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비욘드이엔티 제공)
[뷰어스=이소희 기자] 사람은 살면서 여러 장의 막을 맞이한다. ‘터닝포인트’ ‘인생 제2막’과 같은 단어들도 탄생한 것도 그 이유에서다. 그렇다면 플레이제이의 현재는 과연 몇 번째 막이 오른걸까.
플레이제이는 2013년 한국에서 데뷔했지만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한 채 중화권에서 활동을 펼치게 됐다. 그곳에서 그가 활약한 분야는 가수로서가 아닌 MC로서의 역할. 플레이제이는 중국 유명 예능프로그램 ‘한위싱동타이’와 대만 예능 ‘워아이오우샹 플레이제이 오우샹주보’에 출연하며 약 5년 간 기반을 다졌다. 이후 순탄치 않은 생활을 이어가다가 최근 신곡 ‘아이 원더 와이(I Wonder Why)’를 발표하며 국내활동을 재개했다.
이처럼 다양한 굴곡을 겪은 플레이제이에게 인생에 몇 번의 기회가 왔는지 묻는 것은 소용이 없는 일처럼 보인다. 실제로도 그에게 중요한 것은 ‘어떤 상황에 처해 있는지’보다 ‘어떤 노력을 했는지’였다. 물론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은 나날들도 있었다. 하지만 플레이제이를 지금까지 이끈 원동력은 결국 열정을 놓지 않는 자기 자신이었다. 그래서 플레이제이는 자신이 어디쯤 왔는지 구태여 깃발을 세우기보다 ‘소년’ 같은 설렘을 간직하며 늘 그 자리에 서 있고자 한다.
(사진=비욘드이엔티 제공)
■ 플레이제이의 열정, 전화위복의 계기
“중국에서 활동하게 된 건 우연한 계기였어요. 국내 아이돌 시장에서 살아남기 힘들어서 다른 방법이 없을까 고민하던 와중 한 장의 명함을 받게 됐거든요. 중국 예능프로그램을 만들려고 하는데 스타들의 영상을 찍어 오고 또 함께 촬영했으면 좋겠다는 제의였어요. 당시 연예인으로서 살아남기 위해 단 한 번이라도 방송에 출연하고 싶다는 심정이었어요. 나만의 프로그램을 만들고 싶기도 했고요. 프로필이 필요했던 거죠. 그래서 하겠다고 했고, 그 1회 섭외의 주인공이 이정현 선배님이었어요”
중국에서 한류 붐이 일어나기 바로 직전, 플레이제이에게 새로운 제안이 들어왔다. 그게 바로 상해TV ‘한위싱동타이’ 론칭이었다. ‘한위싱동타이’는 김준수, 방탄소년단, 러블리즈, 비투비, 레드벨벳, 샤이니, 마마무, 아스트로, 오마이걸, 여자친구 등이 수많은 국내 최정상 가수들이 출연한 바 있는 명성 높은 예능이다.
“맨 처음 프로그램을 만들 때 단 2명으로 시작했어요. 난 메인작가의 역할이었고요. 대본도 쓰고 게임도 만들고, 본사에서 시청률이 잘 안 나왔다고 말하면 ‘어떻게 방송을 재밌게 만들까’ 고민도 하고. 카메라가 날 비출 잠깐 동안만 연예인이었던 셈이죠. 하지만 행복했어요. 그 전에는 ‘왜 방송에 안 나오냐’는 가족들의 말에 마음이 아프고 점점 집을 등지게 됐거든요. 그런데 어쨌든 그때는 떳떳하게 방송에 나갈 수 있었으니까요”
플레이제이가 ‘한위싱동타이’에서 한 일은 단순히 MC만이 아니었다. 제작진과 함께 카메라를 옮기는 일, 연예인 섭외부터 구성까지 모든 것을 직접 하며 자신의 영역을 구축했다. 그렇게 프로그램이 높은 위치를 차지하게 된 후, 방송사와 계약이 만료된 플레이제이는 대만으로 나섰다. 이 또한 우연한 계기였다. 대만 MTV와 계약을 맺게 된 그는 ‘워아이오우샹 플레이제이 오우샹주보’를 이끌며 국내 최고의 스타들과 만났다.
(사진=비욘드이엔티 제공)
“중국에서는 현지에서 일하는 한국 분과 호흡을 맞췄는데 대만에서는 정말 현지인들뿐이었거든요. 그곳에서 케이팝을 알리고자 각오를 다졌는데, 대만은 대만만의 스타일이 있더라고요. 그런 상황 속 자칫 잘못하면 강압적으로 문화를 알리려는 것처럼 될 수도 있겠다 싶었죠. ‘서로의 문화를 잘 융합하면서 케이팝을 알려야겠구나’ ‘비록 내가 어떤 힘이 있는 건 아니더라도 문화외교관이 돼서 중간 다리 역할을 잘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런 플레이제이의 열정은 언어의 한계도 뛰어 넘게 만들었다. 중화권에서 활동하기 전 그 나라의 언어들을 전혀 몰랐던 그는 대신 ‘사람’을 유심히 살피며 소통의 물꼬를 텄다. 게스트로 출연하는 연예인의 이전 방송을 다 찾아보며 그 사람이 어떤 행동을 할 때면 이런 상황이라든지, 자주 쓰는 제스처는 무엇인지, 멤버의 성격은 어떻고 수식어는 무엇이며 심지어 그 팬덤만 쓰는 은어는 무엇인지 완벽하게 탐구했다.
“그렇게 수많은 아이돌들을 만나면서 다양성을 존중하는 법을 배웠어요. ‘이런 사람은 이런 매력이 있고, 저 사람은 이래서 사랑 받는구나’ 생각하는 거죠. 동시에 그들에게는 있지만 나에게는 없는 건 무엇일까 분석하기 시작했어요. 다양한 음악을 들으며 해보고 싶은 장르를 적어보기도 하고, ‘이런 옷을 입으면 좋겠다’ 체크하기도 하고 내가 나아가야 할 리스트를 짠 거죠. 예를 들어 원래 낯을 많이 가리는 성격인데, 나랑 똑같이 말 한 마디 없다가 촬영 슛 들어가면 확 밝아지는 이들을 보고 ‘많이 배워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사진=비욘드이엔티 제공)
■ ‘소년’같은 마음으로 써 내려갈 페이지
플레이제이는 자신의 자리가 아니라고 불만을 갖거나 대충 시간을 흘려보내지 않았다. 오히려 주체의식을 갖는 데서 더 나아가 그 배움을 자신에게로 확장했다. 하지만 노력만으로 모든 것이 해결되지 않는 게 냉혹한 현실. 플레이제이는 대만 MTV와의 계약이 끝난 뒤 한순간에 백수가 됐다. 반려견과 반려묘의 사료가 다 떨어져가는 상황에서도 ‘잘 지내고 있냐’는 부모님의 전화가 오면 ‘그렇다’고 답할 수밖에 없었다. 결국 플레이제이는 아르바이트를 하며 생계를 꾸렸다.
“한 고깃집에서 일했는데 연예인들이 많이 오는 곳이었어요. 그런데 어느 날, 한 손님이 ”친구야“라고 나를 부르더라고요. 예전에 봤던 연예인 동료였어요. 그 순간 모두가 나를 쳐다보는데 ‘뭐하냐’는 질문에 답을 할 수가 없었어요. 언제 한 번은 뜻하지 않게 방청객 알바를 가게 됐는데 그때 나온 게스트가 내가 중국에서 방송할 때 자주 만나던 아이돌이었죠. 그들이 나를 알아볼까봐 계속 고개를 숙이고 있었어요. 그런 일들이 있고나니 이제는 이렇게 살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무대와 내 자리는 한끝차이고, 내 의지에 따라 상황이 달라질 수 있다는 걸 느끼게 됐죠”
플레이제이는 이를 계기로 다시 자신을 가꾸고 앨범 준비를 시작했다. 프로필 사진도 새로 찍고 SNS에서 다양한 레퍼런스를 수집하며 작곡가와 뮤직비디오 감독도 직접 섭외했다. 그렇게 탄생한 곡이 바로 ‘아이 원더 와이(I wonder why)’다. 이 노래는 아직 사랑을 해보지 못한 소년이 꿈에 그리던 이성을 만나게 되면서 느끼는 설렘과 고백을 담은 레트로 신스팝 장르 곡이다.
(사진='아이 원더 와이' MV 화면 캡처)
“새롭게 시작하는 만큼 해보고 싶었던, 그간 보여주지 않았던 새로운 느낌을 주고 싶었어요. 원래 레트로 장르를 좋아하기도 하고요. 회사에서 주는 노래에 맞추는 게 아니라 직접 나서서 적극적으로 제안도 하고 곡의 틀을 잡아가니 ‘내가 뭔가를 하고 있구나’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렇게 하나하나 기획해 나가는 게 진짜 내가 하고 싶던 게 아니었나 싶기도 했고요. 행복하고 재밌는 작업이었어요”
‘아이 원더 와이’에는 “마치 꿈인 듯해”라는 가사가 나온다. 플레이제이는 하루 종일 뮤직비디오를 찍으면서도 ‘이 꿈이 깨지 않았으면’하는 생각을 했다. 오랜만에 느끼는 사람들의 시선도 좋았고 자신의 노래를 위해 열정을 쏟아 붓고 있는 지금이 뿌듯했다. 노래에서 고백을 앞두고 떨리는 마음을 간직한 소년은 새로운 앞날을 두고 설레는 자기 자신의 모습이기도 했다.
“그동안은 혼자 달려오다 보니 ‘내가 잘하고 있는 건가’ 스스로에 대한 의심이 있었어요. 몸도 마음도 지쳤는데, 옆에서 ‘잘했다’ ‘쉬어도 된다’고 말하는 사람이 없었죠. 그런데 이번 작업하면서는 스트레스를 받을 때쯤 작곡가 친구가 곡 녹음한 것을 주고, 뮤직비디오 감독님이 영상을 보내주고 하니 힘들 틈이 없었어요. 그렇게 완성된 곡을 들으며 차를 타고 가는데 지난날들이 떠오르더라고요. 만족스럽기도 했고요. ‘아이 원더 와이’는 자신 있게 내 곡이라고 소개할 수 있을 것 같아요. ‘플레이’를 할 때마다 내 모습이 나오면 좋겠다는 의미를 지닌 활동명처럼, 앞으로 확실한 색깔이 있는 음악으로 대중 앞에 나서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