳐질 수 있다는 점이 문제다. 이는 ‘연애 강요하는 사회’의 남은 2회가 풀어야 할 숙제다.
‘좀 예민해도 괜찮아’와 ‘연애 강요하는 사회’는 웹드라마 주제의 폭을 넓히는 데 기여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남다르다. 다만 아직은 출발 단계이기에 부족했던 지점도 분명히 있었다. 특히 ‘좀 예민해도 괜찮아’를 연출한 김기윤 PD는 “앞으로도 의미 있는 메시지를 담은 콘텐츠를 지속적으로 기획·제작하려 한다”는 포부를 드러낸 바 있다. 그런 만큼 앞으로 탄생할 사회적 웹드라마는 단순히 사회 현상을 그리는 데만 그칠 게 아니라 ‘왜’와 ‘그 다음은 어떻게’를 묻고 답할 수 있기를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