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일 판교 넥슨코리아 앞에서 열린 여성·시민단체들의 기자회견. (사진=백민재 기자)
인기 게임 홍보 영상에 등장한 ‘집게 손가락’ 논란이 여성단체까지 가세하며 일파만파 커지는 모양새다.
이번 논란은 최근 공개된 넥슨의 게임 ‘메이플스토리’ 홍보용 애니메이션 속 캐릭터가 엄지와 검지로 집게 손 모양을 취한 것을 유저들이 문제 삼으면서 시작됐다. 과거부터 여성 커뮤니티에서 남성들을 조롱하기 위해 사용해오던 이미지와 유사하다는 이유에서다. ‘메이플스토리’ 외에 ‘던전앤파이터’ ‘블루아카이브’ ‘에픽세븐’ 등 다른 게임 홍보 영상에서도 비슷한 논란이 불거졌다.
논란이 된 영상은 모두 애니메이션 제작사 ‘스튜디오 뿌리’에서 제작했다. 이 과정에서 스튜디오 뿌리의 직원이 그 동안 트위터(X)에서 페미니즘과 관련된 발언을 이어왔다는 사실이 드러나 논란은 더욱 커졌다. “고의적으로 남성 혐오 표현을 몰래 넣은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됐다.
넥슨과 스마일게이트 등 게임사들은 26일 새벽부터 문제가 된 영상들을 비공개 처리하며 대응에 나섰다.
스튜디오 뿌리는 26일 공식 트위터에 “게임을 즐기는 유저들, 믿고 일을 맡겨주신 업체들, 이 사태를 지켜보는 많은 분께 물의를 일으켜 죄송하다”고 밝혔다. 27일에는 2차 사과문을 내고 해당 스태프가 퇴사를 결정했다는 소식도 알렸다.
논란은 계속 이어졌다. 28일에는 여성단체와 시민단체가 나섰다. 한국여성민우회와 문화연대 등은 이날 판교 넥슨코리아 사옥 앞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넥슨을 비난했다.
이들은 “2016년부터 지적됐던 게임업계 및 게임문화에서의 페미니즘 사상검증, 여성 혐오가 아직도 버젓이 이뤄지고 있다”며 “넥슨코리아처럼 영향력이 큰 게임사가 이러한 행태를 무책임하게 용인하고 조장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또 논란이 된 애니메이션 속의 손가락 모양은 우연의 일치일 뿐이며, 페미니즘의 상징도 아니라고 강조했다. 넥슨이 일부 유저의 집단 착각에 굴복해 억지논란을 키우고 있으며, 이러한 행위가 게임업계의 여성 혐오와 사상검증을 부추긴다는 주장이다.
‘메이플스토리’ 엔젤릭마스터 리마스터 버전 영상. (사진=유튜브 캡처)
하지만 기자회견 이후 게임 커뮤니티 이용자들은 더욱 거세게 반발하는 분위기다. 유저들은 외주 업체가 작업물에 소비자들이 싫어할 이미지를 고의적으로 넣었다면 당연히 큰 문제가 된다며 반박했다.
한 유저는 “집게 손가락이 아니라 일베 표시였다 하더라도 문제가 되는 것은 마찬가지”라면서 “이번 일로 피해를 입은 쪽은 넥슨인데, 오히려 넥슨을 규탄하는 행동은 이해할 수 없다”라는 반응을 보였다.
스튜디오 뿌리 장선영 대표도 2차 사과문에서 “다양한 유저들에게 보여지는 영상을 만드는 회사로서 개인적인 정치사상이 영상에 표현되는 것은 결코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사과했다. 해당 사과문은 현재 삭제된 상태다.
사건이 벌어진 후 직장인 익명 커뮤니티 ‘블라인드’에서는 넥슨 직원들이 분노와 억울함을 토해내고 있다. 한 넥슨 직원은 블라인드에 “손가락 하나 넣어 이겼다는 우월감에 빠지겠지만, 그것 하나 때문에 우리(게임업계 종사자)는 관련 유관부서들과 담당 인력들이 고생하고, 수십명이 게임을 좋아하는 유저들과 동료들에게 죄책감을 갖고 일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어 “나도 여자이고 게임을 사랑해서 이 업계에 와 있다”며 “너희들은 페미(페미니스트)가 아니고 인류 혐오자들이다. 너희들이 좋아하는 여성 인권을 박살 내는 파탄자들”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넥슨은 이날 열린 기자회견과 관련해서는 별도의 입장을 내지 않았다. 다만 “우리 사회의 긍정적 가치를 훼손하는 모든 차별과 혐오에 반대하는 입장”이라며 “현재 논란이 되는 작업물은 접근이 불가하도록 조치했으며, 추가로 해당 작업물들이 포함된 게임별로 리소스를 전수조사 중”이라고 밝혔다. 애니메이션 제작사에 대해서는 사실관계 확인 후 조치를 검토한다는 방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