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제공=스타크루이엔티 박찬목 작가
“은퇴를 생각했었어요. 쉬는 동안 음원 차트는 물론, 음악이 나오는 TV조차 보지 않았어요. 야구선수였던 시절이 있었기에 야구 코치를 할까도 생각했었죠.”
그러나 그의 운명은 다시 음악이었다. 바비킴이 돌아왔다. 본의 아니게 시작된 자숙기간이었지만, 그가 스스로 선택한 길이기도 했다. 20여 년 간 오직 한 길만 달려왔던 그가 음악을 버리려고도 했다는 사실은 놀랍고 서글프다. 잠시 떠나있는 동안 랩이면 랩, 노래면 노래 모두 탁월하게 잘하는 후배들이 늘어 놀랍다는 그이지만 사실 랩도, 노래도 넘치는 감성으로 남보다 월등하게 해내던 소울풀 가수가 바로 그였다. 박자나 음정이 틀려도 모든 걸 무시할 정도로 흡인력 높은 감성이 무기였던 그였다. 항공사 실수로 벌어진 일로 인해 구설에 오른 그는 평생 마이크를 잡지 않으려 마음먹기도 했지만 다행히 4년 6개월만에 돌아왔다. 더 부드럽고 깊어진 음색으로 돌아온 그가 반갑다.
지난 5월 27일, 서울 강남구 한 카페에서 그를 만났다. 무대에서 뛰놀던 소년같은 눈빛은 여전했다. 새 앨범 제목을 ‘스칼렛’으로 정했지만 정작 특정 인물이나 성향 없이 오직 이미지만으로 예쁜 이름을 찾았다는 설명에서는 여전히 엉뚱한 바비킴이 보인다. 음악적 열정도 여전하다. 그는 오랜만의 앨범을 위해 수많은 곡을 지었지만 각 노래의 특성을 부각하고자 비슷한 노래들을 쳐내고 오직 5곡만 선별해 대중앞에 내놓았다. “음악적으로도, 심리적으로도 만족감이 높은 앨범”이라는 그의 자평에는 만족스러운 미소가 뒤따른다.
지난해부터 오직 앨범 작업에 매달렸다는 그다. 한동안 직업이라는 생각에 사로잡혀 지쳐있는 상태에서 곡을 만드는 일이 오랜 기간 이어졌지만 이번만큼은 초심으로 돌아가 즐겁게 만들었다는데 그 열정은 대중에게도, 음악 동료들에게도 고스란히 전해지는 모양이다.
“이번 앨범을 듣고 주변 동료들은 다시 예전으로 돌아간 것 같다고 하더라고요. 나도 만들다 보니 그렇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또 많이 부드러워졌다는 반응들이 주를 이루는데 사실 나는 퀄리티가 높아졌다는 말을 듣고 싶었어요(웃음). 동료 중 타블로에 고마운 마음을 전하고 싶어요. 이번 앨범에서 피처링을 해줬어요. 활동하지 않는 동안 다들 연락이 끊긴 상황에서 타블로가 떠올랐죠. 당시가 한참 에픽하이가 신곡을 내고 활동하는 중이었어요. 직접 전화를 했는데 유럽 투어 가야 한다고, 바쁘다더라고요. 그러면서 한국에 들어오는 일정들을 말해주며 그 때 녹음할테니 이메일로 곡 보내달라고 하고 끊었어요. 울컥하더라고요. ‘음원을 들어보고 할 수 있으면 할게요’가 아니라 무조건 할테니 보내달란 말에서 서로의 마음이 통했다고 느꼈습니다. 2014년에 마지막으로 보고 처음 연락한 거였는데 나에 대한 믿음이 느껴져서 고맙고 감동 받았어요. 이번에도 만나지는 못했어요. 서로의 녹음실에서 녹음했으니까. 믹싱도 ‘형 스타일대로 하라’더라고요. 서로 간 믿음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죠.”
사진제공=스타크루이엔티 박찬목 작가
■ 기내 난동 …"성숙하지 못한 행동한 탓"
동료들의 호응과 도움. 그에 앞서 스스로 음악을 하기로 마음먹기까지 그 과정은 결코 녹록지 않았다. 사실 자발적인 휴식이 아니었다. 비행기에 탑승해 와인에 만취했고 부적절한 언행으로 소란을 피웠다. ‘난동’이란 두 글자에 비난이 쏟아졌다. 그러나 조사 결과 항공사 측이 어이없는 실수를 했음이 밝혀졌고 바비킴은 벌금 400만원을 선고받았다. 이에 팬들이 더 억울해하는 분위기다. 그의 컴백 이후 기사마다 항공사와의 일이 언급되고 있다. 단순한 트집잡기나 가십거리가 아닌, 자신의 일처럼 여기며 그의 억울함을 풀어주고 싶어하는 이들이 수없이 많다. 그러나 정작 그는 담담하게 자신의 책임이라고 말했다. 자신이 성숙하지 못한 행동을 했기에 책임져야 했고, 시간이 필요했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그런 일은 누구에게나 생길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내가 공인이고 내 잘못된 행동으로 물의를 일으킨 것은 오로지 내 책임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더 오랜 기간 자숙한 것 같습니다. 결론적으로 내가 물의를 일으켰기 때문에 다른 이야기는 하고 싶지 않아요. 자라면서 ‘남에게 피해 주지 말자’라는 생각으로 살았어요. 그런데 그 사건에서는 많은 분을 놀라게 했죠. 내용이 어떻든지 간에 내가 성숙하지 못한 행동을 했기 때문에 스스로 고개를 숙였어요. 저만의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음악에서 손을 떼겠다, 은퇴하겠다는 생각도 했던 그다. 복잡한 머릿속을 비우기 위해 주 5일 등산만 하며 살던 그를 다잡은 건 아이러니하게도 바비킴이 음악인이 되는 걸 반대했던 부모였다. 지난해 1월, 부모의 결혼 50주년 기념 파티가 열린 자리에서 조악한 노래방 기계가 음악인으로서의 바비킴에 다시 숨결을 불어넣었다. 조촐한 자리에서 마이크를 잡은 것만으로도 만감이 교차하던 순간, 자식이 노래하는 모습에 환한 미소를 짓는 부모를 보며 다시 음악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는 그다. 그리고 그는 MBC ‘복면가왕’으로 자신의 귀환을 알렸다.
“‘복면가왕’은 2년 전부터 계속 섭외가 왔었던 프로그램이에요. 음악 하겠다고 결심하고 녹음 중에 섭외가 또 와서 출연했어요. 내가 나가면 분명히 알텐데 재미없을까 싶기도 했어요. 다행히 PD가 요즘엔 누구나 알만한 개성있는 목소리라도 열심히만 하면 된다고 해서 용기냈죠. 아니나 다를까 다들 아시더라고요. 방송 보셨나요? 가면을 쓰고 있어서 눈 감고 열심히 불렀는데 방송으로 보니 내가 어쩔 줄을 몰라 하더라고요. 첫곡부터 불안했어요. 패닉상태도 왔었고요. 신인도 아닌데 그랬다고 소속사 식구들에게 혼났어요. 5년여 만에 무대에 선 건데 이해해달라고 용서를 구했죠(웃음). 엉망이었지만 그럼에도 서고 싶었던 무대라고, 그리웠다고 생각했어요.”
②편으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