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태원 SK그룹 회장(사진=SK그룹)
대한민국 재계에 '이승기' '으쓱'이 화두다. 다름 아닌 ESG(환경(Environment), 사회(Social), 지배구조(Governance)) 경영이다. 환경을 보호하고 사회적 가치를 중요하게 여기며 투명하고 윤리적인 지배구조를 갖추겠다는 의미다. 이익 창출을 최우선으로 여기고, 주주를 위한 경영에서 방향을 전환하는 거다. 기업이 몸 담고 있는 사회, 시민과 공생하고 존경받을 때 지속 성장이 가능하다는 뜻을 담고 있다. 뷰어스는 ESG 경영의 의미와 기업의 실천을 살펴보는 기획을 준비했다. -편집자주-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17년 전인 지난 2004년 그룹의 경영 목표를 '다양한 이해관계자의 행복 극대화'로 정했다. 그러면서 "그동안 SK 경영의 최우선 목표였던 이윤 극대화라는 경영 이념은 다원화되고 복잡한 경영 환경 변화에 맞게 새롭게 정립해야 한다"고 밝혔다.
'행복'이란 단어가 기업의 경영 목표로 등장했다. 이후 최 회장을 이를 더욱 구체화했다. 고객, 주주, 협력사, 사회(잠재 고객) 등 각 이해관계자들의 행복을 위한 사회적 가치 추구로 방향을 잡았다. 사회적 가치를 창출하는 것은 지속 가능한 기업을 만들기 위한 필수 조건일 뿐 아니라, 기업이 더 크게 성장하기 위한 전제 조건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최 회장의 꾸준한 고민과 활동은 그를 '행복 전도사' 'ESG 리더'로 불리게 했다.
■ ESG 선두주자, 최태원의 SK
그는 지난해 9월 직원들에게 보낸 이메일에서 “ESG는 미래세대와 공감하며 사회적 건강한 기업 지배구조를 고민하는 일”이라며 “매출, 영업이익 같은 숫자로만 우리를 보여줄 것이 아니라 사회적 가치와 연계한 실적, 그리고 우리가 추구하는 꿈을 하나로 인식하는 것이야 말로 가장 강력하고 유일한 생존법”이라 말했다.
작년 말 진행된 ‘도쿄포럼 2020’ 온라인 개막 연설에서는 “기업들이 친환경 사업, 사회적 가치 창출, 투명한 지배구조 등을 추구하는 ESG경영을 가속화 하는 것이 환경위기와 코로나 팬데믹 등을 극복하는 해법이 될 것”이라 강조하기도 했다.
그룹의 CEO들도 최 회장의 ESG 경영 방침에 호흡을 맞추고 있다.
최진환 SK브로드밴드 대표이사 사장은 “ESG경영은 거창한 것이 아니라 생활 속 작은 행동 변화가 중요하다”며 올해 초부터 홀몸 어르신에게 도시락을 배달하고, 임직원의 자발적 모금을 통해 취약계층에 연탄을 기부하는 등 실천에 나서고 있다.
SK하이닉스는 지난해 이석희 사장 직속의 ESG태스크포스(TF)를 출범했다. 매주 이 사장에게 활동내용을 서면으로 정기 보고하고, 관련 특별 사안은 수시 보고한다. 올해부터는 TF를 정규조직으로 전환해 보다 체계적인 ESG과제들을 수행한다는 계획이다.
SK플래닛의 자회사인 11번가도 올해 ▲유기·반려동물(동물자유연대) ▲청각장애 아동(사랑의달팽이) ▲결식우려 아동(행복얼라이언스) 등 세 가지를 중점으로 사회환원 활동을 이어간다. 이상호 11번가 사장은 “고객의 일상생활과 가장 가깝게 맞닿은 기업으로서 우리 사회에 도움이 될 활동들을 고객들과 함께 진정성 있게 펼쳐 나가고자 한다”고 밝혔다.
■ ‘기업시민’ 천명한 최정우 회장, 산재 없애고 동반성장 추구
포스코는 ‘기업시민’ 개념을 강조하며 ESG경영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기업시민은 기업도 사회적 책임을 지고 공헌하는 시민으로서의 역할을 다해야 한다는 의미다.
지난 2018년 취임사에서 기업시민 경영이념을 선포한 최정우 회장은 이듬해(2019년) 아시아 철강사 최초로 탄소중립 계획을 발표했다. 지난해 1월에는 CEO직속으로 ESG전담조직을 신설하는 등 경영혁신에 나서고 있다.
최정우 포스코 회장. (사진=포스코)
최 회장은 올해 ‘안전’을 ESG경영을 위한 제일 가치로 내세웠다. 신년사에서 최 회장은 “2021년 기업의 ESG경영과 관련한 사회적 요구가 더욱 커졌다”며 “안전을 최우선 핵심가치로 철저히 실행해 재해 없는 행복한 삶의 터전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산재를 없애고 기업가치 제고를 우선순위로 삼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이와 함께 그룹이 보유 중인 전문역량을 활용해 동반성장지원단을 구성, 중소기업을 지원하는 상생 실천에도 나서고 있다. ▲스마트팩토리 구축 ▲ESG현안 해결 ▲설비·에너지 효율화 ▲미래 신기술 도입 등 네 가지 부문에서 컨설팅을 통해 중소기업 경쟁력을 맞춤형으로 지원한다는 계획이다.
■ 그린경영 앞세운 조현준 회장 “환경에 책임감”
환경가치가 업체를 평가하는 중요한 기준이 됨에 따라 조현준 효성그룹 회장은 친환경 사업에 중점을 둔 ‘그린경영’에 나서고 있다.
효성티앤씨는 분리배출된 페트병을 섬유제품으로 재활용하는 기술을 보유 중이다. 지난해 제주도·서울시와 협업해 재활용 섬유 ‘리젠제주’, ‘리젠서울’을 만들어낸 데 이어, 이달 들어서는 여수광양항만공사와의 협업을 통해 선박에서 배출된 페트병을 ‘리젠오션’으로 재탄생시키고 있다. 이렇게 만들어진 재활용 섬유는 의류 업체 등을 통해 새로운 제품으로 탈바꿈한다.
효성중공업은 친환경 사업의 대표주자로 각광받고 있는 수소사업을 위해 자체 인프라 구축에 나섰다. 조 회장은 지난 2월 독일 화학업체 린데그룹과 액화수소 사업 추진을 위한 합작법인 투자계약을 체결하며 “수소경제 활성화의 핵심인 수소에너지 생산부터 유통과 판매 시스템을 갖추게 됐다”고 말했다. 울산에 연간 1만3천톤 규모로 건설되는 액화수소공장은 세계 최대 규모가 될 전망이다.
조현준 효성그룹 회장. (사진=효성그룹)
조 회장은 올해 신년사에서도 “고객들은 이미 높은 수준의 환경 인식과 책임을 기업에 요구하고 있다”며 “환경문제에 대해 지속적으로 책임감을 갖고 다양한 친환경 제품 개발 등 관련 업계를 선도해 나가겠다”라고 밝혔다.
■ ‘상생’ 강조한 김승연 회장
“빨리 가려면 혼자 가도 되지만 멀리 가려면 함께 가라. 협력업체는 단순한 하도급 업체가 아닌 한화그룹의 가족이자 동반자다.”
김승연 회장의 얘기대로 한화그룹은 ESG 관점에서의 상생경영 방안을 마련하고 꾸준히 실천해오고 있다.
한화는 2007년 10월 창립 55주년을 맞아 한화사회봉사단을 창단했다. 매년 창립기념일이 있는 10월 한 달 동안 계열사 임직원 수천명이 참여하는 릴레이 봉사활동을 진행하고 있다. 2000년 영국을 시작으로 ESG 정보공시 제도화가 시작됐단 점을 고려하면 발빠른 대응이다.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 (사진=한화그룹)
복지기관과 섬마을에 태양광 등 에너지 발전설비를 기부하는 ‘해피선샤인’ 캠페인과, 2007년부터 사회복지공동모금에 매년 30억원씩 기탁하는 활동도 한화 고유의 사회공헌활동 프로그램이다.
지난해 코로나19가 확산될 때는 한화생명 라이프파크를 경증환자를 위한 생활치료센터로 제공하고, 마스크 및 개인위생용품 세트 기부, 협력업체 지원 강화 등을 통해 김 회장의 상생정신을 실천했다.
■ 세 마리 토끼 한 번에 잡는 정의선號 현대차그룹
지난해 출범한 정의선호 현대자동차그룹은 환경(E)과 사회적 책임(S), 지배구조(G)를 동시에 챙기는 모습이다.
2030년까지 연간 50만대 규모의 수소전기차 생산체계를 구축한다는 목표를 세운 현대차그룹은 40여년을 이어온 내연기관 엔진 개발을 접고 본격적인 수소전기차 양산이라는 새로운 도전에 나섰다.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 (사진=현대자동차)
사회적인 책임도 신경 쓰는 항목이다. 작년 9월 유엔개발계획(UNPD)과 손잡은 현대차는 ‘지속 가능한 발전을 위한 솔루션 창출과 현실화에 대한 업무협약’을 맺고 ‘포 투모로우’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아직 순환출자구조를 갖고 있는 현대차그룹의 지배구조 개편도 진행 중이다. 지난해 10월 취임한 정의선 회장은 현대오토에버를 중심으로 계열사를 재편하는 등 그룹체계 정비에 나서고 있다.
현대모비스는 2015년 발족한 투명경영위원회를 지난 3월 지속가능경영위원회로 개편했다. 이를 통해 지배구조 건전성을 통한 주주가치 개선은 물론 ESG분야 활동 등을 총괄한다는 계획이다. 현대차와 기아도 조만간 이사회를 거쳐 같은 취지로 정관 변경을 추진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