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급 축소와 정책 규제, 안전 문제 해결이 시급한 올해 한국 건설업계 현장. 그 현장에 '모듈러 건축'이 새로운 해법으로 제시되고 있다. 정비사업이 주를 이루는 국내 건설 공급에서도 '대수선 리모델링' 등 틈새 시장을 노린 전략이 등장했다. 건설업계의 새로운 판을 살펴본다. - 편집자주

GS건설이 시공하고 LH가 발주한 '강화신문2단지 행복주택'을 모듈러 공법으로 준공한 모습. (사진=GS건설 유튜브 채널)

국내 건설산업이 '모듈러 건축'을 차세대 성장축으로 주목하고 있다. 최근 국토교통부는 9·7 주택공급 확대방안을 내놓으면서 '모듈러 주택'을 대규모로 확산하겠다고 밝히기도 하면서 건설업계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내년 상반기에는 설계·시공 가이드라인과 특별법을 마련하고 하반기부터는 3000가구 규모 시범사업도 진행될 전망이다.

정부의 이러한 정책에 따라 한국토지주택공사(LH)는 총 12개 지구에서 2261가구 규모 모듈러 주택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신축 매입임대 14만 가구, 공공지원 민간임대 2만1000가구 공급에도 모듈러 방식을 우선 적용한다는 방침이다. 공공 입찰 시 모듈러 건설사에 가산점을 주는 방안도 검토되는 등 제도적 지원도 강화될 전망이다.

전문가들은 모듈러를 통해 '공사기간 단축'과 '산업재해 감축', 탄소·폐기물 배출 절감', '품질 균일화' 등 그간 건설업계에서 문제점으로 지적된 여러 사항들에 대해 개선 효과를 기대하고 있다. 정부가 추진하는 '규제 완화, 표준화, 인센티브' 정책 패키지가 관련 산업 확산을 앞당길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 안전·품질·속도 3박자에 혁신 경쟁…GS·DL·롯데·현대건설 등 모듈러 공략

모듈러 건축에서 가장 두각을 나타내는 건설사는 GS건설이다. 자회사 자이가이스트를 통해 세계 최초 18층 철골 모듈러 공동주택을 상용화하며 기술력을 입증했다. 시흥·천안 현장에서 내진·내화 성능을 확보했고, 데이터 통합 플랫폼을 통한 품질 관리로 하자율을 크게 줄이는 성과도 거뒀다.

현장에서는 "동별 하루 한 층 시공이 가능하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건설 현장에서 안전과 속도를 동시에 확보하기 어렵다는 점을 감안하면, 모듈러의 장점을 실질적으로 증명해낸 셈이다.

이 기술력은 해외에서도 주목을 받았다. 지난 5월 국토교통부와 해외건설협회가 주관한 국제 교육 프로그램에서 동남아시아·아프리카 15개국 출신 공무원 22명이 충남 당진의 자이가이스트 생산시설을 직접 찾을 정도로 관심이 이어졌다.

성과는 수치로도 확인된다. GS건설의 모듈러 부문 매출은 올해 149억 원으로 전년(14억원) 대비 10배 성장했다. 공공임대·복합개발 등 대규모 수주를 따내며 국내외 시장 확장에도 속도를 내고 있다. 증권가에서는 "2030년 글로벌 고층 모듈러 성장의 최대 수혜주는 GS건설"이라는 기대가 나온다.

지난 5월16일 충남 당진 GS건설 자이가이스트 공장에 방문한 15개국 22명 연수생들이 모듈러 생산 현장을 견학하고 있다. (사진=GS건설)

DL이앤씨도 모듈러 분야 공략에 나서고 있다. 이 회사는 최근 국내 최초로 전남 구례군에 모듈러 단독주택 타운을 조성하기도 했다. 기둥과 보를 용접 대신 볼트와 너트로 연결하는 '무용접 모듈러 커넥터'를 적용해 조립 시간을 8시간에서 3시간30분으로 획기적으로 단축했다. 생산성과 품질을 동시에 높였다는 평가를 받는다.

특히 세계 유일 기술인 'PC 패스트 코어'를 개발해 아파트 엘리베이터 코어를 공장에서 제작해 기존 4일 걸리던 타설 공정을 하루 만에 끝낼 수 있도록 했다. 현재 약 40여건의 특허를 보유 중이다. 제물포역 5498억원 규모 도시복합개발 등 사업 현장에도 확대하고 있다.

DL이앤씨 관계자는 "모듈러는 단독주택을 넘어 고층 아파트와 초고층 건물까지 확장할 수 있는 차세대 해법"이라며 "기술 내실과 원가 경쟁력을 동시에 확보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고 밝혔다.

DL이앤씨가 전남 구례군 산동면에 준공한 '모듈러 단독주택 타운형 단지' 모습. (사진=DL이앤씨)

롯데건설도 최근 모듈러 관련 기술을 선보였다. 이 회사는 PC모듈러와 스마트팩토리 시스템을 결합해 공기와 품질 모두에서 성과를 냈다. 울산·부산·서울 주요 현장에서 사물인터넷(IoT) 기반 QR공정 자동화와 산업재해 저감 시스템을 도입해 공사 기간을 30~40% 단축했고, 분양 대기 기간도 32% 줄였다.

롯데건설은 최근 2년간 14건 이상의 특허를 확보했고 현장 적용률은 46%로 업계 최상위 수준이다. 다만 대규모 수주 규모에서는 GS건설과 DL이앤씨에 비해 다소 뒤처진다는 평가다. 증권가는 "품질 혁신을 통한 장기 안정 성장과 스마트팩토리 기반의 원가 경쟁력이 강점"이라고 분석했다.

■ 현대건설·삼성물산, 그룹 IT 미래 전략과 연계

현대건설은 친환경 '목조 모듈러(OSC, Off-Site Construction)'와 스마트 커뮤니티 중심 전략을 내세운다. OSC 전문기업 '공간제작소'와 협업하고 현대차그룹의 인공지능(AI)·로봇 기반 스마트팩토리와 연계해 부속시설 중심 모듈러를 개발 중이다.

실제로 힐스테이트 용인마크밸리 단지에서는 '자전거보관소'나 '키즈스테이션'을 모듈러로 시공해 선보였다. 향후 어린이집과 경로당으로 확대할 계획이다. 대규모 아파트 코어 등 수익 규모에선 선두권에 못 미치지만 장기적으로 '커뮤니티 중심 모듈러'라는 차별 전략을 구축하고 있다.

삼성물산의 세대 내부에 기둥을 없앤 신개념 평면 '넥스트 라멘' 구조를 적용해 확장한 통합형 거실 구조. 사전 제작한 모듈을 서랍처럼 채워 넣는 '넥스트 인필' 시스템을 적용했다. (사진=삼성물산)

전자업계도 뛰어들었다. 삼성물산과 삼성전자는 최근 '넥스트 홈'을 통해 라멘 구조와 인필 시스템을 공개했다. 가구·벽체를 모듈화해 생활양식에 따라 공간을 이리저리 배치해 바꿀 수 있다는 점이 특징이다. 욕실 모듈은 OSC 방식으로 품질 편차를 없앴다. 삼성전자는 IFA 2025 등에서 '스마트 모듈러홈'을 선보이며 글로벌 시장 공략에 나섰다.

■ 중견·중소 기업도 메리트…"시간 단축, 안전성에 진출"

KBI건설, 고덕건설, 우방 등 중견사는 LH·지자체 협업을 통해 지역 맞춤형 임대주택·학교·공공시설 공급을 확대하고 있다. 전국 브랜드 파워는 약하지만, B2G·공공시장 틈새를 공략하며 안정적 매출 기반을 다지는 모습이다.

KBI건설 관계자는 "모듈러 건축은 표준화된 벽·천장·바닥 등을 공장에서 제작해 전체 시공 과정의 약 80%를 공장 안에서 처리하는 방식"이라며 "현장 공사에 투입되는 시간이 크게 단축되고, 안전성과 비용 절감은 물론 현장 폐기물과 소음도 줄일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친환경적 특성으로 최근 1~2인 가구 주택과 임대주택, 기숙사, 재난 임시주택 등 다양한 분야에 활용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고 덧붙였다. KBI건설은 최근 대우산업개발, 코스모이앤씨, 유창이앤씨와 모듈러를 접목한 신사업 발굴에 손을 잡았다.

■ "2030년 국내 2조원 규모 , 글로벌 150조 규모 성장 기대"

국내외 모듈러 건축 시장이 확대되고 있다. 공장 제작을 통한 시공 효율성과 안전성, 그리고 친환경적 장점이 부각되면서 대형 건설사뿐 아니라 중견·중소 건설사까지 시장 진입을 서두르고 있어서다.

한국철강협회와 대한건설정책연구원 등에 따르면, 국내 모듈러 건축 시장은 지난 2023년 8000억원대 규모를 넘어섰다. 불과 5년 전만 해도 수백억원 수준에 불과했던 시장이 단기간에 수십배 성장한 것. 전문가들은 공공임대주택, 기숙사, 재난 임시주택 등 공공 수요 확대와 함께 민간 주택·복합개발 사업에 모듈러 적용이 늘어나면서 2030년까지 약 2조원 규모로 커질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해외 시장 전망은 더 낙관적이다. 글로벌 시장조사기관 포춘 비즈니스 인사이츠는 전 세계 모듈러 건축 시장이 올해 948억 달러(한화 약 95조원) 규모에 이를 것으로 추정했다. 오는 2032년에는 1515억 달러(한화 약 152조원) 수준까지 성장할 것으로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