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매주 신작들이 쏟아지는 가운데 어딘가 기시감이 드는 작품들이 있다. 비슷한 소재에 제작진, 배우들까지 같은 경우 그런 분위기가 더욱 감지된다. 비슷하다고 해서 모두 모방한 것은 아니다. 같은 재료라도 어떻게 요리하는지에 따라서 맛이 다르다. ‘빅매치’에선 어딘가 비슷한 두 작품을 비교해 진짜 매력을 찾아내고자 한다. 참고로 이 기사에는 스포일러가 다수 포함되어 있다.
사진=영화 '기생충' 스틸
전원 백수인 기택(송강호 분)네 장남 기우(최우식 분)가 고액 과외 면접을 위해 박 사장(이선균 분)네 집에 발을 들이면서 시작된 이야기를 담은 ‘기생충’은 경제적 격차가 있는 두 가족의 대비를 통해 뿌리 깊은 양극화를 꼬집는다. 영화 ‘괴물’ ‘마더’ ‘옥자’ 등 사회를 향한 날카로운 시선과 풍자를 선보여 온 봉준호 감독 고유의 시각이 담겨 있다.
영화는 계급 문제를 다루고, 그 중심에 송강호가 있다는 점에서 ‘설국열차’를 떠올리게도 한다. ‘설국열차’는 새로운 빙하기, 인류 마지막 생존지역인 열차 안에서 억압에 시달리던 꼬리칸 사람들의 멈출 수 없는 반란을 담은 SF 영화다. 크리스 에반스, 틸다 스윈튼, 에드 해리스, 존 허트, 옥타비아 스펜서, 제이미 벨 등 할리우드 배우와 송강호, 고아성이 출연했다.
두 영화의 공통점은 소시민들의 반란을 장르적 리듬 안에 담아냈다는 것이다. ‘설국열차’에서는 머리칸 사람들의 횡포에 당하던 꼬리칸 사람들이 반란을 일으켜 닫힌 문을 열고 앞으로 점점 나아가는 내용을 통해 긴장감을 조성한다.
‘기생충’은 ‘설국열차’만큼 직접적인 은유는 없지만 반지하에 살던 가족이 박 사장네 저택으로, 계급의 사다리를 올라가기 위해 분투하는 내용을 그렸다. 특히 박 사장의 집 각 공간을 연결하는 곧게 뻗은 수직 계단을 통해 계층을 나눈다.
사진=영화 '설국열차' 스틸
그러나 ‘설국열차’는 사회 문제를 SF 장르 안에 녹여냈다는 결정적인 차이점이 있다. 특히 꼬리칸의 혁명 과정에서 만들어지는 액션 쾌감은 이 영화가 확실한 장르 영화라는 것을 느끼게 한다. 때문에 결말 역시 판타지처럼 시원하고 희망적인 느낌이 있다. 사투 끝에 모두가 자멸하는 결과를 맞게 됐지만, 살아남은 아이 요나(고아성 분)가 기차 밖 탈출에 성공을 하게 된 것이다. 여기에 생명이 살아남을 수 없다고 알려진 바깥세상에 북극곰이 살고 있는 장면을 통해 요나가 이 세상에서 새 삶을 살 것이라는 암시를 주기도 한다.
영화 내내 현실적인 톤을 유지한 ‘기생충’은 이 같은 시원한 결과를 보여주지 못한다. 반지하라는 공간은 물론, 대만 카스테라 사업을 하다 망한 기택의 사연 등 한국 현실과 밀접하게 연결된 영화이기에 이 흐름에서 벗어난 결과를 마냥 보여줄 수는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기생충’은 ‘설국열차’보다 더욱 어둡고 묵직한 여운을 남기게 된다.
봉 감독은 홍보 인터뷰 당시 결말에 대해 “‘설국열차’는 SF니까 호기롭게 끝을 낼 수 있었다. 하지만 ‘기생충’은 섣불리 그렇게 할 성격의 영화는 아니었다. 워낙 우리 주변 현실을 다루다 보니 그런 식으로 끝내면 2시간을 끌고 간 영화가 무의미해질 것 같았다. 안타깝고 슬픈 현실을 솔직하게 직시하는 게 낫다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