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나무엑터스 제공)
[뷰어스=이소희 기자] KBS2 드라마 ‘왜그래 풍상씨’의 시작을 돌이켜 보면 ‘물음표’였다. 집필을 맡은 문영남 작가가 오랜만에 미니시리즈로 돌아온 것도 있고, 또 그의 스토리가 전 연령층에게 통할지도 의문이었다. 하지만 작품이 마침표를 찍은 지금, ‘왜그래 풍상씨’는 시청률 22.7%(닐슨코리아 전국가구 기준)이라는 괄목할 만 한 성적을 남기며 인생 이야기를 담는 데 탁월한 문영남 작가의 능력을 새삼 증명했다.
타이틀롤 ‘풍상씨’를 연기한 배우 유준상의 현실연기 또한 시청자들의 뇌리에 각인됐다. 풍상은 각기 다른 방식으로 사고를 치는 동생들을 감당하는 부모 같은 장남이자 오직 동생들만 바라보는 인생으로 아내를 힘들게 만드는 인물이다. 유준상은 이런 풍상을 때로는 짠내나게, 때로는 서글프게, 때로는 뭉클하게 작품에 녹아들며 시청자를 웃고 울렸다.
“드라마가 힘든 상황에서 출발해서 시청률 20%를 넘겼죠. 이야기의 힘이 대단하다는 걸 새삼 느꼈어요. 배우들도 남다른 각오로 뭉쳤어요. 매번 대본 리딩도 하고 작가 선생님과 ‘방과 후 수업’도 받고요. 다들 열의가 대단했고 첫 촬영에서도 NG가 없었어요. 마치 연극을 보는 듯한 느낌이었죠. 또 진형욱 감독은 문영남 작가님과 오랜 호흡을 맞춘 분이잖아요. 그래서 알아서 신을 빼거나 고치기도 하고 그럼 또 작가님은 방송을 보고 괜찮았다고 피드백을 해주고, 그렇게 서로 이야기를 주고받고 시너지가 나는 걸 보니 신이 나더라고요”
유준상은 둘째 진상을 연기한 배우 오지호와 유독 ‘방과 후 수업’을 많이 받았다고. 그런 그에게 “왜 나머지 수업을 받았냐”고 물었더니 “첫 대본 리딩 끝나고 작가님께서 ‘이렇게 하면 안 되는데’라고 하시더라”라면서 웃었다. 토씨 하나, 말투 하나에 대사의 뉘앙스가 바뀔 수 있는 게 연기이기 때문에 정확한 내용 전달을 위해 세심한 지도를 받았다는 게 유준상의 말이다.
“작가님이 날 처음 보자마자 ‘얼굴이 풍상이네’라고 하셨어요. (웃음) 오랫동안 연기를 해온 만큼 수많은 얼굴들이 담겨 있다는 뜻이라고 하시더라고요. 그러면서도 이번 작품을 하면서 스스로도 몰랐던 얼굴들을 볼 수 있었어요. 생각해보지 못한 감정들도 나왔고요. 가족과 얽힌 다양한 사연과 온갖 풍파를 겪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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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 중 풍상은 동생들의 뒤치다꺼리를 하는 것도 모자라 청천벽력 같은 간암 선고를 받는다. 풍상에게 간을 이식해줄 사람을 찾는 내용이 드라마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면서 그런 풍상의 심경을 잘 표현할 유준상의 역할은 더욱 중요해졌다. 이에 유준상은 가까운 친척이 간암에 걸렸다가 아들의 간 이식을 받고 건강을 찾은 경험까지 조심스레 되살리며 연기에 임했다. 심지어 감독을 비롯한 스태프들부터 유준상마저 풍상이 누구의 간을 받을지 전혀 알지 못한 채 작품에 임했기에 더욱 실감난 연기가 나올 수 있었다.
“마치 영화 현장 같았어요. 작품의 설정이나 내용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나눴어요. 배우는 연기로, 스태프들은 카메라나 조명 등으로 각자의 위치에서 디테일에 신경을 많이 썼죠. 외적으로는 손톱을 검게 칠하거나 같은 옷만 입는 등 모습으로 리얼리티를 살리고자 했어요. 작가님께서 자동차 정비소 일을 하는 풍상은 장갑을 벗고 맨손으로 일하기 때문에 늘 손에 기름때가 묻어 있다고 설정을 해주셨거든요. 그 뒤로는 손톱 색이 조금만 지워져도 분장팀이 바로바로 검은색을 칠해주고...(웃음) 옷은 처음부터 한 벌로 가면 좋겠다고 생각해서 같은 옷을 두 벌 준비했고요”
풍상은 자신의 인생을 오로지 동생들을 위해 바쳤기에 극 중 아내뿐만 아니라 시청자들의 답답함까지 자아낸 인물. 동생들이 아무리 속을 썩여도 풍상은 ‘동생바보’였다. 다만 극 후반에 이르러서는 그런 풍상의 방식이 때로는 동생들에게 상처로 남았던 각자의 사정이 밝혀졌다. 그러면서 풍상은 본인의 희생이 일방적이었음을 비로소 깨닫는다. 인물 그 자체로 녹아든 유준상은 이런 풍상의 서사를 훑으며 그의 마음을 진심으로 이해하게 됐다.
“촬영 들어갈 때 작가님이 ‘각오해야할 거야’라고 말하셨거든요. 정말 다들 어떻게 풍상에게 이럴 수 있나, 어쩜 이런 풍파를 겪을 수 있나 싶은 정도였어요. (웃음) 그런데 내가 풍상이어도 똑같이 동생들을 위해 살았을 것 같아요. 20대 때부터 가장으로 살았거든요. 다만 사람들은 자신이 상대에게 상처를 준 지도 모르고 살아가잖아요. 그런 거죠. 동생들 엇나가지 않게 하겠다고 애썼던 풍상의 노력도 결국 나 좋자고 한 거였죠. 그래도 풍상은 스스로를 돌아보고 반성하고 깨닫고 또 변화했으니까요. 그런 풍상을 보면서 누군가에게 진심으로 사과한다는 게 얼마나 어렵고 대단한지를 느꼈어요. 사과를 하지 못 하고 지나쳤던 사람들이 떠올랐고요”
(사진=나무엑터스 제공)
‘왜그래 풍상씨’는 막장의 대가라고 불리는 문영남 작가의 작품답게 이번에도 ‘막장’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하지만 여기에서의 막장은 사뭇 다른 의미를 지닌다. 유준상은 인생의 막다른 곳, 정말 각 캐릭터가 고통의 끄트머리까지 찍고 나아가기 때문에 ‘막장’이라고 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본인이 내용에 공감했던 만큼, 내용이 다소 황당할지라도 말이 안 되는 이야기는 없었다는 것이다.
“작가님은 지금 시대와 안 맞다고 생각하는 부분들, 그러니까 부모 세대가 느끼는 것들을 지금의 세대로 가져와 느껴보게 하고 싶으셨던 것 같아요. 예를 들어 요즘에는 식구들끼리 밥을 먹는 경우나 식구들과 밥을 먹을 때 행복하다고 말하는 사람은 거의 없잖아요. 그런데 이 작품에서는 정상(전혜빈)이 결혼식 때나 풍상이 아내에게 꽃과 케이크를 줄 때 등 눈물을 흘린 장면이 수도 없이 많았거든요. 가족의 소중함을 느낄 수 있는 대목들이었다고 생각해요”
실제로 ‘왜그래 풍상씨’는 온 가족이 둘러앉아 화목하게 식사를 하는 장면으로 끝난다. 그 전에도 치고 박고 싸우는 과정 끝에 서로를 진정으로 이해하게 된 이들이 수차례 눈물을 쏟았다. 이런 한 장면 한 장면은 드라마의 훌륭한 성적뿐만 아니라 유준상에게 ‘느낌표’까지 남겼다.
“스태프 중 한 분이 ‘이 작품이 당신의 인생작이 됐으면 좋겠다’고 하셨어요. 정말 그 말대로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시간 작품을 하면서 후회 없는 날들을 보낼 수 있었어요. 또 진형욱 감독님과 내가 동갑이거든요. 51살. 나보고 ‘새로운 한 살’을 맞은 거라고 하더라고요. 그 이야기를 듣고 나서 ‘왜그래 풍상씨’를 시작으로 앞으로의 날들을 새로운 마음으로 맞이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