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2월 12일 서울 종로1가 SK앞에서 가습기살균제 피해자, 환경보건시민센터 회원들이 모여 가습기살균제 참사의 SK책임을 묻고, 새로운 정부가 가습기살균제 참사문제를 제대로 해결할 것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사진=환경보건시민센터)
작년 11월 말 기준 정부가 인정한 피해자만 5810명에 달하는 가습기살균제 참사 사건 지난 2011년 시작됐다. 문제가 공론화된 지 벌써 15년이 다 돼 가지만 아직까지도 온전히 책임을 묻지 못하고 있고, 가족을 떠나보낸 이들은 그들을 가슴 속에 묻지도 못하고 있다. 가습기살균제 참사 책임 소명과 재발 방지를 위해 소홀히 했던 것들에 대해 따져본다. /편집자주
모든 화학물질은 독성을 남긴다. 이 때문에 인체에 무해한 화학제품은 없다. 그럼에도 화학물질이 사용되는 이유는 효능과 용법‧용량을 지켜 사용하면 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최근 대법원은 전 SK케미칼 대표와 전 애경 대표의 유죄를 인정한 원심 판결을 파기했다. 애초에 ‘용법’을 지키지 않은 사건을 다시 ‘성분’으로 나누어 유무죄를 판결해 처벌 범위를 축소한 것이 아니냐는 비판이 나온다.
최근 대법원은 업무상 과실치사 등 혐의로 기소된 홍지호 전 SK케미칼 대표와 안용찬 전 애경산업 대표에게 각각 금고 4년을 선고한 원심 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대법원은 가습기살균제 ‘원료’에 주목했다. 이번 사건 피해자들이 사용한 가습기살균제 주원료는 클로로메틸이소티아졸리논(CMIT)·메틸이소티아졸리논(MIT)이다. PHMG는 폐질환과의 인과성이 인정된 상태지만, CMIT·MIT는 현재 폐질환 인과성 여부를 두고 재판이 진행 중이다.
옥시 가습기살균제 주된 성분은 PHMG(폴리헥사메틸렌 구아니딘)인 반면 애경산업과 이마트는 CMIT·MIT를 사용했다. SK케미칼은 PHMG, CMIT·MIT을 만들어 각 사에 원료 물질을 공급했다.
PHMG는 공업용 살균제이고, CMIT·MIT는 농약으로 개발된 살균제다. PHMG는 광범위 살균제로 곰팡이, 효모, 그람양성균, 메치실린 내성 황색 포도상구균에 까지 영향을 미친다. 다른 살균제에 비해 피부 접촉시 독성이 적고 살균력이 뛰어난 것이 특징으로 1996년 SK케미칼이 ‘카페트 항균용’으로 수입을 승인받았다.
CMIT·MIT는 박테리아의 번식을 막아 제품의 변패를 방지하고 유통기한을 늘려주는 역할을 한다. 1960년대 말 미국 롬앤드하스(R&H)사가 개발한 화학물질로 미생물이나 세균이 번식하는 것을 막거나 세균을 죽이는 데 효과가 있다. 미국‧유럽에서는 샴푸‧세제 등 생활용품에 낮은 농도로 사용된다.
두 원료를 포함한 제품을 소량 물에 희석해 가습기 통을 닦고 말끔히 헹궈냈다면 살균제로써의 기능을 효과적으로 했을 가능성이 높다. 살균제를 흡입 용법으로 사용한 가습기살균제 사건은 결국 참사가 됐다. 법원은 정해진 용도 외로 사용한 불법성 대신 성분을 구별해 처벌 범위를 축소한 판결로 해당 기업들에게 면죄를 준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