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제공=CJ엔터테인먼트   ‘살인의 추억’(2003년, 525만)으로 첫 상업영화 흥행 ‘괴물’(2006년, 1091만)로 첫 천만영화 ‘설국열차’(2013년, 935만)로 첫 글로벌 프로젝트 진출. 봉준호 감독의 주요 작품에는 ‘페르소나’라 불리는 송강호가 있었다. 둘은 같이 기록을 만들어 나갔고, 성공했다. ‘믿고 보는 배우’와 ‘믿고 보는 감독’의 만남은 대중을 실망시키지 않았다. 송강호는 칸 현지 기자간담회에서 “봉 감독의 세계는 모든 것이 계산돼있고 정교하게 구축돼있다. 배우들이 카메라 앞에서 어떤 시공을 메워야 할 필요가 없게끔, 필요 이상의 연기를 할 필요가 없게끔 만들어 준다”고 말했다. 봉 감독은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감독이라는 직업을 하면서 의지할 곳이 많지 않다. 송강호에게 여러모로 의지를 했다. 내가 폐쇄적이라서 인성에 문제가 많은데, 송강호라는 출구를 통해서 바깥세상과 소통하고 있다. 내가 만드는 기이한 스토리가 바깥세상과 만나게 해주는 매개체 같은 존재다”고 말했다. 봉 감독은 배우들이 충분히 연기할 세계를 구축했고, 그 구축된 세계를 송강호는 바깥세상으로 연결시켜 준 것이다. 그리고 2019년 ‘기생충’이 제72회 칸 국제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수상하는 자리에도 이들은 같이 있었다. 경쟁 부문 심사위원장 알레한드로 곤잘레스 이냐리투 감독이 “PARASITE”(‘기생충’의 영어 제목)를 외쳤고, 봉 감독과 배우들은 환호했다. 무대에 오른 봉준호 감독은 “무엇보다 위대한 배우들이 없었다면 한 장면도 찍을 수 없었을 것이다”며 “이 자리에 함께해준 가장 위대한 배우이자 저의 동반자 송강호의 소감을 듣고 싶다”며 송강호를 무대에 오르게 했다. 송강호는 “인내심과 슬기로움, 열정을 가르쳐주신 존경하는 대한민국의 모든 배우께 이 영광을 바치겠다”고 영광을 돌렸다. 송강호와 봉준호 감독은 그렇게 서로를 의지하며 ‘역사’를 만들어 나가고 있었다.

흥행?천만?글로벌제작 그리고 황금종려상…봉준호의 ‘처음’에는 송강호가 있었다

유명준 기자 승인 2019.05.26 08:31 | 최종 수정 2138.10.18 00:00 의견 0
사진제공=CJ엔터테인먼트
사진제공=CJ엔터테인먼트

 

‘살인의 추억’(2003년, 525만)으로 첫 상업영화 흥행

‘괴물’(2006년, 1091만)로 첫 천만영화

‘설국열차’(2013년, 935만)로 첫 글로벌 프로젝트 진출.

봉준호 감독의 주요 작품에는 ‘페르소나’라 불리는 송강호가 있었다. 둘은 같이 기록을 만들어 나갔고, 성공했다. ‘믿고 보는 배우’와 ‘믿고 보는 감독’의 만남은 대중을 실망시키지 않았다.

송강호는 칸 현지 기자간담회에서 “봉 감독의 세계는 모든 것이 계산돼있고 정교하게 구축돼있다. 배우들이 카메라 앞에서 어떤 시공을 메워야 할 필요가 없게끔, 필요 이상의 연기를 할 필요가 없게끔 만들어 준다”고 말했다.

봉 감독은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감독이라는 직업을 하면서 의지할 곳이 많지 않다. 송강호에게 여러모로 의지를 했다. 내가 폐쇄적이라서 인성에 문제가 많은데, 송강호라는 출구를 통해서 바깥세상과 소통하고 있다. 내가 만드는 기이한 스토리가 바깥세상과 만나게 해주는 매개체 같은 존재다”고 말했다.

봉 감독은 배우들이 충분히 연기할 세계를 구축했고, 그 구축된 세계를 송강호는 바깥세상으로 연결시켜 준 것이다.

그리고 2019년 ‘기생충’이 제72회 칸 국제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수상하는 자리에도 이들은 같이 있었다.

경쟁 부문 심사위원장 알레한드로 곤잘레스 이냐리투 감독이 “PARASITE”(‘기생충’의 영어 제목)를 외쳤고, 봉 감독과 배우들은 환호했다.

무대에 오른 봉준호 감독은 “무엇보다 위대한 배우들이 없었다면 한 장면도 찍을 수 없었을 것이다”며 “이 자리에 함께해준 가장 위대한 배우이자 저의 동반자 송강호의 소감을 듣고 싶다”며 송강호를 무대에 오르게 했다.

송강호는 “인내심과 슬기로움, 열정을 가르쳐주신 존경하는 대한민국의 모든 배우께 이 영광을 바치겠다”고 영광을 돌렸다.

송강호와 봉준호 감독은 그렇게 서로를 의지하며 ‘역사’를 만들어 나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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