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일 코스피 지수는 전 거래일보다 5.55포인트(0.19%) 오른 2977.74에 마감했다.(사진=연합뉴스)
요즘 한국 주식시장 상승세가 놀랍다. 종합주가지수는 4월 9일 저점 이후 두 달 만에 30% 가까이 오르며 3년 반 만에 3000포인트를 바라보고 있다. 필자는 작년 크리스마스이브에 본지에 기고한 칼럼에서, 올해 한국 시장에 긍정적인 전망이 필요하다고 말한 바 있다.<하단 관련기사 참고>
불과 작년 말만 해도 ‘국장 탈출은 지능순’이라며, 한국 주식은 희망이 없다는 게 상식이었던 시절이었다. 그런데 반년 만에 상전벽해(桑田碧海), 경천동지(驚天動地)할 변화가 일어났다. 하지만 단기간에 많이 오른 만큼, 이 상승장에 온전히 동참한 사람이 많지는 않은 것 같다. 또, 급하게 오른 만큼 조정에 대한 불안감이나 앞으로 얼마나 더 오를 수 있겠냐는 우려도 많은 듯하다.
물론 금융시장에는 늘 큰 변동성이 내재돼 있다. 급등한 가격은 변동성을 수반한다. 게다가 글로벌 거시경제 여건의 불확실성, 지정학적 위기, 그리고 높은 금리는 여전히 해소되지 않고 있다. 여름을 지나 가을로 가는 길목에선 조정 가능성도 있다고 본다.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단기적인 변동성에 대한 우려다. 중장기적으로는 한국 주식시장의 재평가 가능성이 매우 높으며, 여전히 더 오를 여지가 충분하다고 본다.
코스피 2950포인트(6월 17일 기준)에서, 한국 주식시장의 올해 예상 이익 대비 PER(주가수익비율)은 9.8배 수준이다. 작년 말 8배까지 내려갔던 밸류에이션이 많이 회복되긴 했지만, 여전히 한국 주식시장은 전 세계에서 PER 기준으로 가장 저평가돼 있다.
워낙 오랫동안 “한국 주식시장은 늘 싸다”라는 인식이 팽배하다 보니, 국내 주식과 해외 주식 간 밸류에이션 차이가 당연하게 느껴질 때도 있다. 물론 빅테크와 엄청난 주주환원, 스톡옵션을 통한 이해관계 일치 등 자본주의 정점에 서 있는 미국 주식시장이 프리미엄을 받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한국 주식시장이 일본이나 유럽, 그리고 이머징마켓의 다른 국가들에 비해 그렇게까지 질적으로 열등한지 의문이다. 위 그래프 오른쪽에서 보듯, 한국 기업들의 향후 12개월 이익 성장률은 전 세계 어느 시장과 비교해도 낮지 않다.
한국처럼 시가총액 대형주에 반도체, 바이오, 배터리 같은 첨단 기술 기업들이 즐비한 시장은 거의 없다. 이머징마켓 국가들이 고성장해서 높은 밸류에이션을 받던 것도 옛 이야기다. 한국만큼 안정적인 경제 기반을 갖춘 나라도 많지 않다. 올해 수익률이 괜찮은 편인 유럽도, 상장기업들의 면면을 따져보면 한국보다 나을 게 없다. 엔저와 초저금리라는 모멘텀이 정점을 찍은 일본과 비교해도 한국은 결코 뒤처지지 않는다. 한국의 배당수익률이 낮아 저평가돼야 한다는 주장도 오래됐다. 배당수익률 상위 100대 기업의 평균 배당수익률은 2024년 배당금 기준, 지수가 3000 가까이 오른 현재 주가 수준에서도 5%에 달한다. 전 세계 어디에 내놔도 낮지 않다.
펀더멘탈과 주주환원 관점에서도 나쁠 게 없는데, 유럽/대만/일본은 모두 16배, 한국은 9.8배다. 정치 혼란과 불안한 환율, 비교가 어려운 첨단 산업의 기술력에도 불구하고 이머징마켓 평균 PER이 13배가 넘는다. 만약 한국이 이머징마켓과 같은 13배 PER을 적용받는다면 KOSPI는 4000까지 올라간다. 만약 한국이 일본이나 유럽과 같은 밸류에이션을 받는다면? 대통령의 공약이었던 KOSPI 5000도 충분히 가능하다.
대통령은 후보 시절, 한국 주식시장이 저평가된 원인으로 4가지를 꼽았다. (1) 시장의 불공정성, (2) 산업 육성에 대한 정부 정책의 부재, (3) 기업의 경영권 남용과 지배구조 문제, (4) 한반도의 지정학적 리스크. 마지막 지정학적 리스크는 우리가 어쩔 수 없는 일처럼 보이지만, 상대적으로 한국만의 문제는 아니다. 러-우 전쟁 당사자인 유럽, 중국-대만의 긴장, 미사일 비가 쏟아진다는 요즘의 뉴스, 연일 시위가 이어지는 미국의 모습들을 보면, 한국만이 지정학적 불안감 때문에 저평가받을 이유는 없다.
나머지 3가지 저평가 원인에 대해선, 취임 한 달도 안 된 지금 강력한 메시지를 내고 있다. 주가조작 원스트라이크 아웃, AI 100조 투자, 상법 개정 등을 속전속결로 발표하고 있다. 정확한 원인 지적과 빠른 대응에 투자자들이 반응하면서 주가가 연일 오르고 있다.
일본은 아베노믹스로 대표되는 정부 주도 산업정책 이후 주가지수가 3배 올랐다. 미국은 코로나 사태 이후 재정지출을 천문학적으로 확대하며, ‘미국 예외주의’라는 장기 호황을 누렸다. 이런 시기에 한국은 장기간 정부 주도 경기부양책이나 산업정책이 부재한 시기를 보냈다. 저성장·양극화가 극단으로 치달으면서, 이제는 어떤 정부든 산업 부양 정책 추진을 피할 수 없는 카드가 됐다. 한국은 정부 부채비율이 매우 낮기 때문에 정책 여력도 충분하다. 타국에서 이미 봐온 장기적 상승 사이클이, 이제 한국에서도 가능할 수 있다.
상법 개정만으로 한국 지배구조가 완전히 바뀌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이는 거대한 변화의 시작일 수 있다. 한국 상장기업들의 문제는 지분 20~30%에 불과한 대주주가 아무런 견제 없이 100%의 경영권을 행사한다는 점이다. 적은 지분으로 회사를 좌지우지할 수 있으니 이해관계 불일치 문제가 발생하고, 무엇보다 주식의 발행 비용이 너무 낮아져 증자, 분할, 상장 등 잦은 주식 공급으로 시장의 수급을 해치고 저평가가 장기화됐다. 상법 개정이 당장 선진국 수준의 이사회 중심 합리적 경영을 확산시키진 못하더라도, 적어도 자본 조달 비용은 높일 수 있다. 소액주주의 목소리가 커지면, 대주주가 독점적 경영권을 계속 행사하더라도 잠재적 리스크 관리와 평판을 위해 어쩔 수 없이 주주를 케어해야 하고, 예전처럼 마구잡이로 주식 발행을 하기는 어려워진다. 주식 공급 감소가 기대된다.
중장기적으로 시장 수급 상황도 매우 좋아 보인다. 작년 하반기 극심한 하락장에서 국내 기관들의 손절이 많았고, 현재 주식 비중이 낮은 편이다. 올해 상승이 너무 가파르면서 충분히 주식 비중을 확보한 국내 투자자는 드물다. 게다가 외국인 투자자 수급도 나날이 개선되고 있다. 미국 주식시장의 예외적 상승세와 강달러가 꺾이면서, 미국 투자자는 물론 전 세계 투자자들의 글로벌 분산 투자 니즈가 매우 높아졌다. 한국은 10년 넘게 비중을 거의 가져가지 않던 시장이었기에, 매물은 없는 상황에서 신규 자금 유입 가능성이 높다.
단기 변동에 대한 준비는 필요하다. 지정학적 리스크도 크고, 경기 리스크도 크다. 가파른 상승 속에 ‘묻지마 랠리’도 속출한다. 기업가치 이상으로 올라간 주가는 강세장 안에서도 위험하다. 하지만 길게 보면, 이제 그동안 우리를 옥죄었던 패배주의에서 벗어날 때도 됐다. 길게 보고, 야망을 가져보자.
■ 강대권 대표는 현재 라이프자산운용을 이끌고 있다. 서울대 경제학과 및 동대학원 석사(산업경제학 전공)를 마쳤고, 서울대 가치투자 동아리 '스믹(SMIC)' 출신으로도 유명하다. 가치투자 2세대 스타 펀드매니저인 강 대표는 한국투자밸류자산운용을 거쳐 유경PSG자산운용에서 최고투자책임자(CIO)를 역임했다. 당시 국내 운용사 최연소 CIO다. 지난 2016년, 2020년 국내 주식형 운용사 수익률 1위를 기록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