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뷰어스DB
지금의 ‘북 큐레이션’은 책을 추천해주는 것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지만, 넓게는 의도를 가지고 책장을 편집하는 행위도 모두 이 범주에 들어간다. 대형서점에서 총류, 기술과학, 사회과학 등 000에서 990까지 번호를 매긴 십진분류표를 사용한다면, 작은 책방에서는 키워드나 이슈에 따라 책장에 책을 비치하는 경우가 많다.
‘큐레이션 서점’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국내 작은 서점들이 문을 열고 있는데, 사실 이들이 북 큐레이션에 집중하게 된 것에는 현실적인 배경이 있다. 대형 서점에 비해 비치할 수 있는 도서의 수량이 한정돼 적은 서고로 대형서점과 경쟁을 해야 하기 때문에 자신들만의 개성과 전문성을 내세우게 된 것이다.
서울 서교동에 위치한 안도북스 임화경 대표는 건축학을 공부하고 인테리어 디자이너로 활동해 온 경력을 살려 작은 서점에 건축 관련 서적을 비치해두고 있다. 다른 서점들에 비해 희소성 있고, 전문적인 건축 서적이 많다는 것이 이 서점의 특징이다. 임 대표는 “공간은 작지만 그 안에서 분류를 해 놓고 있다. 특히 안도북스의 방향성인 건축이나 디자인, 미술 관련 서적을 따로 분류해 놓고 소스를 많이 드리고 있다”고 설명했다.
서울 해방촌에 위치한 고요서사도 서재의 칸마다 이슈와 테마가 붙여 있다. ‘언젠가 읽어야지 했다면 지금이 바로 그때’라는 칸에는 고전이, ‘지금, 여기를 말하기’에는 한국 소설이 비치되어 있다. 서울 사당역에 위치한 ‘지금의 세상’에서도 ‘행복에 대한 갈망’ ‘미래에 대한 두려움’ ‘지적 호기심’ ‘사랑에 대한 감정’ ‘마음의 편안함’ 등 다섯 가지의 테마를 가지고 책을 소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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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지금의 세상’에는 손님들이 남기고 간 고민들로 가득하다. 포트스잇에 각자의 고민을 적어 붙여 놓는 것인데, 주인장은 이 고민들 중 일부를 취합해 그에 맞는 책을 연결해주는 ‘이번 주 추천 책’을 내놓는다. 이와 함께 주인장의 글귀까지 더해지면서 소비자들과의 직간접적인 소통을 하고 있다.
작은 책방의 주인장들은 전문성과 함께 ‘인간적인 교류’도 필수 요소라고 입을 모았다. ‘지금 세상’에서 하고 있는 ‘이번 주 추천 책’도 같은 맥락이다. 인간적 교류를 위한 시도에는 다른 방법도 있다. 바로 작과와 독자의 만남, 책을 읽고 함께 이야기하는 독서토론, 식음료를 곁들여 책을 조금 더 친근하게 접할 수 있도록 하는 방법들이 있다.
대표적으로 서울 상수역 인근에 위치한 ‘가가77페이지’(gaga77page)를 들 수 있다. 가가77페이지는 식음료를 함께 즐길 수 있는 서점이다. 특히 서점으로서의 기능을 하면서 때로는 공연장, 또 전시장으로 탈바꿈한다.
주인장인 이상명 대표는 “다음 달까지도 계속 스케줄이 잡혀 있다. 제안이 들어오는 경우도 있고, 우리가 보고 싶어서 요청하는 경우도 있다. 기회를 제공하고, 장소를 제공하면서 시너지가 발생할 수 있도록 하는 셈이다. 시장 자체가 크지 않아서 이를 활성화시키기 위한 목표”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