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강남구 재건축 현장. (사진=연합뉴스)
미분양 물량이 늘어나면서 건설업체의 자금조달 여건이 수개월째 나빠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시공능력평가 100위권 내외 중견건설사마저 법정관리에 들어갔으며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우발채무 부담도 여전하다. 이에 따라 건설업계 대규모 줄도산 위기설도 현실화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19일 주택산업연구원에 따르면 4월 주택사업자의 자금조달지수가 지난달 대비 11.9포인트(p) 하락한 66.6으로 나타났다. 이 지수가 100을 밑돌면 자금조달 전망을 비관적으로 보는 업체가 더 많다는 것을 의미한다.
주택사업자금조달지수는 지난해 11월 37.3을 기록하면서 금융위기를 겪었던 지난 2012년 수준으로 떨어졌다. 이후 4개월 연속 회복세를 나타냈으나 이달 들어 다시 하락했다.
주산연 측은 "부동산 금융경색 완화대책을 적극적으로 시행하고 있으나 주택시장침체가 계속되면서 미분양적체와 토지매입 후 사업추진 지연 등으로 주택건설업체의 자금압박이 점차 심화되고 있는 상황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며 "주택시장 침체분위기가 반전되지 않는 한 주택건설업체의 자금난은 앞으로도 점차 심화될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이어 "하반기까지 주택시장 침체 상황이 계속되면 주택업체의 연쇄도산과 어울러 금융권부실로 전이될 가능성이 크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지난 7일 시공능력평가 109위의 중견건설사 대창기업은 서울회생법원에 법정관리를 신청했다. 대창기업 감사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31일 기준 부채비율은 408%에 달했다. 전체 건설현장에서 받지 못한 공사미수금 미청구금액도 506억원 가량으로 재무안정성에 위협 요인으로 작용했다.
지난해에는 우석건설(시공능력평가 순위 202위)과 동원건설산업(388위)가 부도처리됐다. 올해 초에도 대우조선해양건설(83위)이 법원으로부터 회생절차 개시 결정을 받았고 HN Inc(133위)는 법정관리를 신청했다.
■ 주요 건설사, 단기 유동성 해결했지만 PF 여전히 시한폭탄…고금리 상황도 부담
지난해 건설업계를 덮친 PF 위기도 여전하다. 지난달 나이스신용평가가 내놓은 '건설회사 부동산 PF우발채무 리스크 범위 비교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11개 주요 건설사(현대건설·포스코이앤씨·GS건설·롯데건설·대우건설·태영건설·HDC현대산업개발·KCC건설·동부건설·코오롱글로벌·HL디앤아이 한라)의 PF우발채무 부담은 약 95조원 가량이다. 이 중 위험성이 높은 연대보증과 채무인수 등 자금보충의 신용보강 우발채무로 국한한 규모는 20조원 수준이다.
나신평은 해당 건설사들의 보유 현금유동성 규모는 12조원 가량에 불과하다는 점을 들어 우발채무 규모가 매우 과다하고 진단했다. 현대건설과 롯데건설, 태영건설은 브릿지론 규모가 1조원을 넘는다.
현대건설은 3조3000억원 가량의 브릿지론을 보유하고 있으나 관련 사업장의 90%는 서울에 위치한다는 점에서 위험도가 높지 않은 것으로 분석됐다. 롯데건설은 전체 브릿지론 4조3000억원 중 1조4000억원이 위험군 우발채무로 분류됐다. 태영건설은 1조1000억원 중 5600억원이 우발채무에 해당한다.
다만 롯데건설은 지난 1월 메리츠금융그룹과 투자협약 체결로 회사가 보유한 1조4000억원의 유동화증권을 매각해 현금유동성을 확보했다. 태영건설도 같은 달 관계사 티와이홀딩스로부터 4000억원을 차입해 현금유동성을 확보했다.
이 같은 건설사의 움직임을 놓고 나신평은 단기적 위기 대응력은 높아졌으나 부동산 침체가 장기화 된다면 재무부담 확대 가능성이 여전하다는 평가다.
실제로도 주요 건설사의 재무안정성은 지속적으로 위협받고 있다.
HL디앤아이한라는 지난 14일 만기 2년~2.5년물 사모채 총 130억원어치를 발행하는 데 성공했으나 2년물 금리와 2.5년물 금리가 각각 연 8.5%, 연 8.7%에 달했다. 이 회사는 지난달 신용보증기금이 보증하는 채권담보부증권(P-CBO)를 발행한 지 한달도 되지 않아 추가 조달에 나섰다. 당시 3년물 P-CBO의 표면이자율이 연 4.435%였던 점을 고려하면 이자비용은 두 배이상이다.
HL디앤아이한라의 2022년말 기준 부채비율이 290% 수준이었던 점을 고려하면 고금리로 인한 부담은 적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건설업계 관계자는 "PF 관련 부담은 최근 덜었지만 여전히 자금조달에 있어 쉽지 않은 상황"이라며 "미분양 물량 압박도 여전히 높아 사업 진행 여력이 마땅치 않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