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려진 섬마다 ‘꽃이’ 피었다.” “버려진 섬마다 ‘꽃은’ 피었다.”

작가 김훈은 ‘꽃이’와 ‘꽃은’을 두고 고심 끝 ‘꽃이’에 방점을 찍었다고 한다. ‘칼의 노래’ 첫 문장에서 작가는 조사 ‘이’를 작품 길라잡이를 잡았다. 희망과 생명인 ‘꽃’의 존재성을 더 드러내는 으뜸 조사로 ‘이’를 찾았다. 꽃은 스스로 피는 것이다.

“하나의 사물을 나타내는 데는 단 하나의 단어만 필요하다.”

‘마담 보바리’의 작가 귀스타브 플로베르의 ‘일물일어설(一物一語說)’은 하나의 사물을 나타내는 적절한 말은 하나밖에 없다는 걸 강조할 때 활용된다. 한 사물을 표현할 때 단 하나의 단어만이 존재한다는 건 아니지만 하나의 사물을 표현할 수 있는 가장 정확한, 제일 적합한 단어를 찾는 ‘구속적인‘ 노력이 따라야 한다는 걸 일물일어설은 말한다. ‘꽃이’처럼.

헌법재판소 전경(사진=연합뉴스)


춘래불사춘의 2025년 3월, 자가당착적 주장과 본말전도의 내지르는 말들이 난무해 하루 24시간이 몽롱하기까지 한다. 극단주의자들의 거친 주장은 일상을 망가뜨린다. 그들은 언어를 가치를, 상식을 법치를 그냥 자기만의 ‘프로크루테스의 침대’에 눌러 눕힌다. 그리고는 멋대로 재단하고 절단하고 처단하려고 한다. 법원을 침탈하고 급기야 헌법재판관과 헌법재판소를 향해서도 원색적인 유무형의 테러를 가한다.

프로크루테스는 키가 큰 사람에게는 작은 침대를,작은 사람에게는 큰 침대를 주며 언제나 자기 기준에 맞춰 사람을 해쳤다고 그리스 신화는 전한다.

“설령 계엄이 헌법 또는 법률 위반에 해당한다고 하더라도, 민주당 의회독재의 심각성을 고려해 기각결정을 해 주실 것을 청구한다.” 지난 12일 국민의힘 의원 82명이 헌재에 낸 윤석열용 탄원서 요지다. 헌법과 법률이 이렇게 내팽겨쳐졌다.

누가 오늘 날 프로크루테스인가. 계엄 및 내란, 탄핵정국에서 입길에 오르내리는 단어중 하나가 ‘계몽(啓蒙)’이다. 사전적 의미상, ‘지식 수준이 낮거나 인습에 젖은 사람을 가르쳐서 깨우침’으로 풀이된다. 어리석음을 일깨운다는 것. ‘자기책임으로 인해 스스로 미성숙한 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상태에서 벗어남’을 뜻한다. 미성숙이란 ‘자신의 이성을 활용하지 못하고 외부에서 주어지는 것을 진리로 받아들이는 상태’ 라고 해석할 수 있다. 계몽은 인간 이성에 대한 신뢰를 바탕에 둔다.

사태의 본질과 진실이 언어를 통해 존재하고 드러나는 걸 우린 경험해 왔다. 언어는 역사성을 지닌다. 대한민국의 ‘계몽’은 언어로서 지금 진화중인가, 퇴화중인가.

“국민은 비상계엄을 ‘계몽령’으로 이해하고 있는데, 반국가세력이 내란죄로 몰아 대통령까지 구속됐다.” “저는 계몽됐다.” 지난해 12월3일 늦은 밤의 국회 광경에서 1980년 5월 광주를 떠올리는 이들도 적지않다.

헌재의 윤석열 대통령 탄핵심판 선고가 초읽기에 들어갔다. 헌재는 쿠데타 독재의 장막을 걷고서 법치존중의 보루로서 우뚝 세운 ‘우리 모두의’ 헌법기관이다. 헌재를 부정하는 세력이 반국가 세력이다. “신속한 선고보다 공장한 판결이 중요하다.”(국민의힘 권선동 원내대표)

“헌재는 헌법을 수호하고 국가가 존재하기 위해서 존재하는 곳인데 만약 선고가 늦어지면 이 혼란이 어디로 가겠냐.”(​더불어민주당 박지원 의원) 헌재를 향한 진영들 목소리가 거세다.

트럼프의 오락가락 관세정책 말 한마디에 세계 금융시장이 급변동하는 대 격변기에 헌재 앞의 충돌 양상은 ‘우리 모두의’ 앞날을 밑모를 수렁으로 빠지게 만든다. 진영간 대치는 양극단의 세력 중심으로 더 격화되고, 민생 현안은 표류할 게다. 탄핵심판 전보다 심판 후의 시간이 더 우려된다. 그래서 ‘국회는 헌재의 탄핵심판 결정에 승복한다’는 정치권의 대 국민 약속이 절대 요구된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최근 한 대담에서 ‘헌재 판결에 대해 양당 모두 승복 메시지를 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질문에 “민주공화국에서 헌법 질서에 따른 결정을 내리면, 승복하지 않으면 어떻게 하겠느냐”며 “당연히 승복해야 하고, 승복해 왔다”고 답했다. 국민의힘 권영세 비상대책위원장도 13일 “이미 헌재 결과에 승복하겠다는 말씀을 드렸다”고 전했다. 미래세대에 대한 기성세대의 약속과 책무가 헌재 심판이 어떻게 나오든지 지켜지길 바란다.

“주문, 피청구인 대통령 ‘윤석열을’...” “주문, 피청구인 대통령 ‘윤석열의’...” 역사는 과연 어떤 ‘조사’를 쓸 것인가. 헌법 질서를 지키는 상식의 나라는 어떻게 다가 올 것인가. 그래 내일은 봄이다. 꽃이 핀다.


■명재곤은 헤럴드경제, 뉴스핌, 브릿지경제 등 언론사에서 30여년 간 기자 및 데스크로 활동했다. 석재조합에서 청와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영역을 취재하며 소통해 왔다. 소비자들 입장에서 세상을 들여다 보는 편이지만 한때 기업에서 일한 터라 공급자 처지도 이해한다. 경제나 정치에서 극단을 멀리하려고 노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