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에너지솔루션의 '인터배터리 2025' 부스 전경. (사진=LG에너지솔루션)
국내 배터리 3사가 전기차 시장의 성장 둔화와 중국 배터리 기업과의 경쟁 심화에 대응하기 위해 에너지저장장치(ESS) 시장에 본격적으로 진출하고 있다. 그동안 시장에서 홀대받던 LFP(리튬인산철) 배터리가 대세로 떠오르면서, 차별화된 기술력을 무기로 ESS 시장에서 경쟁력을 확보하려는 모양새다.
지난 7일 이정두 한국산업기술기획평가원 PD는 '고성능 LFP 배터리 기술 개발 현황과 시장 확보 전략 세미나'에서 국내 LFP 배터리의 약점으로 가격 경쟁력을 꼽았다.
그는 "대부분의 소비자들이 가장 구매를 주저하는 부분이 가격인데 전기차 가격 40%를 배터리가 차지하는 만큼 판매가를 낮추려면 배터리 가격을 내리는 것이 중요해졌다"고 말했다.
그러나 인산철의 최대 생산국인 중국에서 중국 기업들이 원재료를 저렴하게 공급받고 있는 만큼, 단순 원가 절감 노력만으론 이들 업체와의 경쟁에서 우위를 점하기 어렵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에 국내 배터리 기업들은 ESS(에너지저장장치) 등 기술 우위를 통한 경쟁력 확보에 주력하고 있다. 전기차 수요 성장 정체(캐즘)가 지속되자, ESS 사업 제품 개발 및 생산 라인 확장 등에 나서며 새 돌파구를 모색 중인 것. ESS는 생산된 전기에너지를 저장해 전력이 필요한 시기에 사용할 수 있게 하는 에너지 솔루션으로, 저렴하면서도 높은 안정성·긴 수명을 지닌 LFP 배터리가 활용된다.
이 같은 흐름은 최근 열린 이차전지산업 전시회 '인터배터리 2025'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LG에너지솔루션, 삼성SDI, SK온 등 국내 주요 배터리 기업들은 ESS(에너지저장장치) 시장 공략을 위한 전략과 신제품을 대거 공개하며 주도권 확보에 나섰다.
LG에너지솔루션은 ESS를 활용한 가상발전소(VPP) 사업을 확장할 계획이다. VPP는 정보통신기술(ICT)을 활용한 통합 제어 운영 시스템으로, 태양광, 풍력과 같은 재생에너지는 발전량이 일정하지 않아 전력 수급이 원활하지 않지만 VPP를 활용하면 전력망의 안정성을 유지할 수 있다.
LG에너지솔루션은 현재 제주에서 85MWh 규모의 ESS를 운영하며 총 34개 발전소를 통합 운영하고 있다. 올해는 제주도에도 25MWh 규모의 ESS를 2기를 추가로 구축할 예정이다.
이와 함께 LG에너지솔루션은 올해 하반기부터 미국 현지 ESS용 리튬인산철(LFP) 배터리 생산 라인을 본격 가동, 빠르게 성장 중인 북미 ESS 시장 수요에 대응한다는 방침이다.
황원필 LG에너지솔루션 EaaS담당은 "최근 전력시장 제도 개편으로 국내에서도 VPP 사업이 본격화되고 있으며, 해외에서는 이미 많은 기업이 시장에 진출하고 있다"며 "제주 시범사업을 통해 검증된 기술을 바탕으로 내륙 시장에도 적극적으로 진출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인터배터리 2025' 삼성SDI 부스에서 모델들이 각형 배터리를 소개하고 있는 모습. (사진=삼성SDI)
삼성SDI는 고용량, 고안정성 ESS 솔루션을 중심으로 사업을 전개할 계획이다.
삼성SDI는 이번 '인터배터리 2025'에서 차세대 SBB(삼성배터리박스) 1.5를 선보였다. SBB 1.5는 규격화된 20피트 컨테이너를 이용해 안전, 공조 장치를 통합한 완제품으로, 이를 전력망에 연결하면 곧바로 ESS로 사용이 가능하다. 운송과 설치가 편리한 것도 장점이다.
삼성SDI에 따르면 SBB 1.5는 내부 공간 최적화 설계를 통해 기존 SBB 1.0 대비 용량을 37% 향상했으며, 3세대 모듈 내장형 직분사(EDI) 소화 시스템을 적용해 안전성을 높였다. 해당 제품은 성능 개선을 인정받아 올 초 'CES 2025'에서도 혁신상을 수상했다.
각형 배터리 기술력을 활용한 제조 공정에서의 에너지 효율과 비용 절감에도 집중한다. 곽현영 삼성SDI 자동차배터리 마케팅 팀장은 "이번 '인터배터리 2025'에서 선보인 배터리는 크기와 높이를 마음대로 조절할 수 있어 에너지 밀도를 최적화할 수 있다"고 말했다.
특히 열 폭주 현상이 발생했을 때 가스나 뜨거운 열이 다른 셀로 확산되지 않도록 배출 경로를 설계한 것은 물론, 중간에 특수 시트를 적용하는 등 열 확산을 방지하는 신기술로 배터리의 안정성을 높였다는 설명이다.
'인터배터리 2025' SK온 부스 전경. (사진=SK온)
후발 주자인 SK온도 미래 신사업으로 ESS 분야를 주목하고 있다. SK온은 지난해 조직 개편을 통해 최고경영자(CEO) 직속으로 ESS 사업을 독립 편제했다.
또 지난해 9월 미국 미국 IHI 테라썬과 북미 ESS 사업 협력 강화를 위한 업무협약(MOU)을 체결했다. SK온이 ESS용 배터리를 공급하면 IHI 테라썬이 시스템 통합(SI)을 맡아 변압기와 소프트웨어 등을 더해 완제품을 만들고, 북미 시장에 판매하는 방식이다.
이에 더해 SK온은 배터리 전 사업 영역에 AI(인공지능)를 더해 기술 혁신을 이뤄낸다는 방침이다. 김상진 SK온 N/F제품개발실장(부사장)은 "최근 대두되는 AI 기술을 활용하면 보다 효율적으로 고품질의 제품을 만들 수 있을 것"이라며 "신소재 탐색, 성능 예측, 공정 최적화 등 다양한 영역에 AI 기술을 접목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현재 SK온은 연구개발(R&D) 과정에서 일반적인 프로세스는 물론, 고객 요청, 셀 디자인, 비용 분석, 생산, 검증 등 과정에서 설계 AI 모델 '아담(ADAM)'을 활용하고 있다. SK온은 향후 생성형 AI 플랫폼을 구축하고, 각 분야별로 언제든 활용할 수 있는 기초 AI 모델을 만들 계획이다.
김 부사장은 "현재는 데이터를 수집, 준비하는 단계"라며 "오는 2028년에는 SK온만의 배터리 AI 파운데이션 모델을 구축해 시장 경쟁력을 확보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