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픽셀스)
벤처투자 현장에서 일하다 종종 목격하는 안타까운 상황 중 하나는, 기술력과 시장성이 준수한 스타트업임에도 인력 관리 실패로 성장 동력을 잃어버리는 경우다. 창업자들은 “나는 잘해줬는데 왜 인재들이 떠날까?”라며 의아해 하지만, 원인을 들여다보면 생각보다 명확한 경우가 많았다.
1. 창업자와 직원의 근본적 동기 차이
1) ‘성장’에 대한 서로 다른 정의
창업자들이 범하는 가장 큰 오류는 구성원들의 회사를 대하는 태도와 관점이 창업자와 동일하다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창업자를 포함한 초기 핵심 멤버들은 회사의 성공이 곧 자신의 성공이고, 회사의 실패가 곧 자신의 실패라는 생각으로 회사와 자신을 동일시하기도 한다.
하지만 스타트업을 ‘직장’으로 선택해 합류한 직원들의 생각이 창업멤버들과 같기를 바라는 것은 욕심이다. 그들이 추구하는 것은 회사보다는 개인의 성장이며, 비효율적인 야근과 주말 출근은 성장이 아닌 ‘소모’라고 생각한다. 엄밀히 말하면 이들이 추구하는 가치는 성장보다는 ‘인정’에 가까울 것이다.
2) 인정과 보상의 메커니즘
성장 지향형 인재들은 노력한 만큼의 합당한 보상을 원한다. 여기서 보상이란 단순히 금전적인 것 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승진, 권한과 자율성의 부여, 커리어 확대의 기회 등을 포함하는 개념이다.
죽도록 노력했는데 합당한 보상이 없는 상황에서 “그래도 회사가 성장 했으니 됐어”라고 자족하는 인재는 회사가 보기에 단기적으로는 훌륭한 직원이라고 할 수 있을 테지만 오래가기 어렵다. 그렇게 성장한 인재는 언젠가 더 좋은 조건을 제시하는 곳으로 떠나갈 것이기 때문이다.
2. 스타트업의 구조적 모순: 제한된 자원으로 더 큰 성과를 내야 하는 현실
스타트업 경영자들은 고민이 깊다. 대기업 구성원 대비 상대적으로 역량이 부족한 멤버들을 데리고 대기업 이상의 성과를 창출해야만 시장에서 살아남을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그들이 선택할 수 있는 것은 빠른 속도와 절대적인 시간 투입이다. 대기업의 관료주의적 의사결정 프로세스를 제거해 속도를 확보하고, 정규 근무시간을 초과해 인력과 시간을 갈아 넣어가며 대기업과 경쟁하는 것이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스타트업을 떠나는 인재들이 꼽는 퇴사 사유도 여기에 기인한다.
“업무 프로세스가 주먹구구식이고 네 일, 내 일이 없어요.”
“제가 희망한 직무는 시켜주지 않고 당장 급한 일만 떠넘기더라고요.”
“저도 저녁이 있는 삶을 살고 싶어요.”
스타트업이 경쟁력을 얻기 위해 선택한 방식이 역설적으로 인재 이탈의 원인이 되는 것이다.
3. 대기업과 스타트업의 리텐션 격차
대기업은 인재를 리텐션(근속 유지)하는 방식이 근본적으로 다르다. 회사가 붙잡지 않아도 인재가 자발적으로 근로를 지속할 유인이 차고 넘치는 조직이기 때문이다.
-대기업이라는 브랜드 가치
-다양한 복지와 승진 기회
-사회적 인정
-가족과 주변의 기대
-고용 안정성
하지만 스타트업은 그렇지 않다. 쿠팡, 토스, 배민 급을 제외하면 스타트업을 퇴사하고 대기업으로 돌아간다고 했을 때 “왜 그런 결정을 했느냐”며 묻는 사람은 거의 없다. 오히려 “아, 그래 역시 대기업이 낫지?”라는 반응이다.
대기업에 갈 수 있음에도 스타트업을 선택할 정도의 인재라면, 이들이 추구하는 가치는 다음 세 가지 중 하나 이상일 것이다.
-전문분야에서의 주도적 성장
-사업의 간접 체험(언젠가 자기 사업을 하고 싶은 사람)
-금전적 보상(스톡옵션이나 지분을 통한 기대수익)
창업자들은 우리 회사가 인재들의 이러한 욕구를 충족시켜 줄 수 있는 곳인지 고민해 보아야 한다.
4. 성과보상 체계의 필요성
1) 이상론과 현실론의 충돌
직장 선택에 “경제적 보상이 주가 되어서는 안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당연하게도 대부분 사측이며, 인재들에게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다.
“회사가 잘 되면 어련히 알아서 챙겨줄 테니 네가 열심히 하는 것이 우선이다.”
“조직의 성장이 우선이지 개개인의 인센티브를 따지는 것은 이기적인 행동이다.”
회사 입장에서 보면 틀린 말이 아니다. 하지만 현실은 냉정하다. 인재들이 원하는 직무 경험을 제공할 수 있는 곳이 우리만이 아니기에, 다른 기업에서 훌륭한 보상을 제안한다면 인재들은 미련 없이 떠나갈 것이다.
2) 스타트업만의 무기 : 스톡옵션과 성과보상
스타트업이 인재 확보 전쟁에서 대기업을 이길 수 있는 좋은 무기가 있다. 바로 스톡옵션과 성과 연동 인센티브 제도다. 지분이나 스톡옵션을 가지게 되면 회사의 성장이 개인의 부와 연동되기 때문에 지금 하고 싶은 일을 조금 미루더라도 회사의 성장을 위해 일할 수 있게 하는 유인이 된다.
하지만 명심해야 할 것은 이러한 성과보상은 구두 약속이 아니라 실제로 주어졌을 때만 효과를 발휘한다는 것이다. “회사가 잘되면 나중에 챙겨주겠다”는 말 뿐인 약속은 인재 리텐션에 오히려 역효과다.
유명 스타트업에 C레벨로 이직했다가 몇 개월 못 가 다시 대기업으로 돌아간 후배가 했던 말이 생각난다.
“매번 ‘나중에 Exit 하고 나면 ~해줄게’라는 말 뿐 이더라고요. 그걸 어떻게 믿어요?”
5. 결론
스타트업의 인재 관리는 창업자가 이상과 현실 사이의 균형을 찾는 것부터 시작해야한다. 열정과 비전제시 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인재들에게 회사에 남는 것이 본인에게도 유리한 확실한 이유를 만들어주고, 약속은 명문화하고, 성과 달성 시 사족 붙이지 말고 이행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인재 리텐션의 핵심이다.
“좋은 인재는 선택권이 많다”는 현실을 인정하고, 그들이 우리 회사를 선택할 만한 충분한 가치를 제공해야 한다. 대기업의 안정성을 포기하고 스타트업을 선택한 인재들에게 그에 상응하는 명확하고 실질적인 보상이 따르지 않는다면, 그들은 여기 있을 이유가 없다.
창업자는 항상 스스로에게 되물어야 한다.
1) 우리 회사의 핵심 인재가 내일 당장 사표를 낸다면, 그를 붙잡을 수 있는 구체적인 카드가 있는가?
2) 직원들이 야근과 주말 근무를 하는 이유가 단순히 ‘회사가 바빠서’인가, 아니면 ‘그만한 가치가 있어서’인가?
3) 성과를 낸 직원에게 “수고했다”는 말 외에 실질적인 보상을 제공하고 있는가?
이 질문에 긍정적 답변을 할 수 없다면, 무언가 잘못 가고 있는 것이다. 인재 이탈을 막으려면 빠르게 수정해야 한다.
VC들이 초기 스타트업 투자를 검토할 때 기술력과 시장성 이상으로 중요시하는 요소가 창업자를 비롯한 ‘핵심인력’이다. 아직 초기인 만큼 아이템은 얼마든지 피봇(Pivot, 사업 아이템의 변경) 가능하지만 좋은 인재들을 보유하고 있다면 바뀐 아이템으로도 빠르게 성과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창업자들은 제품과 시장에 대한 관심 이상으로 내부 인력에 대한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스톡옵션과 성과보상을 비용으로만 생각할 것이 아니라 미래를 위한 투자라는 인식의 전환도 필요하다.
필자는 좋은 인재를 채용하고 리텐션 시키는 것이 스타트업의 성장에 가장 중요한 일이라 생각한다. 그렇기에 투자 기업 검토 시 성과보상 시스템과 창업자의 인재를 대하는 마인드를 꼭 확인하려고 노력한다. 아무리 기술이 좋아도 창업자 혼자서는 일정 수준 이상의 스케일업을 만들어낼 수 없다.
스타트업의 성패는 결국 ‘사람’에 달려 있다. 좋은 인재가 머무를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창업자의 가장 중요한 업무임을 잊지 말고, 인재를 비용이 아닌 미래 성장의 핵심 자산으로 보고 그 가치를 지속적으로 높여가려 노력할 때, 스타트업은 지속 가능한 성장을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이다.
■ 유지윤 팀장은 현재 벤처투자회사(VC) 라이징에스벤처스에서 투자심사역으로 재직 중이다. 성균관대학교 경영학과 및 동 대학원 글로벌경영학 석사(MBA)를 마쳤다. LG상사(現 LX인터내셔널) 금융팀과 기획팀을 거쳐, 게임 개발 스타트업 플라이셔에서 사업팀장을 역임했다. 이후 벤처캐피탈리스트로 커리어를 전환, 현재 기술 기반 초기창업기업 전문 VC인 라이징에스벤처스에서 다수의 벤처투자조합을 운용하며 활발히 활동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