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명 LG에너지솔루션 CEO. (사진=LG에너지솔루션)

글로벌 전기차 시장의 성장 둔화와 경쟁 심화로 인해 위기에 빠진 국내 배터리 3사(LG에너지솔루션, 삼성SDI, SK온)가 새로운 돌파구를 찾기 위해 다양한 전략을 마련하고 있다. 정부 역시 지원책을 마련하며 업계와 협력에 나설 계획이다.

국내 배터리 3사는 전기차 캐즘(일시적 수요 정체)에 이어 미국 신정부의 전기차에 대한 부정적 기조, 중국 배터리 기업의 고성장 등으로 난항을 겪고 있다.

현재 국내 배터리 기업들은 고객사로부터 수령한 보상금과 정부 보조금으로 캐즘 극복 전까지 '버티기'에 돌입한 상태다. 대표적으로 LG에너지솔루션의 감사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수령한 고객사 보상금은 1조3657원에 달한다. 이는 지난해 영업이익(5754억원)의 두배를 상회한다.

고객사 보상금은 배터리 기업들이 완성차 업체로부터 최소 주문 물량 미달분에 대한 금액을 되돌려받는 것을 뜻한다. 삼성SDI와 SK온 역시 정확한 수치를 공개하지 않았지만 수천억원에 달하는 보상금을 수령했을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에서는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에 따른 세액공제를 받고 있다. 북미 지역에서 생산하는 배터리 1kWh 당 35달러, 모듈의 경우 10달러의 세액공제를 지급받는 구조로, 현지에 생산 공장을 둔 국내 배터리 기업들도 세액공제의 대상이다. 지난해 배터리 3사가 수령한 세액공제는 1조8622억원에 달한다.

당장의 보상금·보조금으로 사업을 유지해나갈 수는 있지만, 전망은 밝지 않다. 그만큼 캐즘의 영향이 크다는 방증일 뿐더러, 유럽 시장의 경우 전기차 시장이 되려 후퇴하며 성장에 제동이 걸렸기 때문이다. 여기에 트럼프 대통령이 IRA의 축소·폐지 가능성을 시사한 만큼 대외적 불안요소도 산적해 있다.

최주선 삼성 SDI 사장. (사진=삼성SDI)

■ 배터리 3사 CEO "기술력, 사업 다각화로 캐즘 극복"

이에 각 사 CEO들은 대책을 마련하기 위해 분주히 움직이고 있다. 이들은 차세대 배터리 개발과 사업 다각화를 해결책으로 제시했다. 원통형 배터리를 비롯해 에너지저장장치(ESS) 사업을 확대하며 새 시장을 개척한다는 구상이다.

김동명 LG에너지솔루션 최고경영자(CEO) 사장은 최근 열린 정기 주주총회에서 "2028년에는 2023년 실적과 비교해 약 2배의 매출을 이뤄내고, 미국 인플레이션감축법(IRA) 보조금 제외 상각 전 영업이익(EBITDA) 마진율을 10% 중반까지 개선해가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이를 위해 비전기차 사업을 늘려 균형 있는 포트폴리오를 구축한다. 전기차 사업의 의존도를 줄이면서 ESS(에너지저장장치) 사업의 비중을 확대하고, 도심항공교통(UAM), 선박, 로봇 등 성장 잠재력이 높은 사업에도 역량을 투입할 방침이다.

기존 배터리 분야의 기술력도 강화한다. 46시리즈, 고전압 미드니켈, LFP, 각형 배터리 등을 중심으로 수주를 늘려나간다.

김 CEO는 "현재의 시기를 제품 및 품질 경쟁력 강화, 구조적 원가 경쟁력 확보, 미래 기술 준비 등 근본적 경쟁력을 높이는 기회로 삼고, 시설투자 및 사업·고객·제품 포트폴리오 면에서도 운영 효율화에 힘써 질적 성장을 이어갈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4분기 첫 적자를 기록한 삼성SDI는 최근 2조원 가량의 유상증자를 단행했다. 삼성SDI에 따르면 조달자금은 전고체·리튬인산철(LFP)·46파이 원통형 배터리 등 차세대 기술력 강화에 쓰인다. 구체적으로는 전고체 양산라인에 4541억원을 투자하고 미국 GM 합작법인(JV)과 헝가리 BMW 46파이 증설에 1조5460억원이 투입될 예정이다.

동시에 최주선 삼성SDI 사장은 유상증자 다음날 약 1억9000만원 규모의 자사주 1000주를 장내 매입했다. 취득 단가는 주당 19만1500원이다. 책임 경영 및 주주가치 제고를 위한 의지 표명으로 풀이된다.

최 사장은 "친환경·탄소배출 저감이 시장의 대세인 만큼 프리미엄을 포함한 좋은 제품을 만들어서 캐즘에 대처할 것"이라고 말했다. 중장기 성장 역량 확보를 위해 미래 시장에 힘을 싣는다는 방침이다.

오는 28일 모회사 SK이노베이션의 주총을 앞둔 SK온은 이날 구체적인 성장 전략을 밝힐 예정이다. SK온은 최근 일본 자동차 기업 닛산과 15조원 규모의 전기차용 배터리 공급 계약을 체결한 바 있으며, 이처럼 해외 완성차 업체들과 함께 캐즘을 돌파하는 전략을 제시할 것으로 예상된다.

■ 정부, 배터리 특별법 제정 추진…'한국판 IRA' 만든다

정부도 국내 배터리 산업을 지원하기 위한 제도적 기반을 준비 중이다. 최근 국회의원회관서 열린 '2차전지산업 지원 특별법' 제정을 위한 토론회에서는 국내 배터리 산업의 경쟁력 강화를 위한 다양한 방안이 논의됐다.

특히 미국을 벤치마킹한 '한국판 IRA' 법안 제정이 방안으로 언급됐다. 반도체 특별법과 같이 배터리 산업을 대상으로 하는 법안을 제정하고, 실효성이 낮은 국내 세액공제 방식대신 직접 보조금을 통해 체계적인 지원을 마련한다는 구상이다.

해외 공급망 개발을 위한 정부 차원의 지원도 해당 특별법에 포함될 예정이다. 니켈, 리튬, 코발트 등 배터리의 핵심 원료들이 중국, 인도네시아, 아르헨티나 등 전 세계 곳곳에 매장돼 있는 만큼, 정부가 직접 가격 협상을 이끌어 안정적인 원자재 조달을 돕는다.

박재범 포스코경영연구원 수석은 "영업이익이 발생하기 전이라도 실제 투자액에 대한 직접 환급제를 도입하는 조세특례제한법 개정안 마련을 비롯해 ▲공급망 취약 품목을 대상으로 한 생산 보조금 지원 ▲이차전지 산업 단지 내 인프라 지원 확대 등 파격적인 정책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