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연합뉴스
“틀딱충 : ‘틀니딱딱’과 벌레의 합성어
할매미 : 할머니와 매미의 합성어
연금충 : 국민연금으로 연명하는 벌레”
모두 노인을 비하하는 단어다. 젊은 세대들의 혐로(嫌老) 현상이 어디서 어떻게 출발했는지 알 수 없지만 노인을 조롱하고 비하하는 단어들은 일상적으로 쓰이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같은 현상에 대해 급속하게 진행되는 고령화, 노인 부양의 부담을 떠안게 된다는 젊은 세대들의 거부감을 꼽는다. 게다가 오랜 세월 이어져 온 효도·경로사상 강요, 장소를 가리지 않는 일부 노인들의 과격한 행동이 젊은 층의 혐로현상을 부추겼다는 진단이 이어지고 있다. 하지만 노인들도 살기 힘든 건 마찬가지다. 노인들은 급변하는 시대를 뒤따라가기만도 벅차다. 조금만 버벅대도 “노인이라서”라는 말을 들어야 하고, 당최 알 수 없는 기계 앞에서 헤매야 하기도 하다.
10월 2일은 노인의 날이다. 정부는 이 날을 법정기념일로 정하면서 “경로효친 사상을 앙양하고, 전통문화를 계승 발전시켜온 노인들의 노고를 치하하기 위해 제정”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지금의 시대에 경로효친을 부르짖기에 노인들이 살아가기에는 힘든 부분들이 많다. 혐로현상 속에 뒤쳐지고 있는 노인들이, 어디서 어떻게 헤매고 있는지 대표적인 부분을 살펴봤다.
사진=박막례 할머니 유튜브 캡처
■ “기계를 상대하기 벅차다” 장년층에 너무 어려운 키오스크
요즘 나이 지긋한 노인들이 가장 어려워하는 것 중 하나가 바로 키오스크다. 패스트푸드점은 물론이고 분식점, 영화관, 카페를 비롯해 이제 약국도 키오스크가 도입될 조짐이 일고 있다. 키오스크란 그래픽, 통신카드 등 첨단 멀티미디어 기기를 활용해 음성서비스, 동영상 구현 등 이용자에게 효율적인 정보를 제공하는 무인 종합정보안내시스템이다. 비대면을 선호하는 요즘 세대나 비용과 사람관리가 고민인 업주 입장에서는 반기는 추세다. 그러나 응대하는 사람이 없는 데다 절차가 복잡하고 낯선 용어가 가득한 안내글을 일일이 읽어야 한다는 점에서 노인들에겐 가장 어려운 상대일 수밖에 없다.
지난달 29일, 키오스크가 설치된 서울 시내 모 음식점에서 한 노인이 서성대고 있었다. 그는 한 페이지를 넘어가는 데만도 상당한 시간을 소요했고, 카드 결제 부분에서 여러 갈래로 나뉘어진 방식에 한참을 고민했다. 도와주겠다고 하자 반색하던 그는 키오스크 기기 영수증 종이가 떨어져 점원이 와 교체하는 과정이 길어지자 답답해했다. 이 노인은 “사람이 응대하면 시간이 더 줄어들텐데 시간은 시간대로 들고 너무 답답하다”면서 “음식값에는 서비스 비용도 포함 아니냐. 우리같은 노인은 눈도 잘 보이지 않고 용어 이해도 안돼서 너무 힘들다”고 토로했다.
실제 70대 인기 유튜버인 박막례 할머니도 키오스크에 도전하는 영상을 통해 “햄버거를 먹고 싶어도 못 먹겠다”고 분통을 터트린 바다. 당시 영상 제목은 ‘막례는 가고 싶어도 못 가는 식당’이었고 박막례 할머니는 불고기 버거를 주문하려 했지만 실패를 거듭해야 했다. 해당 기계에 시간 초과 설정이 있었기 때문. 박 할머니는 무인 판매기에서 원하는 메뉴를 찾지 못했고 시간이 초과된 탓에 기기는 자꾸만 초기 화면으로 돌아갔다. 카드 투입구를 찾는 것도, 글씨 크기가 작아 원하는 메뉴를 찾기도 힘들었던 박 할머니는 기기높이조차 맞지 않다고 고충을 밝혔다.
키오스크가 설치된 장소들은 젊은 세대의 전유물이 아님에도 노인 세대를 배제하는 분위기로 인식될 수 있다는 점에서 편의성만 고려한 키오스크의 도입은 아닌지 고심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SKT가 운영하는 시니어강사의 스마트폰 교실(사진=SKT)
■ “비싸기만 하지 알 수가 있나” 스마트폰의 벽 여전히 높다
60대 후반인 기자의 어머니는 종종 휴대전화 문제로 전화를 걸어온다. 카카오톡이나 인터넷 뉴스 보기, 사진 전송과 받기 등 기본적 사항은 알고 있지만 카카오톡이 업데이트로 화면이나 위치가 바뀌었을 때, 간혹 휴대전화 업그레이드로 이해하기 어려운 용어들이 등장했을 때 어떻게 해야 하냐는 도움 요청들이 주를 이룬다. 가장 최근의 문의는 푹(Pooq)TV와 옥수수 합병으로 탄생한 웨이브(Wave)때문이었다. 합병 후 안내 절차에 따라 다시 설정하는 과정은 노모에겐 어려운 일이었다.
한 명의 사례일 뿐이지만 적지 않은 노인들이 겪는 문제이기도 하다. 젊은 세대에겐 너무 쉬운 어플 설치조차도 쉽지 않은 노인들이 적지 않다. 한국정보화진흥원(NIA)의 ‘2018 디지털정보격차 실태조사’에 따르면 모바일 기기 이용 능력 면에서 필요한 앱 설치 및 이용을 전혀 할 수 없다고 답한 장노년층은 41%에 달한다. 그나마 자식들과 함께 사는 노인들이라면 문제 해결이 빠르지만 자식들이 분가한 경우, 거주 지역이 멀 경우 노인들의 한숨이 짙어진다.
도서산간지역에서 이같은 고충들이 더 깊지만 도심지도 크게 다르지 않다. 유독 노인 인구가 많은 경기도 한 지역의 휴대전화 대리점 직원 이모(25)씨는 “노인분들이 많이 찾아오신다. 카메라가 갑자기 바뀌어서 촬영이 안된다는데 들여다보면 화면 전환이 돼 있는 때가 많다. 실수로 와이파이 버튼을 꺼두고는 갑자기 인터넷이 안된다시는 분도 많고 노인끼리 통화하다 서로 전화 종료 버튼을 누르지 않아 2~3시간씩 통화상태였던 탓에 요금이 너무 많이 나왔다고 해결해달라 오시는 분도 적지 않다”고 말했다.
노인들의 고충은 스마트폰 가격을 두고도 불거져 나온다. 생활이 풍족한 이들이야 100만원대의 플래그십 스마트폰을 구매해 사용하지만 저렴한 가격대의 마땅한 스마트폰이 없다는 것이다. 폴더폰은 저렴한 가격대지만 화면이 너무 작아서 자녀들과 대화를 나누기도 힘들다는 불평이 있는가 하면 보급형으로 출시된 스마트폰 역시 40만~50만원돈이기에 버겁다는 반응들이 적지 않다. 가격이 내렸다는 소식을 접하고 매장을 찾아도 비싼 요금제가 뒤따르는 것에 부담스럽다는 노인들도 있다. 게다가 거금을 주고 스마트폰을 사도 번번이 가로막히는 탓에 정보격차문제가 심각하다는 지적이 이어지고 있다.
사진=EBS '다큐 시선'
■ 정보화시대, 정보 활용 능력 떨어지는 노인만 소외
이 밖에 은행에서도 노인들의 불편함은 적지 않다. 요즘 은행들은 종이통장을 줄여가는 추세다. 물론 원하는 경우 종이통장을 발급해주고 있지만 이 종이통장으로는 예전처럼 4자릿수 비밀번호만으로는 출금이 불가한 은행들이 많다. 여러 복잡한 절차를 거쳐 설정 과정을 거쳐야 하고 이 점이 싫어 창구를 찾으면 수수료가 붙는다. 카드를 만들어 사용하고 있는 이들도 많지만 도서산간지역일수록 통장 선호 비중이 높다는 것이 은행 측 설명이다. 텔레뱅킹이나 스마트폰 뱅킹 역시 노인들의 접근성은 낮을 수밖에 없다. 하다못해 OTP카드도 버겁다는 이들이 적지 않다. AI도 저변을 넓혀가고 있지만 일상에서 노인들이 적용하기엔 힘들다. 일부 통신사의 경우는 AI 기기 이름이 길어 노인 사용자들이 버거워하기도 한다.
한국정보화진흥원(NIA)의 ‘2018 디지털정보격차 실태조사’에서는 정보화시대를 살아가는 노인들의 고충이 더 잘 드러난다. 만 55세 이상의 장노년층의 종합적인 ‘디지털정보화 수준’은 일반 국민의 63.1%이며 이는 장애인·저소득층·농어민·장노년층 등 4대 정보취약계층 중 최하위다.
세상은 급변할 수밖에 없고 따라오지 못하면 도태되는 것이 당연한 이치로 받아들여진다. 그러나 일상에서조차 어려움을 겪는 이같은 상황은 노인들을 위한 실질적이고 기본적인 교육이 왜 필요한지, 정보격차를 줄이는 방안과 디지털화의 속도 조절이 왜 필요한지를 말하고 있다. 그저 노인이라서라고 치부하기엔 현재 젊은 세대 역시 늙어가고 있다. 청년층이 늙었을 때 세상은 지금보다 더 많이 변할 것이다. 어쩌면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라는 영화 제목이 언젠가는 정말로 현실화될지도 모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