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승부' 포스터
# 다시 돌아온 바둑 영화
영화 <신의 한수>, <뷰티풀 마인드>, 드라마 <미생>, <응답하라 1988> 등 바둑을 소재로 한 콘텐츠는 간간이 선보여졌다. 하나 소재에 그치지 않고 반상 승부의 세계를 온전히 다룬 작품은 <승부>가 처음이다.
다만 개봉까지 험난한 여정을 거쳤다. 4년 전 크랭크업을 마쳤지만 코로나19로 인해 개봉이 미뤄졌고, 이후 넷플릭스 공개를 앞두고 주연 배우의 불미스러운 사건으로 무산되는 곡절 끝에 마침내 스크린으로 돌아왔다.
영화의 주인공이 역사 속 과거의 인물이 아니라, 역대 최고의 레전드이자 현역 기사로 여전히 활동하고 있다는 점에서 큰 화제를 모았다. 실존 인물을 모티브로 한 영화인 만큼 철저한 고증을 바탕으로 영화적 해석을 더한 장면이 눈에 띈다.
조훈현 국수가 대국 중 혼잣말을 하고, 다리를 떨며, 장미 3갑을 연신 피워대는 모습은 바둑팬들에게 익숙한 풍경이다. 소소한 볼거리들이 스크린 곳곳에 녹아 있다. 심지어 자택에 붙어있는 부친 조규상 옹의 명패까지 디테일이 살아 있다.
이러한 리얼리즘 위에 캐릭터의 다소 과장 섞인 극적 허용을 더했다. 배우들은 말로 표현하기 쉽지 않은 치열한 승부의 내면을 동작이나 표정의 감정선으로 맛깔스럽게 살렸다. 이병헌, 유아인, 고창석 등 명품 배우들의 세밀한 연기력은 관객들의 마음을 사로잡기에 충분하다.
다만 바둑이라는 소재 특성상, 주요 인물들 못지않게 바둑돌(기보) 또한 조연급 존재다. 프로기사의 사전 검증을 받았겠지만, 스크린에 비춰진 반상의 기보는 못내 아쉽다. 그리고 바둑 애기가들은 돌을 놓는 모양새만 봐도 기력(棋力)을 짐작할 수 있는데 착점하는 모습이 프로의 맵시가 아니다. 대국 후 불계패를 인정하며 한결같이 돌 한 개를 올려놓는 장면, 바둑판을 정리하지 않고 불쑥 일어나는 장면도 아쉬운 대목이다.
알파고 이후 프로바둑계도 AI바둑이 정답을 알려주는 서글픈 현실이지만, 얼마 전까지도 종국 후 승자와 패자가 오랜 시간 복기(復棋)를 나누는 모습은 바둑이 가진 아름다운 관행이다. 또한 대국 전후 깍듯이 인사를 주고받고 예를 갖추는 기도(棋道)의 덕목도 여전하다.
하지만 영화 속에서 이런 겉치레는 중요하지 않다. 조훈현 역을 맡은 이병헌은 “바둑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인생에 대한 이야기이다. 인생을 어떻게 살아가는지 보여준다”고 말했다. 바둑을 몰라도 영화를 즐기는데 전혀 문제가 없다.
# ‘불멸의 승부사’ 조훈현
필자가 조훈현 국수를 처음 만난 건 1994년 겨울이었다. 모뎀(MODEM)에 전화선을 꽂은 컴퓨터, 이른바 PC통신으로 사상 첫 온라인 대국이 열렸다. 한국이동통신배 결승5번기가 조훈현 9단의 평창동 자택과 이창호 7단의 반포 자택에서 재택 대국으로 치러졌다. 당시 필자는 조훈현 9단이 바둑판에 돌을 놓으면 화면에 마우스를 클릭하는 알바생으로 대국수와 첫 인연을 맺었다.
조훈현 국수 역시 어린 시절 일본 유학을 떠나 세고에 겐사쿠(瀬越憲作, 1889~1972)의 내제자가 되었다. 평생 3명의 제자만 들였다는 세고에는 “바둑은 원래 중국에서 한국을 거쳐 일본에 전해진 것이다. 우칭위안(吳淸源, 1914~2014)을 키워 중국에 보답했으니, 조훈현으로 한국에 보답할 것“이라며 한중일 3명의 바둑천재를 키웠다는 일화가 유명하다.
조국수에게는 남들이 당연히 갖고 있는 세 가지가 한동안 없었다. 바로 신용카드, 휴대폰, 운전면허가 그것이다. 휴대폰조차 찾는 이가 불편할 뿐이지 본인은 불편함이 전혀 없다. 집념의 승부사인 그에게 승부 외적인 일상은 지극히 무심하다. 오직 승부밖에 몰랐던 조국수에게 운명 같은 만남이 찾아온다.
# 운명적인 첫 만남
1984년 조훈현이 열 살 꼬마를 내제자로 들인 것이 사제 인연의 첫 매듭이었다. 70~80년대 국내 바둑계를 호령하던 조훈현은 변방에 머물던 한국 바둑의 미래를 위해 후진 양성이라는 쉽지 않은 용단을 내린다. 흥미로운 건 사제의 스타일이 달라도 너무 달랐다는 사실이다.
이들의 상반된 기풍(棋風)은 별명에도 고스란히 드러난다. 조훈현은 바둑황제, 전신(戰神), 제비, 속력행마 등 죄다 싸움을 마다하지 않는 공격적 스타일과 용모처럼 빠르고 날렵한 별명을 지녔다.
반면 이창호는 돌부처, 강태공, 삼중허리, 슈퍼컴퓨터, 신산(神算) 등 표정 변화가 없거나 완벽한 계산력에서 유래한 참으로 이창호다운 애칭들이다. 특히 삼중허리는 신중하기로 유명한 ‘이중허리’ 린하이펑(林海峰)보다 더 신중해서 붙여진 넘사벽의 닉네임이다.
바둑의 두터움이란 실리로 직결되지 않아 당장 득이 없지만, 장차 도움이 될 만한 견고한 모양새를 일컫는다. 날렵하거나 화려하지 않고 투박하고 느리다. 이창호의 바둑에는 묘수가 별로 없다. 조훈현, 이세돌 같은 천재형 기사들이 종종 보여주는 진기한 묘수가 아니라, 80점 안팎의 평범한 수로 우보천리(牛步千里)를 걸었다. 그렇게 묘수보다 정수로 십수 년간 천하를 묵묵히 지키며 불세출의 기사로 남았다.
영화에는 이들이 평소 즐겼던 휘호(揮毫)가 등장한다.
조훈현의 무심(無心),
이창호의 성의(誠意).
비운다는 마음과 다한다는 마음. 휘호마저 극단적이다. 하지만 서로 달라 보이지만, 결국 같은 곳을 바라보고 있는 기풍의 다른 표현이 아닐까. 둘 다 한 판의 바둑을 이기기 위해 필요한 승부사의 덕목이다.
영화 '승부' 포스터
# 끝없이 맞붙은 사제 대결, 그 이후
족히 10년은 걸릴 줄 알았던 제자의 청출어람, 불과 5년 만에 영토를 빼앗긴 바둑황제, 이어진 방황의 시간, 그리고 타이틀 홀더가 아니라 도전자의 심정으로 바닥부터 오르는 모습이 영화 속에 그려진다.
실제로 북한산을 매일 오르고, 담배를 끊고, 승부에 집중하며 권토중래(捲土重來)를 거듭한 조훈현은 이창호와 300판이 넘는 사제대결을 벌였다. 둘은 1988년부터 2003년까지 무려 68번의 타이틀 매치를 치렀다. 뿐만 아니라 50세의 나이에 삼성화재배 세계바둑오픈에서 우승하며 21세기 세계바둑사에 길이 남을 불멸의 기록을 남겼다.
1989년 응씨배 우승 직후 “나는 할 만큼 했다. 뒷일은 창호가 알아서 해주겠지”라고 말한 조훈현. 어쩌면 40년 전 인연의 첫 매듭을 묶는 순간부터 그는 이미 깨달았으리라. 냉엄한 승부의 세계에서 그 인연을 끊을 수 없다는 것을. 끈이나 매듭처럼 자르는 것이 아니라, 천천히 풀어가야 한다는 것을.
영화의 배경이자 한국기원 관철동시대의 상징이었던 운당여관. 늘상 도전기가 열리던 낡은 여관에 조훈현이 들어서며 영화는 끝을 맺는다..
“창호, 또 너냐?”
영화 속 모든 서사를 담고 있는 스승의 한마디. 엔딩 시퀀스로 제격이다.
■ 강헌주 PD는 바둑TV, 온게임넷(OGN), 투니버스 등에서 미디어 콘텐츠 사업을 총괄했다. 세계 최강의 한국 바둑과 e스포츠의 중심에서 다양한 콘텐츠를 시도했고, 2003년 프로 단체전이 전무했던 시절 한국바둑리그를 기획하여 출범시켰다. 현재 KB바둑리그는 세계 최고의 바둑리그로 자리매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