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화학의 초고중합도 PVC가 적용된 이엘일렉트릭의 전기차 급·고속 충전용 케이블 (사진=LG화학)

■ 석유화학 적자, 그룹 전체 리스크로 확산

LG화학이 석유화학 사업 포트폴리오를 전면 재편하고 있다. 범용 제품 중심의 구조에서 벗어나 전지소재·친환경 플라스틱·바이오 원료 등 스페셜티(고부가) 중심으로 체질을 바꾸는 중이다. 탈탄소 규제 강화와 중국발 공급과잉에 대응하기 위한 전략이자, 투자 기준이 바뀌는 시장 환경에 맞춘 구조적 전환이다.

LG화학은 올해 1분기 영업이익 4470억원을 기록했지만, 석유화학부문에서는 565억원의 손실을 냈다. 주력 사업으로 키워온 전지·소재·바이오 등에서 성과를 내고 있음에도, 석유화학 부문이 발목을 잡고 있는 모양새다.

더 큰 문제는 이 부진이 그룹 차원의 리스크로 번지고 있다는 점이다. LG화학은 LG그룹 내 핵심 캐시카우이자 투자지주 성격의 회사로, 실적과 유동성 모두가 그룹 전략에 직결된다. 신학철 부회장은 비주력 자산 매각과 공장 부지 재편 등 체질 개선에 나섰으며 여수 사택 일부 매각까지 검토하고 있다.

■ LG화학의 반격…고부가·친환경으로 전환

국내 석유화학 기업들이 흔들리는 가장 큰 배경은 중국이다. 올해 전 세계 에틸렌 증설량은 936만5000톤으로 전년 대비 약 3배 급증했으며, 폴리에틸렌(PE)도 512만2000톤(43%↑)이 새로 공급된다. 이 가운데 중국이 각각 67%, 57%를 차지한다.

여기에 글로벌 ESG 기준은 석유화학 산업의 존립 기반 자체를 흔들고 있다. 탄소 다배출 업종인 석유화학은 녹색분류체계(K-Taxonomy)에서 배제됐고, 산업용 전기요금 인상까지 겹치면서 NCC(나프타분해설비) 수익성은 빠르게 악화되고 있다. 탈탄소 시대, 석유화학은 규제와 비용의 ‘패널티 산업’이 된 셈이다.

LG화학은 불황의 돌파구로 스페셜티 전환을 본격화하고 있다. 여수공장 일부 라인을 초고중합도 PVC 생산라인으로 전환하고, 내열성과 난연성이 뛰어난 소재로 전기차 충전 케이블 시장을 공략하고 있다. 해당 소재는 삼성F.C의 컴파운딩을 거쳐, 전기차 충전기 전문기업 이엘일렉트릭의 고속충전 케이블에 적용된다.

조직 개편도 병행했다. 기존 제품개발팀 외에 고부가용도개발팀과 고부가시장개척팀을 별도로 구성해, 전기차 충전 케이블, 인조가죽, 자동차용 전선 등 실제 활용 시장을 적극적으로 발굴하고 있다.

LG화학 대산공장 메탄건식개질(DRM) 공장 전경 (사진=LG화학)

■ 불황에도 멈추지 않는 ‘친환경 투자’

LG화학은 침체된 업황에도 불구하고 친환경 전환에 대한 투자를 이어가고 있다. 충남 당진 석문산단에 조성 중인 열분해유 및 생분해성 바이오플라스틱 공장이 6월 중 완공될 예정이다. 다수 기업들이 열분해유 사업을 연기하거나 축소하는 와중에도 LG화학은 전환 의지를 굽히지 않았다.

넷제로 기술 개발에도 속도를 내고 있다. LG화학은 포스코홀딩스와 손잡고 메탄건식개질(DRM) 기술 실증사업을 추진 중이다. 이 기술은 이산화탄소와 메탄을 반응시켜 일산화탄소와 수소를 생산하는 방식으로, 철강 공정에서 석탄을 대체할 수 있다. 탄소 배출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을 뿐 아니라 생산된 가스는 플라스틱 등 화학 원료나 친환경 연료로도 활용 가능하다. 이 사업은 과기정통부의 ‘CCU 메가프로젝트’의 일환으로 2026년 포스코 포항제철소에 실증 설비가 들어설 예정이며 2030년 상용화가 목표다.

■ “위기는 기회”…전환이 곧 생존

국제 신용평가사들조차 석유화학 업황의 장기 불황을 경고하고 있는 가운데, LG화학의 선택은 분명하다. 단기 실적 방어가 아니라, 포트폴리오의 본질적 전환. 전지소재·친환경 기술·소재 혁신을 잇는 밸류체인을 중심축으로 삼아 석유화학 중심 기업에서 미래 지향적 소재기업으로 재편되고 있다. 국내 석유화학업계는 지금 깊은 터널 속에 있다. ‘EXIT 석유화학’은 이제 회피가 아니라 생존을 위한 결단의 키워드가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