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잼엔터테인먼트
“제 필모그래피 중에서 절대 잊지 못할 작품이다. 예전에는 좋아하는 작품 고르라는 질문을 받으면 ‘열손가락 깨 물어서 안 아픈 손가락 이 어디 있나’라고 답했는데 이젠 고를 수 있을 거 같다.”
SBS 금토 드라마 ‘녹두꽃’ 종영 인터뷰를 위해 만난 조정석은 작품에 대한 만족도가 높았다. 그동안 그는 드라마 ‘최고다 이순신’ ‘오 나의 귀신님’ ‘질투의 화신’ ‘투깝스’, 영화 ‘관상’ ‘나의 사랑 나의 신부’ ‘특종:량첸살인기’ ‘시간이탈자’ 뿐 아니라 뮤지컬 ‘헤드윅’ 등과 연극 ‘아마데우스’ 등, 브라운관과 스크린, 무대를 넘나들며 대중을 만났다. 많은 작품에서 열연을 펼친 조정석이지만, 그에게 ‘녹두꽃’의 의미는 그만큼 남달랐다.
‘녹두꽃’은 동학농민혁명을 배경으로 민초들의 울림을 담은 작품이다. 극 중 조정석은 백이강 역을 맡아 농민군을 만나고 혁명에 가담하면서 성장하는 인물을 그렸다. 그는 ‘녹두꽃’에 대해 “출연한 모든 작품을 통틀어서, 작품이 주는 힘, 의미, 좋은 배우들과의 앙상블까지 다 좋았다”라고 말했다.
너무 좋았던 작품이지만, 종영 아쉬움은 없단다. 작품에 모든 것을 쏟아 부어서 가능한 대답이었다.
“정말 시원하다. 아쉬움이나 섭섭함도 없다. 그만큼 촬영하는 기간이 행복하고 좋았기 때문인 거 같다. 물론 시청률이 아쉬울 수 있지만, ‘수치’보다 ‘의미 있는 작품을 더 많은 분이 봐주셨으면’하는 바람에서다.”
‘녹두꽃’은 사극이지만, 유독 결투 장면도 정말 많았다. 체력적으로 힘든 부분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조정석은 촬영 현장에 대한 극찬을 늘어놓았다.
“체력을 걱정했는데, 생각보다 전투신이 수월하게 진행됐다. 규모가 큰 사극이라 밤샘도 할 줄 알았는데 그런 일이 없었다. 정말 탁월했던 현장이다. 감독님도 잘 진두지휘해주고, 스태프들도 잘 준비해줘서 촬영할 때 집중력이 높아 촬영 진행이 빨랐다.”
사진=잼엔터테인먼트
조정석은 ‘녹두꽃’에서 기억에 남는 대사를 줄줄 읊어 보이면서 작품에서 아직 헤어 나오지 못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황석주(최원영 분) 만나서 ‘하늘이 있으면 땅도 있다. 윗사람이 귀하면 아랫사람도 귀한 것’이라고 이치있는 말을 한다. 전봉준(최무성 분) 만나서 연설하는 장면은 정말 대사를 잇지 못할 정도로 와 닿았다. 마지막 회에서 정봉준에게 ‘장군 귀에 안 들려도 눈에 뵈지 않아도 낙담하지 마시오. 장군이 없어도 언제든 어디서건 간에 장군의 뜻을 계승하는 녹두꽃들이 싸우고 있을 거니까요’라는 대사도 기억에 남는다. 아! ‘난 사람처럼 살다가 사람처럼 죽겠다’라는 대사도 참 좋았다.”
하지만 가장 마음에 드는 장면은 마지막 회 엔딩 장면에서 이어진 송자인(한예리 분)의 독백이다.
한예리는 방송에서 “이건 그냥 잊혀진 누군가의 얘기다. 그 뜨거웠던 갑오년, 하늘이 사람이 되길 바라던 위대한 백성들, 역사는 그들을 전사라고 부르지만 우리들은 그들의 이름을 안다. 녹두꽃, 그들이 있어 우리가 있다”라는 내레이션으로 ‘녹두꽃’의 마지막을 장식했다.
조정석은 “엔딩이 너무 좋고 만족스러웠다. 백이강이 의경으로 활동하며 ‘진격!’이라고 외치는 장면도 좋더라. 우리가 알고 있는 역사지만 희망이 느껴져 좋았다”라고 설명했다.
동학농민운동은 실패한 역사로 기록됐다. 훗날 중대한 영향을 끼침과 동시에 또 다른 역사의 시작을 알리는 움직임이지만 말이다.
“이미 실패한 운동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안타깝고 슬퍼서 못 보겠다는 의견도 많이 봤다. 하지만 알아야 할 것은 알아야 한다고 생각이다. 정세까지는 몰라도 사람이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생각해야 하는 거 아닌가. 물론 모두의 생각은 다 다르겠지만, 그래도 깨달음과 교훈은 중요한 것 같다.”
‘녹두꽃’은 신념을 지키고 가치 있는 삶을 산 민초들의 대한 얘기다. 그들이 어떻게 살았는지 보여줌과 동시에 전봉준이라는 인물에 대해 되짚었다. 전봉준을 맡은 최무성 역시 조정석에게 남다른 존재였다.
“백이강에게 아버지 같은 분이다. 촬영장에서 자주 뵀지만, 아주 뜨거운 심지 같은 분이다. 꺼지지 않는 촛불. 선생님만의 묵직한 느낌이 있는데 현장에서도 그런 이미지였다. 뒷모습도 옆모습도 든든하더라.”
동학농민혁명이 2019년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는 크다. 동학농민혁명은 누구의 지시가 아닌 자주적인 목소리를 낸 민족 최초의 울림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시청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을까.
“모두가 각자의 생각이 있는 건데 내가 맞다 틀리다 할 수 있는 거 같지 않다. 동학농민혁명이 일어났던 당시에는 가능할 거 같다. 참혹한 현실이 발병됐으니까. 자주적인 목소리는 지금도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김상호 형님의 대사 중에 ‘인즉천(人卽天)에 대해 동의는 못하겠지만, 내 나라 내 땅을 밟고 들어오는 건 참지 못하겠다’라는 대사가 있다. 나 역시 참혹한 당시로 돌아간다면 백이강처럼 할 거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