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세철 삼성물산 건설부문 대표. (사진=삼성물산)
때는 곧, 삼성물산 건설부문이 도시정비시장 복귀와 탈석탄 선언 등 전방위적인 사업 변화를 보였던 2020년. 그해 12월 오세철 부사장은 사장 승진과 함께 대표이사로 내정된다. 오 대표가 연 삼성물산 건설부문의 첫 영업익 1조원 시대는 회사의 격변 속에서 태동했다.
삼성물산 건설부문의 황금기는 건설산업의 난세 속에서 피었다. 오 대표 체제에서 해외 사업은 적극적으로, 주택사업은 수익성 위주로 신중하게 움직인 덕분이다.
임기 첫해부터 급변하는 회사의 경영로드맵을 다듬고 호실적을 이룩한 오 대표다. 삼성물산 건설부문 최고경영자(CEO)로서의 2막을 맞은 그는 신사업과 '넥스트 래미안'의 완성도를 높이는데 집중한다.
■ 동남아부터 중동까지…해외 현장 곳곳 누빈 건설업계 대표 '해외통'
1962년생인 오세철 삼성물산 건설부문 대표이사 사장은 1985년 삼성물산 입사 이후 40년 가까이 삼성물산의 성장을 함께했다.
오세철 대표의 주요 무대는 해외 현장이었다. 1994년 말레이시아 KLCC 현장서 활약하며 92층 초고층 빌딩 조성의 공을 세웠다. 삼성물산 건설부문(이하 삼성물산)의 마천루 건설 기록의 한페이지를 장식한 셈이다. 삼성물산은 이 같은 인연으로 현지서 세계에서 두번째로 높은 건축물인 말레이시아 메르데카118빌딩까지 올해 완공했다.
오 대표는 이후 1998년 싱가포르 JTC 현장을 거쳐 2004년에는 아랍에미레이트연방(UAE) 아부다비 ADIA 프로젝트매니저(PM) 역할을 수행했다.
그는 이어서 2008년에 두바이로 자리를 옮겼다. 두바이 정부 소유 기관 두바이월드트레이더센터가 발주한 전시장 '두바이 익스히비션 월드(Dubai Exhibition World)' PM(상무)로 발령이 나면서다.
오 대표는 글로벌 주요 프로젝트 수행 경험을 바탕으로 2013년에는 삼성물산 글로벌조달센터장(전무)로 승진했다. 이후 2015년에 삼성물산 플랜트사업부장(부사장)에 오른다.
오 대표는 플랜트사업부장으로 활약하며 고군분투했다. 당시 해외 저가수주의 직격탄을 맞았던 건설업계가 전반의 플랜트사업부 축소 움직임을 보였던 탓이다. 삼성물산 해외수주액이 20억 달러 미만으로 떨어졌던 시점도 2017년이다.
덩달아 삼성물산의 외형 성장도 멈췄다. 2017년 연간 매출이 11조9829억원을 기록했으며 이듬해에는 12조1190억원까지 소폭 상승했으나 그다음해에는 11조6523억원으로 쪼그라들었다. 오 대표가 키를 잡기 직전인 2020년에도 11조7019억원으로 전년도와 큰 차이가 없었다. 삼성물산은 승부수가 필요했던 시점이다.
■ 흔들렸던 1년, 위기 속에서도 '정중동'…영업익 1조 시대 밑거름
오세철 대표의 전임 대표 면면은 정통 엔지니어와는 거리가 멀었다. 바로 직전 대표였던 이영호 사장은 삼성미래전략실 경영진단팀 전무였다. 최치훈 사장은 삼성SDI와 삼성카드 등 계열사 대표를 역임했다. 재무통 출신으로 분류되는 인사다.
당시 삼성물산의 인사는 나름 파격이었던 셈이다. 오 대표의 취임 첫해는 만만치 않았다. 부동산 최고 황금기로 건설업계 전반에 성장이 두드러졌으나 삼성물산은 이를 역행했다.
오 대표 체제 첫해였던 2021년 삼성물산은 연간 매출 10조9890억원, 영업이익 2510억원을 기록했다. 전년 대비 각각 6.1%, 52.7% 줄었다.
삼성물산은 오 대표 취임 직전해에 탈석탄을 선언하면서 포트폴리오의 변화를 준비해야 했다. 수익성이 급감한 배경에는 국내 화력발전소 프로젝트 공사비 증가에 따른 일회성 비용 탓이었다.
그러나 오 대표는 움츠려들지 않고 주요 프로젝트 수주를 이어가며 미래 먹거리를 쌓아갔다. 건설업계에 손꼽는 '해외통'인 만큼 부동산 황금기에도 해외 대형 프로젝트를 곳간에 차곡차곡 쌓았다.
사우디아라비아 '네옴시티' 관련 프로젝트 수주와 함께 타나집 IPP 열병합 발전소 프로젝트 등을 품었다. 싱가포르 크로스아일랜드 지하철 공사도 따내는 등 지역을 가리지 않고 수주 낭보를 전했다. 특히 3.5조 규모의 아랍에미레이트연방(UAE) 초고압직류송전공사를 따내는 쾌거를 이뤘다.
덕분에 삼성물산의 해외건설 수주액은 2021년에 69억6850만달러로 전년 대비 52.7% 이상 늘었다.
주택사업에서도 래미안 브랜드를 단장하면서 '넥스트 래미안'의 포석을 깔았다. 이와 함께 재건축 시장과 리모델링 시장에 돌아왔으며 '클린수주' 기조를 유지할 수 있다고 판단된 공공재개발 '흑석2구역' 시공권까지 확보했다. 이를 통해 재건축·재개발 시장에서의 화려한 복귀를 알렸다.
알짜 사업을 품에 안은 삼성물산은 고금리와 고물가 등으로 건설산업 침체가 본격화된 지난해에 역대 최대 실적을 냈다. 그동안 지지부진했던 외형도 크게 성장하고 창사 이래 첫 영업익 1조원 시대를 열었다.
삼성물산의 지난해 연간 매출은 19조3100억원, 영업이익 1조340억원을 기록했다. 매출과 영업이익이 각각 전년 대비 32.3%, 영업이익은 18.2% 늘어난 수치다. 대다수의 건설사들이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와 원자잿값 상승으로 신음하며 진통을 겪거나 스러져간 것과는 대조적이다.
■ 건설부문 대표 2막 맞은 오세철 사장, 신사업·'넥스트 래미안' 완성도 높이기 주력
지난해 역대급 실적에 웃었던 삼성물산이지만 올해 경영환경도 만만치 않다. 건설업 전반의 위기설이 돌고 있는 가운데 경쟁사의 공격적인 수주 전략에 자신의 템포를 잃어서는 안된다.
삼성물산은 올해 초 포스코이앤씨와 부산 재개발 최대어로 꼽히는 '촉진 2-1구역'을 놓고 붙었으나 경쟁사와 공사비 경쟁을 최대한 피했다. 그 결과 수주에는 실패했으나 내부적으로는 "제값의 공사비를 받지 못하면서 수주할 필요는 없다"는 이야기가 오고갔다는 게 업계 관계자의 말이다.
오세철 대표는 지난해 '넥스트 더 래미안'의 기치를 내걸며 회사의 주택사업 핵심역량을 집대성했다. 다만 일련의 움직임을 봤을 때 무리한 확장보다는 완성도 제고에 주력하는 모양새다.
오 대표의 올해 도시정비 수주 주요 목표는 수익성이 좋은 서울 강남권이다. 방배15구역 재건축과 압구정 현대, 용산 등이 대표적이다.
오 대표는 신사업에서도 가시적인 성과를 내는데 집중한다. 지난해 신년사에서도 "신사업 성과를 가시화해 지속성장이 가능한 회사로서의 기본을 다지자"고 다짐했던 오 대표다.
삼성물산은 올해 신사업 수주 목표액으로 2조4000억원을 제시했다. 지난해 신사업 수주 실적이 2000억원이었던 점을 감안하면 적극적인 관련 수주 움직임이 기대된다.
기대되는 분야는 에너지 사업과 스마트 시티다. 올해 초부터 사우디 디지털트윈 구축사업과 관련해 네이버와 협력에 나섰다. 데이터센터와 각종 인프라 사업 건설·운영에 시너지를 낼 것으로 보인다.
원전 관련 사업 영역 확장도 오 대표의 주요 역할이다. 특히 차세대 첨단 원전 기술로 꼽히는 SMR(소형모듈원전) 역량 강화를 위해 글로벌 기업과 적극적인 협업에 나서고 있다.
원전 사업 확장 성과는 곧 가시화 전망이다. 오 대표는 지난해 6월 루마니아 원자력 공사를 비롯해 미국 뉴스케일 파워 등과 루마니아에 SMR 사업을 공동추진하는 협약을 체결했다. 최근 현지 법인 설립까지 마친 것으로 전해졌다.
해당 프로젝트에 대한 오 대표의 기대도 크다. 오 대표는 협약 체결 당시 "루마니아 SMR 사업은 탄소중립 2050 목표 달성과 유럽에서의 에너지 전환을 달성하기 위해 매우 중요한 첫번째 이정표"라며 "이번 프로젝트 참여를 통해 글로벌 SMR 시장 확대를 위한 교두보를 마련했다"고 자평했다.
취임 첫해부터 급변하는 내부 환경에 대응했던 오 대표는 압도적인 현장 경험과 탁월한 수주 전략으로 회사의 성장을 이끌었다. CEO 2막을 맞은 그가 불확실성이 높아진 외부 경영 환경에서 어떤 성과를 낼 수 있을지 관심이 모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