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온 뒤 죽순 나듯, 비록 며칠이겠지만 이곳 저곳에서 ‘나도 잠룡이네’ 고개를 내민다. ‘통’의 자리에서 국민을 섬기겠다는 이들이 언제 이렇게 많았나 싶다. ‘대통령 파면’이라는 정국 특이성이 낳은 기현상중 하나이다. ‘K-민주주의’의 풍부(?)한 잠룡 자원에 오히려 씁쓸하기까지 한다. 며칠 지나면 체급이 결정되겠지만 지금 20여명이 훌쩍 넘는 잠룡들 꿈틀거림은 ‘박제’할 만 하다. 대한민국 정치와 경제가 ‘윤석열 탄핵’후 어떤 리더십을 앞세워 도널드 트럼프 발(發) 글로벌 격변기를 헤쳐 나갈 지 한숨이 깊다. 당장 미국과 중국의 관세전쟁에서 경제는 불예측성 안개에 갇혀 급변침하고 휘청거린다. 주한미군 방위비와 관세를 패키지(연계)협상하려는 트럼프의 압박은 다음 정권의 최대 난제로 자리 잡았다. 대한민국호는 내우외환에 갇혀있다.

헌법재판소가 지난 4일 윤석열 대통령 파면을 결정하자 시민들은 다음 날 승리를 자축하는 집회를 개최했다. (사진=연합뉴스)


▶헌법정신을 파괴한 대통령 파면으로 치러지는 6월 조기대선이다. 탄핵정국에서 노출된 잠룡들 언행은 디지털 세상에서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디지털 인감’ ‘디지털 낙인’의 형태로 우리 주변에 떠돈다. 정당과 후보가 향후 대선 프레임을 어떻게 형성할 지는 디지털인감과 낙인을 찾아보면 유추가능하다. 프레임의 뼈대중 하나는 ‘헌정질서’ 일게다.

인터넷 만능시대에 잠룡들 언행은 유-불리를 떠나 문서나 영상의 콘텐츠로 ‘디지털 박제’가 됐다. 유권자들은 툭툭 클릭 몇 번으로 구체적 상황과 기록에 접근해 잠룡들과 자신의 일체성 정도를 따져본다. 그리고 지지여부를 결정한다. 잠룡들도 보여주고 싶은 ‘박제’와 껄끄러운 ‘박제’를 활용해 홍보하고 공격한다. 간혹 ‘디지털 풍화’가 이뤄진 ‘박제’들도 있겠지만 유권자들의 눈길을 피하고 오도하기는 쉽지는 않다.

▶‘계엄-탄핵-파면-대선’의 과정에서 개인적으로 곱씹고 싶은 ‘박제’중 하나는 행정가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의 이것이다.

“불가피한 비상사태가 벌어지지 않는 한 대통령 권한대행은 대통령의 고유 권한 행사를 자제하고 안정된 국정 운영에만 전념하라는 우리 헌정질서의 또 다른 기본 원칙마저 훼손될 우려가 있습니다.”(2024년12월26일,국회추천 헌법재판관 임명불가)

“오늘 내린 결정은 그동안 제가 여야는 물론 법률가, 언론인, 사회 원로 등 수많은 분의 의견을 듣고 숙고한 결과입니다. 저는 사심 없이 오로지 나라를 위해 슬기로운 결정을 내리고자 최선을 다하였으며, 제 결정의 책임은 오롯이 저에게 있음을 말씀드립니다.”(2025년4월8일, 대통령 권한 헌법재판관 지명)

지난 8일 한덕수 권한대행은 헌법재판관 후보자로 윤석열 40년지기 이완규 법제처장과 함상훈 서울고법 부장판사를 지명했다.

권한대행은 대통령의 고유 권한 행사를 자제해야 한다며 당시 헌법재판관 임명을 거부해 탄핵소추돼 직무정지까지 당했던 그다. 그런데 윤석열 파면 닷새 만에 대통령 몫의 헌법재판관 2인을 지명했다.

한덕수 권한대행은 도대체 왜 이 시점에서 무엇을 의도해 이런 결정을 했을까.

더불어민주당은 “대통령이 탄핵돼 여당은 없고, 다수당은 민주당인데, 도대체 누구 의견을 들었냐”며 극도로 반발하고 있다.

▶한 권한대행은 지난 8일 총리실 간부들에게 “대선의 ‘ㄷ’ 글자도 꺼내지 마라”며 대선 출마 문제에 대해 언급도 하지 마라는 취지로 말했다고 한다. 이날 국민의힘 윤상현 의원이 정부서울청사로 한 권한대행을 찾아와 대선 출마를 권유했으나, 한 대행은 전혀 생각해본 적이 없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국민의힘 대선 최종후보는 5월3일 결정된다. 한 권한대행이 정치 정글에 들어설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는 여의도 인사들도 “그런데 대통령 몫 헌법재판관을 지명하는 게 개인적 소신인지 외부와 교감속 결정인지는 모르지만 만의 하나 특정인의 요청이나 압력을 받고 단행한 것이라면 그 연장선상에서 한 권한대행이 대선정국에 돌발변수로 작동할 소지도 있다”고 내다본다. 한 권한대행의 부인에도 불구하고 여의도에서는 그의 잠룡역할론에 대해 따져본다.

한 권한대행을 무엇보다 주목하는 이유는 그가 앞으로도 60여일 정도 대한민국 최고 결정권자로 사실상 국정을 책임지고 있어서다.

지난 8일(현지시간)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한 권한대행과 전화통화를 통해 “거대하고 지속불가능한 한국의 (대미무역)흑자, 관세, 미국산 액화천연가스(LNG)의 대량구매, 알래스카 가스관 합작사업, 그리고 우리가 한국에 제공한 대규모 군사적 보호에 대한 지불을 논의했다”고 밝혔다. 주한

미군 주둔비용중 한국의 부담액(한국 방위비 분담금)증액을 위한 재협상을 관세압박과 연결할 것임을 트럼프는 시사했다.

한 권한대행은 방위비 분담이슈도 마무리짓겠다면 지을 수 있는 자리에 앉아 있다.

대통령 몫인 헌법재판관을 지명한 한 권한대행이 새 대통령 선출 전까지 국가경제 운명을 좌우할 대미-대중 정책에서 어떤 입장을 취할지 눈길이 모이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자신이 오롯이 책임지는 권한대행이 될 것인지, 새 대통령에게 협상의 지휘봉을 넘길 것인지 이 또한 ‘박제’될 예비사건이다. 대통령은, 더욱이 권한대행은 권력을 휘두르는 자리가 아니다. ‘대통령은 어떠해야 하는가’를 다룬 신간 ‘김대중의 국정노트(박찬수 지음)’를 권한대행과 잠룡들이 ‘박제’했으면 한다.


■명재곤은 헤럴드경제, 뉴스핌, 브릿지경제 등 언론사에서 30여년 간 기자 및 데스크로 활동했다. 석재조합에서 청와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영역을 취재하며 소통해 왔다. 소비자들 입장에서 세상을 들여다 보는 편이지만 한때 기업에서 일한 터라 공급자 처지도 이해한다. 경제나 정치에서 극단을 멀리하려고 노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