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진행 전 현대건설 부회장이 대우건설에 합류한다. (사진=현대건설)
최근 대우건설이 건설업계 올드보이(OB)를 영입했습니다. 바로 정진행 전 현대건설 부회장입니다. 1979년 현대건설에 입사하면서 건설업계 몸 담은 정진행 전 부회장은 이후로 현대자동차 중남미지역본부장과 기아자동차 아시아·태평양지역 본부장 등으로 활약했습니다.
풍부한 글로벌 네트워크를 보유한 정 전 부회장을 영입한 대우건설의 의도는 명확합니다. 중흥그룹이 대우건설을 인수에 이어 정원주 중흥그룹 부회장의 대우건설 회장 부임 이후로 내걸었던 '세계경영'을 완성하기 위해서입니다.
세계경영은 단순히 대우그룹의 유산을 넘어 부동산 침체기를 극복할 생존 전략이 됐습니다. 정원주 회장의 올해 신년사도 "해외사업에 답이 있다"로 압축됩니다. 그는 지난 1월 시무식에서 "단순 시공만으로는 이윤확보와 성장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어 해외시장에서도 시행과 시공을 병행하는 디벨로퍼로 성과를 거둬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정 회장의 해외사업 확대 의지는 단순히 말에만 그치지 않았습니다. '1호 영업사원'을 자처하면서 전통적인 해외 수주 텃밭으로 꼽히는 중동은 물론이고 대우건설과 오랜 인연인 베트남의 신도시 개발사업을 중심으로 한 동남아시아 시장 확대, 중앙아시아와 북미 진출 타진 등 말그대로 광폭행보를 보였습니다. 실제로 지난해 정 회장은 10여개의 국가를 방문하면서 현지 네트워크 구축에 힘썼고 올해도 투르크메니스탄 신도시사절단 면담, 베트남 총리 예방 등을 이어갔습니다.
대우건설의 이번 정진행 전 현대건설 부회장의 영입도 같은 맥락으로 읽힙니다. 정 전 부회장이 보유한 글로벌 네트워크를 최대한 활용해 해외 사업 개척에 집중하겠다는 의지입니다.
한 건설업계 관계자는 대우건설의 일련의 행보를 놓고 "대우건설이 중흥그룹에 인수된 이후 주택사업에 더욱 집중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있던 게 사실"이라면서 "그러나 최근의 인사들을 쭉 둘러보면 해외사업에 역점을 두는 게 명확하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정원주 대우건설 회장(가운데 오른쪽)과 백정완 대우건설 대표(가운데 왼쪽)이 올해 초 시무식에서 함께 참석한 모습. (사진=대우건설)
■ 고래를 삼킨 새우?…포식 아닌 동행으로
사실 중흥그룹이 대우건설을 인수했을 때 나온 말은 "새우가 고래를 삼켰다"입니다. 혹은 '다윗과 골리앗'의 결합으로 표현되는 등 양 측은 규모면에서 차이가 컸습니다.
중흥그룹이 2021년 대우건설의 인수우선협상자로 선정됐을 당시 중흥그룹이 보유한 중흥토건과 중흥건설은 각각 시공능력평가 17위, 40위였습니다. 반면 대우건설은 5위로 꽤나 큰 격차가 있었으니 어찌보면 당연한 평가였습니다.
중흥그룹의 대우건설 인수 자금 계획을 놓고 안팎에서도 의문이 있었습니다. 주택과 분양을 통해 주로 매출을 올리는 건설사들로 이뤄진 중흥그룹이 원전 분야 설계·시공·해체 등 토털 솔루션을 비롯해 국내외에서 대규모 플랜트 사업 등을 수행하는 대우건설을 제대로 운영할 수 있겠냐는 우려 섞인 시선도 적지 않았고요.
인수 과정에서 노조와 원활한 협상을 이끈 백정완 대우건설 대표이사의 존재도 주택사업에 무게가 쏠리지 않겠냐는 전망에 힘을 실었습니다. 백 대표는 대우건설에서만 40년 가까이 활동하면서 업계에 잔뼈가 굵은 인물이지만 '주택통'으로 분류되는 인사입니다. 대우건설의 주택사업본부장을 역임하며 사실상 중흥그룹과 시너지를 크게 기대할 것이 없다는 말이었죠.
그러나 중흥그룹은 대우건설 인수 이전부터 꾸준히 해외사업 확장의 의지를 다졌습니다. 지난 2022년 2월 정창선 중흥그룹 회장은 "대우건설이 가진 역량을 결집하고 조직을 안정시켜 세계경영을 꿈꾸던 대우의 옛 영광을 재현하겠다"고 강조했습니다.
이후의 행보는 앞서 밝힌 대로입니다. 국내 부동산의 위기가 도래하기 이전부터 해외건설 확장의 목표를 드러냈습니다. 정창선 중흥그룹 회장의 호언을 이어받은 정원주 회장은 지난 2022년 신설한 해외사업단 초대 단장 한승 상무를 지난해에 전무로 승진하고 함께 해외 곳곳을 누비고 있습니다. 백정완 대표 역시 정 회장과 함께 주요 해외 현장에 동행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 성과는 어떨까요. 해외건설통합정보서비스에 따르면 대우건설이 중흥그룹에 인수되기 직전 해였던 수주액은 6억3542만 달러에 그쳤습니다. 대우건설의 10억 달러 이하 수주는 2016년(7억8403만 달러) 이후 처음이었습니다. 순위도 10위권 밖으로 밀렸습니다. 그러나 이후 2022년과 2023년에 각각 수주액이 11억1423만 달러, 16억8566만 달러로 8위와 6위에 이름을 올렸습니다.
그동안 수주의 점진적인 반등은 있었으나 올해 해외수주액은 아직까지 다소 빈약한 게 사실입니다. 이달까지 대우건설의 해외 수주액은 6370만달러에 그치고 있습니다. 공을 들인 투르크메니스탄 비료 공장 수주도 늦어지고 있고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된 체코 원전 수주는 아직 정식 계약이 체결되지 않았습니다. 시장에서는 꾸준히 중동 지역에서의 추가적인 수주 파이프라인에 대한 기대감이 나옵니다.
송유림 한화투자증권 연구원은 지난 12일 보고서를 통해 "대우건설은 하반기 중에 대규모 수의계약 프로젝트인 투르크메니스탄 비료 공장과 리비아 인프라 재건, 이라크 알포항 해군기지 등의 수주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고 분석했습니다.
지난 2022년 정원주 현 대우건설 회장이 중흥그룹 부회장 시절에 백정완 대우건설 대표와 함께 나이지리아 무함마두 부아리 대통령을 소공동 롯데호텔 서울에서 예방했다. 앞줄 왼쪽부터 백정완 대우건설 사장, 알리 모하메드 마가시 주한나이지리아 대사, 무함마두 부하리 나이지리아 대통령, 정원주 부회장, 티미프레 실바 석유자원부 장관. (사진=대우건설)
■ 임기 마치는 백정완 대표, 정원주 회장과 동행 지속 여부 촉각
대우그룹의 세계경영 유산은 과연 중흥그룹과 대우건설의 동행으로 다시 빛을 볼 수 있을까요.
백정완 대표는 올해 신년사를 통해 "미래를 예측하기 위해 가장 좋은 방법은 미래를 만들어나가는 것"이라고 강조한 바 있습니다. 본격적으로 다시 조명되고 있는 대우그룹의 유산이 모든 것이 불확실한 '무노멀' 시대에서 앞길을 밝힐 수 있을지는 아직 모릅니다. 매출 인식 시점과 수주 인식 시점의 차이가 상당한 건설업계이니 만큼 대우건설과 중흥그룹의 시너지 효과를 3년 만에 판가름 내기도 어렵지만 한 가지 분명한 건 있습니다. 정원주 회장과 백정완 대우건설 대표의 동행이 그동안 큰 잡음없이 이어졌다는 겁니다.
정진행 전 현대건설 부회장의 영입으로 경영체제가 달라질 수도 있다는 예상이 있었지만 올해는 변화없이 마무리할 것으로 보입니다. 백 대표는 내년 2월에 임기를 마칩니다. 백 대표가 재신임을 받을 가능성도 물론 있습니다. 다만 중흥그룹이 인수 당시 '독립경영' 보장으로 약속한 3년의 대표이사 내부출신 고용보장 기한도 끝납니다.
중흥그룹의 대우건설 인수 후 첫 동행에 나섰던 중흥그룹 출신 정원주 회장과 '37년 대우맨' 백정완 대표 체제는 어떻게 마무리 될까요. 이들이 다시 대우그룹의 '세계경영' 밑그림을 완성해 가는 시점. 두 사람의 미래가 더욱 궁금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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