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산업계는 명과 암이 극명하게 엇갈렸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앞세운 반도체 업계는 호황을 구가하며 사상 최대 실적을 예고했다. 반도체를 필두로 한 산업계는 지난 11월 월간 기준 수출액이 사상 최초로 600억달러를 넘어서며 신기원을 열었다. 반면 자동차 업계를 중심으로 요소수, 반도체 등 글로벌 공급망에 치명적인 허점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뷰어스는 올 한 해 산업계를 웃고 울게 만들었던 이슈를 되짚어봤다. -편집자 주
삼성전자 미국 오스틴 반도체 공장 전경. (사진=삼성전자)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코로나19이 불확실성 속에서 반도체는 호황을 지속했다. 온라인 세상에서 만나느라 정보기술(IT) 수요가 늘어 상성전자 등 반도체 업계가 풍족한 해를 보냈다.
노트북 등 전자·IT기기 수요 증가와 글로벌 주요 기업들의 서버 투자 재개로 D램과 낸드플래시 등 메모리반도체는 긍정적인 시황을 보였고 지난해 말 완성차업계의 수요 예측 오류로 촉발된 차량용 반도체 공급난은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수요 폭증으로 이어졌다. 반도체 업계는 이 기세를 이어가 비메리 업계 1위 고지를 점령라하는 복안이다.
■ 사상 최대 실적…'흑호' 해 비메리 반도체도 1위 점령 예고
28일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지만 13일 기준 우리나라의 수출액은 기존 최대 실적(6049억달러)을 넘어섰다. 반도체를 비롯한 주력 품목이 선전한 덕분이다 국산 메모리 반도체는 1~9월 시장 점유율 세계 1위를 지켰다.
삼성전자는 연결 재무제표 기준 3분기 매출액으로 분기 사상 최대인 73조9800억원을 달성했다. 영업이익은 15조8175억원이다. 이 가운데 반도체 영업이익만 10조원이 넘는다. 삼성전자 실적 3분의 2를 반도체가 책임진 셈이다.
삼성전자의 4분기 실적 전망치(컨센서스)는 매출 75조2872억원, 영업이익은 15조1102억원으로 각각 추정된다. 작년 4분기 대비 매출은 22.3%, 영업이익은 67.0% 각각 증가한 수치다. 연간 매출은 278조원, 영업이익은 52조원을 넘게 된다. 매출은 역대 최대치이며 영업이익은 반도체 슈퍼호황기였던 2017~2018년 이후 최고 수준이다. 4분기 추정치만 놓고 보면 매출은 분기 기준으로 가장 많고 영업이익은 3분기(15조8200억원)보다 소폭 감소한다.
무엇보다 반도체 실적 호조가 전체 실적을 끌어올린 것으로 분석됐다. 대부분 증권사는 삼성전자의 4분기 반도체 부문 영업이익 전망치를 9조원 중반대로 제시했다.
SK하이닉스는 올해 3분기까지 누계 매출 30조6212억원, 영업이익 8조1908억원을 기록했다. 3분기 SK하이닉스는 2년 반 만에 4조원대 분기 영업이익을 기록했다. 매출액은 창사 이래 분기 최대치인 11조8053억원으로 집계됐다. 매출은 지난해 동기 대비 25%, 영업이익은 102%가량 늘었다. 하나금융투자가 집계한 올해 매출과 영업이익 컨센서스는 각각 42조9495억원, 12조5842억원이다.
SK하이닉스는 지난 22일 인텔의 낸드 사업부 인수에 대한 중국 정부의 승인을 최종적으로 받아내 날개를 달게 됐다. 중국의 승인이 예상보다 늦어지면서 SK하이닉스의 인텔 낸드 인수가 무산되는 것 아니냐는 관측까지 나왔지만 우여곡절 끝에 인수 발표 14개월 만에 중국의 조건부 승인이 떨어졌다.
아이로니컬하게도 코로나19 장기화로 인해 서버용 D램 등 메모리 반도체 시장도 호황을 누렸다. 재택근무와 온라인 학습 등 비대면 수요가 증가하면서 컴퓨터·스마트폰 등 IT 기기에 사용되는 메모리 반도체 수요가 증가했다는 분석이다.
반도체 업계는 2022년 '흑호'를 앞두고 대대적인 투자로 글로벌 반도채 선두로 우뚝 선다는 계획이다. 삼성전자는 국내 기흥·화성캠퍼스와 평택캠퍼스에 더해 미국 오스틴·테일러를 잇는 시스템 반도체 삼각편대를 구축한다. 20조원(170억달러) 들여 미국 텍사스주 테일러시에 파운드리 제2공장을 짓는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2019년 4월 ‘시스템 반도체 비전 2030’을 발표하며 “메모리 반도체에 이어 파운드리를 포함한 시스템 반도체에서도 확실히 1등을 하겠다”고 말했다. 2030년까지 시스템 반도체 생산·연구개발(R&D)에 133조원 투자해 세계 1위 파운드리 회사 TSMC를 넘어서겠다는 목표를 잡았다.
SK하이닉스도 파운드리 분야에도 대규모 자금을 투입했다. 자회사 SK하이닉스시스템아이씨 생산 거점을 청주에서 중국 우시로 옮겨 현지 시장을 공략할 계획이다. 키파운드리 인수에는 5758억원을 사용했다.
SK하이닉스 이천캠퍼스. (사진=SK하이닉스)
■ 美中 패권 경쟁 속에 수출 중심 대한민국의 '자화상'
올해는 미국과 중국을 중심으로 한 주요국들의 반도체 공급망 주도권 경쟁이 심화된 한 해였다.
미국 정부는 조 바이든 대통령이 지난 4월 반도체 공급망 복원을 선언한 이후 자국을 중심으로 한 공급망 구축을 우선순위로 내세우며 세금 면제 등 반도체 산업 육성 정책을 적극 내놓고 있다. 여기에 더해 상무부 차원에서 반도체 수요·공급 업체들을 대상으로 3차례에 거쳐 공급망 관련 논의를 위한 회의를 개최하고 이들 기업들에게 판매·재고량, 고객, 공급 확대 방안 등 주요 정보 제출을 요구하는 등 주도권 확보에도 적극 나서고 있다.
중국도 미국 정부의 반도체 제재에도 불구하고 자국 기업들을 중심으로 투자 기조를 지속하고 있는 가운데 유럽연합(EU)과 일본 등도 자국 내 반도체 생산시설 유치를 통한 공급망 확대에 전력하고 있다. 업계에서는 내년에도 미국과 중국을 중심으로 전 세계 각국의 반도체 공급망 주도권 확보가 더욱 치열해지면서 경쟁을 넘어 갈등으로 증폭될 가능성이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코로나19로 전 세계 경기 회복세가 타격을 받고 있는 가운데 ‘스태그플레이션’(불경기)와 인플레이션의 합성어) 경고가 나오면서 향후 반도체 업황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글로벌 경기가 악화되는 상황에서 물가만 천정부지로 치솟는 스태그플레이션이 현실화되면 반도체 업황에도 타격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원자재 가격 상승과 부품 부족, 물류난 등으로 전자기기와 자동차 등 반도체 수요 업체들의 생산이 차질을 빚을 수 있는 상황이다.
이에 완제품 가격이 오를 수 있는 상황에서 경기 악화로 한층 어려워진 가계 경제로 인해 고객들이 지갑을 닫으면서 판매가 부진해지고 다시 재고가 쌓이면서 반도체 등 부품 수요에 타격을 주는 악순환의 고리가 시작될 수도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여기에 코로나19의 새로운 변이 바이러스인 오미크론 확산세도 경기 회복의 발목을 잡을 수 있어 반도체 업황의 불확실성을 더하는 변수로 작용할 수 있다.
업계 한 관계자는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내리는 판단에 따라 기업에 커다란 리스크가 생길 수 있다"며 "한국 기업들이 양국 사이에서 위태로운 줄타기를 하는 모습"이라고 말했다.
재계 관계자는 “내년 업황은 글로벌 경기와 물가에 크게 영향을 받게 될 것”이라며 “각국 정부가 인플레이션 우려로 금리 인상 등을 통한 긴축 정책을 펼치게 되면 투자 위축으로 인한 수요 타격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진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