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의 장마는 예전과는 그 모습이 많이 다르고 모질다. 예상치를 훨씬 뛰어넘는 폭염, 단 몇 시간만에 도시 전체를 마비시키는 폭우. 기후와 관련해 몇 백년만에 처음이란 수식어가 종종 들린다. 우리는 이제 기후변화의 엄혹한 현실에 직면해 있다. 자연은 점점 더 통제 불가능한 방향으로 흘러가고, 그 배경에는 지구온난화라는 불편한 진실이 있다.

기후위기는 더 이상 먼 미래의 일이 아니다. 기업의 경영 전략이나 투자 판단, 나아가 생존 자체와 직결되는 현실이 되었다. 예전처럼 환경을 ‘비용’이나 ‘규제’로만 보는 시각은 이제 통하지 않는다. 오히려 지금은 에너지 전환을 통해 리스크를 줄이고 경쟁력을 확보하며, 새로운 시장을 여는 전환점이 되고 있다.

요즘 기업 관계자들과 대화를 나누다 보면 “이제 에너지도 경쟁력”이란 말을 자주 듣게 된다. 이 말은 단순한 구호가 아니라, 기업이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는 절박함을 담고 있다. 에너지는 이제 단순히 돈 주고 사는 자원이 아니다. 브랜드 신뢰, 글로벌 시장 진출, 투자 유치, 인재 확보에까지 연결되는 핵심 자산이 됐다. 특히 재생에너지는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생존을 위한 필수 요소가 되고 있다.

세계 유수의 기업들은 이미 빠르게 움직인다. 애플, 구글, BMW 같은 글로벌 기업들은 자사 공장에서 사용하는 전력을 100% 재생에너지로 바꾸겠다고 선언했고, 협력사들에게도 동일한 기준을 요구하고 있다. 이 기준을 충족하지 못하면 거래에서 배제되거나, 주요 수출 시장에서 불이익을 감수해야 한다. 이제 재생에너지는 일종의 무역 장벽이자 시장 진입 장벽이 되어가고 있다.

다만 이런 변화가 꼭 부담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기업 입장에선 리스크를 줄이고, 비용을 절감하며, 새로운 수익 기회를 만들어낼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일 수 있다. 전력을 장기 계약하거나 자가 발전 설비를 갖추면 에너지 가격 급등에도 안정적인 조달이 가능하고, 탄소배출이 적은 공정을 갖추면 수출 시 탄소세 부담도 덜 수 있다. 이런 구조는 자연스럽게 기업 가치 상승으로 이어진다.

제조업 비중이 높은 한국 산업 구조에서는 에너지 단가와 탄소 배출량이 곧 경쟁력이다. 지금 재생에너지에 투자하는 기업은 ‘녹색 프리미엄’을 얻을 수 있고, 장기적으로는 이를 ‘녹색 할인’으로 바꾸며 유리한 시장 지위를 선점할 수 있다.

재생에너지 기반 생산체계를 갖춘 기업은 다양한 금융적 이점도 누릴 수 있다. 친환경 채권 발행, ESG 기반 저금리 대출, 장기 투자자 유치 등 다양한 자금조달 기회가 생기며, 전기차·소재·데이터센터 등 신산업과의 융합 가능성도 높아진다.

이제는 단순히 에너지 소비 방식을 바꾸는 수준을 넘어, 재생에너지 자체를 새로운 사업 기회로 인식할 필요가 있다. 에너지 생산, 저장, 효율화, 탄소 배출 관리 등의 분야에서는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이 속속 등장하고 있으며, 이 시장은 앞으로도 계속 확장될 전망이다. 이 흐름은 대기업뿐 아니라 기술력을 갖춘 스타트업에게도 큰 기회가 된다.

정부 역시 이런 변화를 더 적극적으로 뒷받침해야 한다. 재생에너지 산업을 선도하려는 기업에 인센티브를 제공하고, 기술과 아이디어를 가진 스타트업이 시장에 쉽게 진입하고 자금을 조달할 수 있도록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 재생에너지 관련 기술을 보유한 기업에 대해서는 상장 심사 요건을 완화하거나 기술특례 상장 문턱을 낮추는 방식으로 녹색 생태계를 육성할 수 있다.

그렇다면 기업은 어디서부터 시작하면 좋을까?
우선 자사의 에너지 사용량과 탄소 배출량을 정확히 파악하는 것부터 출발해야 한다. 이후에는 공정 개선, 열 회수, 전력 효율화 등의 절감 노력을 실행하고, 장기 전력 계약, 자가 발전, 에너지 저장 시스템 구축 등을 통해 에너지 조달 구조를 다층화할 필요가 있다. 나아가 협력사까지 이 기준을 확대 적용하고, 내부적으로는 에너지 절감 성과를 인사 평가나 보상과 연동하는 시스템도 도입할 수 있다.

물론 이런 변화는 기업 혼자만으로 감당하기 어렵다. 그래서 정부의 역할이 중요하다. 정부는 재생에너지 계약과 전력 전송이 더 수월해질 수 있도록 관련 인프라를 확대하고, ESG 공시 기준을 국제 수준에 맞춰 기업들이 데이터를 쉽게 수집하고 보고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친환경 전력을 사용하는 기업에 대해서는 세제 혜택이나 공공조달 가점 같은 실질적인 유인책도 필요하다.

결국, 핵심은 기업이 스스로 어떤 선택을 하느냐다. 변화를 뒤따라가는 수혜자에 머물지, 아니면 그 흐름을 선도하는 주역이 될지는 각자의 선택에 달려 있다. 한국은 이미 반도체, 전기차, 배터리 분야에서 세계적인 경쟁력을 입증해왔다. 이제는 여기에 ‘K-Green’이라는 이름으로, 에너지 효율과 탄소 감축이라는 새로운 역량을 더할 차례다. 기후위기의 시대에 기업은 더 이상 파도에 떠밀리는 존재가 아니다. 그 파도의 흐름을 먼저 읽고, 방향을 잡아 스스로 노를 저어 나아가는 주체가 되어야 한다.

기회는 늘 준비된 이에게 먼저 보이는 법이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이, 바로 그 ‘변화의 창’이 열려 있는 시점이다.


김종선 대표는 경영학박사로, 현재 기업 경영 자문 및 밸류업 관련 전문컨설팅회사 '제이드케이파트너스'를 운영 중이다. 지난 30여년간 코스닥협회 등에서 상장회사관련 제도개선 및 상장회사 지원 업무를 했다. 이러한 경험을 바탕으로 지금은 초기기업부터 상장회사까지 성장 과정 전반에 관한 전문적 자문을 활발히 수행하고 있다. 아울러 벤처 및 상장회사 관련 제도개선에도 다양한 의견을 제시하는 등 기업 애로사항 해소를 위한 부분에 관심이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