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필굿뮤직 제공)
[뷰어스=이소희 기자] “나도 잊고 있었어요. 드렁큰타이거의 음악이 팬들에게 어떤 의미였는지. 이번 마지막 앨범을 내면서 다시 책임감이 생겼죠”
아이러니하게도 타이거JK는 드렁큰타이거 정규 10집 앨범이자 마지막 앨범 ‘드렁큰타이거 X : 리버스 오브 타이거JK(Drunken Tiger X : Rebirth Of Tiger JK)를 내면서 다시 시작하는 기분을 느꼈다. 마지막 활동을 앞두고 있는 지금 타이거JK는 어떤 생각들을 하고 있는 걸까.
“이번 앨범이 나오고 난 뒤 팬들의 반응을 보니 감동이었어요. 드렁큰타이거 음악이 팬들에게 어떤 존재인지 알게 됐죠. 그 당시 음악을 할 때만 해도 난 비주류 음악을 하는 사람이었잖아요. 이렇게 힙합이 큰 문화가 될 줄 모르고 뛰어들었죠. 그런데 팬 분들이 혼자라고 느껴졌을 당시 드렁큰타이거의 음악 덕분에 잘 살 수 있었다고 하더라고요. 사회에 적응 못 하고 나쁜 길로 갈 수 있었던 이들이 우리의 음악을 통해 고통 속에서 멋을 찾게 된 거죠. 그 당시 이런 음악을 들었던 사람이라면 그 분들도 좀 특이한 사람들이 아닐까 싶기도 해요. (웃음) 실제로 팬 분들 중 예술가, 작가, PD 등이 된 분들도 많더라고요”
팬들에게 드렁큰타이거의 음악이 어떤 존재였는지 재확인한 타이거JK는 다시금 책임감을 느꼈다. 또 지나친 겸손은 넣어두고 팬들과 함께 이뤄낸 문화와 음악의 위대함을 몸소 즐기기로 했다. 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타이거JK는 ‘마지막’ 앨범을 내며 드렁큰타이거로서 활동을 잠시 넣어둔다.
(사진=필굿뮤직 제공)
“Mnet ‘쇼미더머니’에 나갈 당시, ‘마지막’이라는 장치를 넣어야 우리의 음악이 옛 것처럼 비춰지지 않겠다는 게 확 와 닿았어요. 예술에 룰이 있다고 하면 웃기지만 지켜야할 것들이 있긴 하거든요. 박자를 맞춘다거나 운율이 있어야 한다던가. 그런데 세상이 아무리 변해도 이렇게 지켜야 할 것들을 지켜야 한다고 말하는 선배들이 방송에서 욕을 먹는 걸 봤어요. 오리지널리티에 대한 고민이 없어지는 흐름이 안타까웠죠. 누가 유행하는 거 하면 다 따라하는 흐름도 그렇고요. 그런 걸 지적하면 '꼰대' 취급을 받더라고요. 드렁큰타이거는 팬들한테 좋은 추억인데, 그런 방송 속 모습처럼 쿨하지 않게 남는 건 원치 않았죠”
타이거JK는 자신의 의지와 다르게 흘러가는 요즘의 힙합 문화에 씁쓸했다. 그의 말에 따르면 한때는 이런 현상들을 자신이 바꿀 수 있다고 착각도 했다. 그는 ‘힙합’이라는 문화를 우리나라에 정착시킨 장본인들 중 한 명이기 때문이다. 그 누구보다 날 것의 힙합, 본래 의미의 힙합을 몸소 겪고 만들어간 그다. 하지만 방송은 타이거JK에게 편협한 시선을 던졌고, 결국 이해할 수 없는 캐릭터까지 만들어졌다.
“물론 ‘쇼미더머니’ 덕분에 힙합 시장이 커졌고, 힙합하는 사람들이 돈도 잘 벌게 됐고, 아이들의 꿈도 됐어요. 하지만 여론의 많은 이들은 ‘랩’의 팬이지, ‘힙합’의 팬은 아닌 것 같아요. 그런데 이렇게 랩 팬들이 말하는 것들이 전체를 대변하는 상황이 되다보니 그 일부의 여론이 문화가 되더라고요. 방송에 나간 게 상처가 되기도 했어요. 내가 방송의 특성을 더 이해하고 출연했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 한 내 잘못도 있죠. 결론적으로는 이런 것들을 다 씻어내고 싶었어요. 마지막 앨범 발매가 1년 정도 미뤄진 이유에요”
(사진=필굿뮤직 제공)
타이거JK는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가 자신이 하는 힙합에 대해 더 멀리, 넓게 바라봤다. 자연스럽게 ‘마지막’이 ‘새로운 시작’을 의미한다는 깨달음도 얻었다.
“예전에는 정말 치열했고 배고팠고 힘들었고 장애물이 많았거든요. 들어보지도 못 한 음악을 들고 와서 ‘힙합’이라고 하니까 얼마나 모험할 게 많았겠어요. 지금이야 개사한 랩으로 광고도 찍는 시대지만, 그 때만 해도 ‘랩이란 건 이런 거고요, 힙합은 이런 문화고요’ 하고 다 설명을 한 뒤 음악을 들려줘야 했어요. 무대의상을 안 챙겨가고 입던 그대로 무대 위에 올라가려고 해서 혼나기도 했고요”
당시 혁신을 일으켰던 타이거JK는 기존의 물살에 휩쓸리지 않았다. 일부러 민소매에 슬리퍼를 신고 무대에 오르기도 했다. 그게 타이거JK만의 소심한 데모이자 힙합정신이었다.
“이번에도 앨범을 만들고 나서 일주일 안에 홍보를 마치는 것에 대한 데모를 하고 싶었어요. 하나의 축제처럼 긴 활동을 펼칠 거거든요. 예전에는 홍보도 길게 하고 후속곡 활동도 하고 그랬는데.. 물론 지금 시대와도 발맞추긴 해야죠. ‘SNS에 홍보 글을 올려야겠다’ ‘이번 활동에 대한 마케팅도 좀 더 적극적으로 할 걸’ 이런 생각들도 했어요. 좋은 활동으로 대중과 만나고 싶은 마음이에요”
(사진=필굿뮤직 제공)
타이거JK의 말에는 자부심을 차곡차곡 쌓아온 연륜이 묻어났다. 또 많은 것을 알면 알수록 조심스러운 것들도 늘어난다는 연륜의 이면 또한 느껴졌다. 그는 껍데기만 있는 말이 아닌, 모든 것을 경험해봤기에 알 수 있는 말들을 내뱉었다.
“나이에 대해 생각해본 적은 없어요. 다만 세월이 지날수록 ‘내가 모르고 있는 게 많구나’라는 걸 더욱 느끼죠. 그래서 좀 더 조심스러워지는 것 같아요. 말이나 가사 등 표현도 쉽게 못 하게 됐어요”
물론 좀 더 유연한 자세를 취할 줄 알게 됐다는 말일 뿐이다. 하나의 문화를 형성하고 이끌어온 타이거JK가 현 시대에 남긴 것들은 여전히 분명하다. 타이거JK 역시 “힙합은 당시 문화를 좋아한 마니아들이 있었기 때문에 정착이 가능했고, 그 분들이 만든 것과 다름없다. 우리는 지금 그걸 잊고 있다. 우리가 만든 것들이 얼마나 큰 것들인지 기억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것이 타이거JK가 끝과 시작을 대하는 태도다. 또 다른 길을 걸어 나가려는 그의 눈빛이 반짝거린다.
“(윤)미래가 마지막으로 내 앨범을 모니터링해주는데, 아웃트로까지 듣더니 울더라고요. 그 모습만으로도 어떤 심경인지가 다 드러났어요. 팬들도 앨범을 들으며 울었다던 포인트가 비슷한 걸 보면, 우리의 마음은 다 통하는구나 싶어요. 어떤 팬 분들은 내가 마음의 상처를 입을까봐 ‘괜찮다, 이제 시작이다’라고 말을 해주기도 해요. 그런데 나는 진짜 이제 시작이에요. 앞으로 어떤 일들이 일어날지 설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