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해진(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뷰어스=남우정 기자] “나중엔 이 때를 그리워 할 것 같아요”
유해진은 충무로에서 그 누구보다도 바쁜 배우다. 작년엔 대작 ‘택시운전사’ ‘1987’에 출연했고 올해에도 ‘레슬링’과 ‘완벽한 타인’ 두 작품을 선보였다. 내년에도 ‘전투’ ‘말모이’ 두 작품의 개봉이 예고된 상황이다. 워낙 많은 작품에서 활약을 해왔지만 최근 출연하는 작품들마다 그에게 주어진 역할은 더욱 커졌다.
“많이 하는데 더 많아진 건 아니에요. ‘공조’ ‘1987’ ‘택시운전사’ 등 최근에 한 작품이 이슈가 돼서 그렇죠. 특별히 많이 한 것 같진 않아요. 얼마 전 처음으로 회사 홈페이지에 들어가봤는데(웃음) 프로필을 보니 내가 매년 한 두 작품을 했더라고요. 다행이다 싶어요. 복 받는 거죠”
쉴 틈 없이 일을 하는 유해진에게도 지치는 순간이 있다. 하지만 유해진은 그럴수록 자기 자신에겐 냉철한 평가를 내렸다. 예능에서 세상 너그러워 보였던 유해진은 스스로에겐 그 누구보다도 엄격했다.
“가끔은 지치죠. 그럴 때 나중엔 하고 싶어도 못한다고 생각해요. 다작한다고 하는데 그래봤자 몇 년 안 남았어요. 대중의 시건과 실제로 내가 체감하는 건 다른 것 같아요. 나중엔 아마 이때를 그리워할 것 같아요. 그래서 힘들더라도 열심히 하자고 생각해요. 할 수 있을 때 해야죠”
그런 면모는 일상에서도 묻어났다. 오전 10시부터 시작됐던 인터뷰에 앞서 유해진은 등산을 하고 왔다고 했다. 등산에서 수영, 자전거 등 종목을 바꿔가면서 체력관리를 꾸준히 하는 이유도 결국은 일 때문이다.
“일이 없을 때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요. 그래도 조금은 득이 되거나 날 들볶는 일을 찾아요. 나태해지는 걸 못 참아요. 쉬더라도 뭘 하면서 쉬는 게 좋아요. 오랜 습관이죠. 그렇지 않으면 기분이 안 좋아요”
■ “‘완벽한 타인’, 촬영하면서도 편안했어요”
이렇듯 일을 할 때나 일을 하지 않을 때도 자기 자신에게 엄격한 유해진에게 이번 영화 ‘완벽한 타인’은 ‘쉼’이 되는 작품이다. 완벽해 보이는 커플 모임에서 한정된 시간 동안 핸드폰으로 오는 전화, 문자, 카톡을 강제로 공개해야 하는 게임 때문에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은 영화에서 유해진은 서울대 출신의 가부장적이고 고지식한 태수 역을 맡았다. 화려한 멀티 캐스팅에 유해진은 “한결 편해요”라며 웃었다.
“나에게 쉼이 될 수 있는 작품이라고 생각하고 시작을 했어요. 여러 명이 나와서 마음도 가볍고 인터뷰도 나눠서 해서 여러모로 좋아요. 원톱, 투톱 작품을 많이 해본 건 아니지만 부담이 엄청 날텐데 이건 마음이 편안해요. 이 영화는 촬영할 때부터 편했어요. 배우들끼리도 촬영하면서 ‘괜찮은 작품이 나오겠다’는 말을 했었어요”
촬영하면서 편안함을 감지했다고 해서 쉽게 선택할 수 있었던 것은 아니다. ‘완벽한 타인’은 단 하루라는 시간, 같은 장소에서 벌어지는 일을 담아냈다. 지루할 수 있는 요소가 충분하다. 독특한 설정이나 한국 정서에서 이해하긴 힘든 부분이 있다. 유해진 역시 이런 부분들을 걱정했다.
“읽을 땐 많은 생각이 들었어요. 한국 정서랑 맞는 걸까 싶었죠. 외국 원작이라서 많은 작업을 한 거예요. 사실 게임에서 누구 하나 박차고 일어나면 끝이잖아요. 끝까지 끌고 갈 장치가 필요하다고 생각을 했어요. 연극적이라 단조로운 것도 걱정이었죠. 근데 정말 쉼표가 잘 들어갔어요. 식탁에서, 부부 욕실도 갔다가 월식을 보러 베란다로도 가고. 한 집안이지만 활용을 너무 잘한 것 같더라고요”
영화에서 핸드폰은 또 다른 주인공이다. 핸드폰 속 통화내역, 문자, 메신저가 갈등을 일으킨다. 실제로 유해진은 메신저도 사용하지 않는다. 문자만으로 충분하다고 말한다. 핸드폰에 담긴 건 사진과 음악이 전부라고. 스트리밍도 하지 않는다. ‘배철수의 음악캠프’에 나오는 노래를 듣고 CD를 사고 컴퓨터로 파일을 옮기는 수고를 통해야만 내 것이 된 것 같다고 밝힌다. 유해진다운 취향이다.
극 중 태수는 가정주부인 아내 수현(염정아)에게 그야말로 엄격한 인물이다. 서울대 출신의 법조인으로 엘리트지만 고지식하고 가부장적인 남자다. 비호감일 수도 있는 캐릭터를 유해진은 자신만의 스타일로 완성했다.
“나에게도 태수의 모습이 있죠. 꼰대 같은 부분이 슬슬 생겨요. 여기서 태어나고 고지식한 문화에서 산 사람인데 완전히 그런 부분이 없다곤 못 하겠어요. 속 좁아질 때 꼰댁같다고 느껴요. 그냥 넘어가도 되는데 꼭 한 마디를 하려고 해요. 그러고 나중에 ‘그걸 왜 했을까’ 할 때가 있어요. 그렇게 늙지 말아야지 주의하려고 하는데 잔소리가 많아졌어요”
영화는 마지막에 ‘공적인, 사적인, 비밀의 나’를 언급한다. 영화를 보고 나오는 순간에도 고개를 끄덕이고 스스로에 대한 생각을 하게 된다. 유해진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러면서 그런 생각들을 통해 관객들이 힐링을 얻길 바랐다.
“아주 공감했고 되게 곱씹어봤어요. 그래서 이 영화가 생각할 수 있는 게 많은 것 같아요. 비밀스러운 나는 분명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아마 보면서 ‘다 저렇게 사는구나’하고 힐링도 느낄 수 있을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