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서초구 호반건설 사옥. (사진=연합뉴스)
공정거래위원회가 '벌떼입찰'을 통해 6조원에 가까운 매출, 1조원 넘는 이익을 올린 호반건설에 600억원 수준의 과징금을 부과했다. 이에 솜방망이 처벌이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은 추가 조치를 예고하며 강경 대응 기조를 이어가고 있다. 하지만 과거 이뤄진 '벌떼입찰' 자체를 위법으로 단정하기 어려운 만큼 실질적인 처벌 수위 확대까지는 쉽지 않을 전망이다.
19일 업계에 따르면 공정거래위원회와 국토교통부 등이 중흥·대방·우미·제일건설의 '벌떼입찰'에 대한 위법 여부를 조사 중이다.
지난해 국민의힘 강민국 의원이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4개 건설사는 지난 2017년부터 2021년까지 위장 계열사를 대거 입찰에 참여시키는 방식으로 총 178개의 공공택지 중 49필지를 낙찰 받았다. 공공택지 청약이 한 필지 당 수백억원의 수익이 발생하는데 추첨방식으로 낙찰이 이뤄지는 까닭에 당첨 확률을 높이기 위해 이른바 '벌떼입찰'에 나선 것이다.
앞서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이 택지 환수와 경찰 수사 의뢰 등 강도 높은 대응을 예고한 만큼 '벌떼입찰' 의심 건설사도 수사 진행 여부에 촉각을 세우고 있다.
한 중견건설사 관계자는 "대형 건설사는 계열사 등록이 까다로운 측면도 있어 '벌떼입찰'과 같은 일종의 편법이 불가능했지만 중견사들은 수 십개의 계열사를 동원해 당첨 가능성을 높인 게 엄연한 사실"이라며 "공공택지를 낙찰 받은 건설사가 몇 년 사이에 급격하게 성장했지만 위법성 여부는 공정위와 국토부, 수사기관 등이 판단할 사안"이라고 말했다.
다만 앞선 4개사보다 먼저 '벌떼입찰'에 대한 공정위의 제재가 이뤄진 호반건설의 사례를 비춰볼 때 각 건설사에 대한 강도높은 처벌은 장담하기 어렵다는 시각이 나온다.
호반건설은 앞서 지난 15일 공정위로부터 잠정 과징금 608억원 처분을 받았다. 공정위는 호반그룹이 지난 2010년 12월~2015년 9월까지 '벌떼입찰'을 통해 화성 동탄·김포 한강을 포함한 23개의 공공택지 사업을 진행했고 분양 매출 5조8600억원을 거둬들였다고 판단했다. 분양 이익은 1조3600억원이다.
공정위는 호반그룹의 이 같은 '벌떼입찰' 자체는 위법하지 않다고 판단했다. 벌떼입찰을 통해 입찰담합이 이뤄진 것이 아니므로 현행 공정거래법에서 이를 제재 명목으로 삼기는 어렵다는 해석을 내놓았다.
다만 호반건설이 호반그룹 김상열 총수의 두 아들 회사에게 넘겨준 부당지원 혐의에 초점을 맞췄다. 과징금은 구체적으로 공공택지 양도 행위에 대한 360억원과 '벌떼입찰'을 위한 입찰 신청금 무상대와 프로젝트펀드(PF) 대출 지급 보증 수수료 미수취 등 부당지원·사익 편취 행위 중심으로 부과됐다.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 (사진=연합뉴스)
이에 일각에서는 조 단위의 분양 이익을 올리고도 과징금이 지나치게 적은 것이 아니냐며 솜방망이 처벌이라는 비판도 나온다.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도 공정위의 처분 이후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2013~2015년도 벌어진 이 건에 대해 공정거래위원회에서 과징금 608억원을 부과했지만, 호반건설의 두 아들이 운영하는 회사들은 분양이익만 1조3000억원 이상을 벌었다. 불공정도 이런 불공정이 없다"고 지적했다.
이어 "호반건설 뿐 아니라 그동안 적발된 수십 개의 벌떼입찰 건설사가 현재 경찰·검찰 수사와 공정위조사 등을 받고 있다. 이와 함께 제도적 보완을 통해, 벌떼입찰을 원천봉쇄 하겠다"는 추가 대응 의지를 밝혔다.
국토부는 추가적으로 호반건설의 2019~2021년도 벌떼입찰 건에 대한 경찰 수사를 의뢰한 상태다. 국토부에서도 직접 호반건설과 함께 기타 '벌떼입찰' 업체의 해당 시기 등록기준 충족 여부를 들여다보고 있다.
호반건설 처분 이후 공정위의 조사가 계속 이뤄지고 있는 4개 건설사도 부당지원 혐의에 무게를 두고 과징금 수위가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국토부와 공정위, 수사기관 등이 전방위적으로 각 업체의 불법성 여부를 살펴보고 있으나 공정위의 해석대로 현행법상 추가적인 제재까지는 난항이 예상된다. 택지 환수와 같은 강도 높은 처벌도 법적 소송과 같은 절차 문제가 있다.
건설업계 관계자는 "'벌떼입찰'이 성행했을 당시에도 공공택지 추첨제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은 꾸준히 나왔으나 법적인 규제 장치가 미비했던 게 이 상황까지 왔다"며 "강력한 규제 장치를 마련하더라도 소급 적용은 당연히 불가능하겠지만 이제라도 지난해부터 시범도입한 1사1필지 제도와 같은 개선안을 다듬고 만들어 갈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