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용건설이 지난해 KT 판교 신사옥에서 공사비 증액 관련 시위를 하는 모습. (사진=쌍용건설)
건설원가 상승 여파로 건설 현장 곳곳에서 공사비 갈등이 벌어지고 있다. 그동안 재건축·재개발 현장에서의 두드러졌던 잡음이 공공공사는 물론 기업 간 계약에도 나타나고 있다. 계약자 간의 대화를 통한 합의점 찾기 외에는 뚜렷한 해법이 없는 만큼 공사비 분쟁은 장기전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13일 건설업계에 따르면 쌍용건설은 전날 서울 광화문 KT 사옥 앞에서 판교 신사옥 공사비 증액 관련 시위를 벌일 예정이었으나 KT 측의 요청으로 일정을 일단 연기했다.
쌍용건설은 물가 인상분을 반영한 공사비 171억원을 증액해 달라고 KT에 요청하고 있다. KT는 도급계약서상 물가 변동에 따른 계약금액 조정을 배제한다는 규정을 이유로 거부 중이다.
쌍용건설의 공사비 증액 요구는 각종 원자재 가격 상승 때문이다. 코로나19(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 사태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등의 후폭풍으로 그간 원자잿값은 거듭 고공행진을 하고있다. 건설산업연구원에 따르면 지난 2020년 12월부터 2023년 12월까지 3년간 중간재건설용 물가는 35.6%나 뛰었다.
공공공사에서도 공사비 갈등 끝에 현장이 멈추는 사례가 나오고 있다.
대보건설은 지난 5일 한국토지주택공사(LH)와 공사비 증액 협상이 제대로 진행되지 않고 있다면서 세종시 집현동 공동 캠퍼스 건설공사를 중단했다.
해당 프로젝트의 2022년 계약 당시 공사비는 750억원이었는데 LH의 일부 동 조기 준공 요구에 따라 자체적인 추가 공사비를 투입한 결과, 300억원 이상의 손실이 예상된다는 게 대보건설의 설명이다.
LH 측은 이와 관련해 "건설공사비 상승분은 지난해 12월 관계 법령에 따라 물가상승비용으로 공사비에 반영했다"면서 "건설사와 계약금액 조정사항에 대해 적극 협의해 세종공동캠퍼스 사업의 조속한 정상화를 위해 노력하겠다"는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재건축·재개발 현장은 시공사와 발주처 간 공사비 분쟁이 격화되는 형국이다.
재건축을 추진 중인 서울 송파구 잠실진주 아파트는 3.3㎡(평)당 공사비 660만원의 계약을 889만원으로 올려달라는 시공사의 요구를 놓고 수개월째 줄다리기 중이다.
서울 서대문구 홍제3구역 재건축 사업장도 공사비를 놓고 시공사와 씨름하고 있다. 조합은 현재 시공사인 현대건설과 계약 해지를 놓고 고심하고 있다. 애초 512만원의 평당 공사비를 시공사가 898만원으로 인상해달라고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일부 조합원들의 반발 속에 시공사가 마감재 등급을 낮추는 방향으로 830만원으로 수정 제시하는 등 타협점을 찾고 있다.
마포 북아현2구역 재개발사업 현장은 2020년 3.3㎡당 490만원 수준이었던 공사비가 지난해 859만원까지 오르자 마감재 협의 등을 통해 공사비를 748만원 수준으로까지 낮췄다.
발주처를 가리지 않고 공사비 분쟁이 불거지면서 일각에서는 강제성을 가진 기구의 필요성도 거론하고 있다. 현재에서는 한국부동산원의 공사비 검증 시스템이나 국토부 건설분쟁조정위원회 등이 발주처와 시공사의 갈등 조율 창구로 활용되고 있지만 강제력은 없다. 결국은 양 측의 합의 외에는 확실한 공사비 분쟁 조정 해법은 없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공사계약은 도급계약서대로 따르는 것이 기본적인 원칙"이라며 "계약 당사자들 간에 이견이 있다면 원활한 합의점을 찾는 것이 최선"이라고 말했다.
이어 "민간 계약을 공공이 강제하거나 개입하기는 어렵다"며 "민간 계약을 공공이 규제했을 때 만약 검증결과가 정확하지 않다면 권한과 의무에 따른 책임소재가 뒤따른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