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제약산업의 최대 화두는 단연 '비만치료제'다. 특히 장기지속형 주사제가 기존 ‘주 1회 투여’ 패러다임을 넘어서는 기술 혁신의 중심으로 부상하면서 전 세계 산업 구조와 시장 판도에 변화를 예고하고 있다.
기존 GLP-1 계열 약물인 노보노디스크의 ‘위고비’와 일라이 릴리의 ‘마운자로’는 각각 평균 15~26%의 체중 감량 효과를 입증하며 블록버스터 제품 반열에 올랐다. 이들 약물은 2025년 1분기 기준 각각 3조7000억 원, 3조1400억 원의 매출을 기록하며 시장을 양분하고 있다. 하지만 ‘주 1회 자가주사’라는 제형 한계는 여전히 복약 순응도 측면에서 약점으로 지적돼 왔다.
이에 따라 최근 글로벌 제약사들은 ‘월 1회’, ‘분기 1회’ 투여만으로 동일한 약효를 유지할 수 있는 장기지속형 주사제 개발에 본격 착수하고 있다. 이 제형은 자가주사에 대한 부담을 줄이는 동시에, 복약 지속률을 획기적으로 향상시킬 수 있어 비만치료의 새로운 기준으로 주목받는다. 실제로 암젠의 ‘MariTide’, 노보노디스크의 ‘CagriSema’ 등은 각각 임상 2상에서 평균 20% 이상의 체중 감량 효과를 보이며 치료 효능과 편의성을 동시에 입증했다.
“장기지속형 제형은 단순한 약효 개선을 넘어 환자의 치료 지속률을 결정짓는 핵심 요소가 되고 있다”며 “복약 순응도를 높일 수 있는 기술이 향후 비만 치료제 시장의 주도권을 가를 것”이라고 그로쓰리서치 강유민 연구원은 분석했다.
이 같은 변화의 중심에는 ‘제형 혁신’이라는 기술적 진화가 있다. 복약 편의성과 장기 복용 가능성은 만성 질환 치료에서 결정적 변수로 작용하며, 이는 치료 접근성과 시장 확장을 동시에 가능케 한다. 단순히 자주 맞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약물의 반감기를 연장하고 체내에서 일정 시간 약효를 지속적으로 유지시키는 기술이 핵심이다.
글로벌 시장에서 이 기술을 선도하는 국가 중 하나가 바로 한국이다. 펩트론의 ‘SmartDepot’, 인벤티지랩의 ‘IVL-DrugFluidic’, 지투지바이오의 ‘InnoLAMP’, 한미약품의 ‘Lapscovery’ 등 국내 기업들은 미립구 기반 약물전달 기술을 바탕으로 장기지속형 제형 플랫폼을 확보하고 있다. 미립구 방식은 펩타이드 약물의 단점을 보완하면서도 생분해성 고분자를 활용해 약효의 안정적이고 지속적인 방출을 가능하게 한다.
특히 국내 기업들은 과거 다케다의 1세대 기술을 넘어서 높은 약물 봉입률과 방출 제어 능력을 바탕으로 글로벌 빅파마의 기술 도입 요청까지 이끌어내고 있다. 실제로 디앤디파마텍은 PEGylation 기술을 활용한 장기 지속형 주사제 DD01을 통해 MASH 및 비만을 대상으로 한 미국 임상을 진행 중이며, 펩트론은 자사 미립구 제형의 상용화 경험을 바탕으로 글로벌 기술 수출과 공동개발을 추진하고 있다.
시장 전망도 밝다. 모건스탠리는 글로벌 비만치료제 시장이 2024년 150억 달러에서 2030년 770억 달러로 약 5배 확대될 것으로 내다봤다. 업계는 2026년을 기점으로 장기지속형 제형이 대거 상용화되며 시장 판도에 근본적인 변화가 일어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기술·임상·생산 역량을 아우르는 종합 경쟁력을 갖춘 기업만이 향후 시장의 승자가 될 것”이라며, “특히 제형 기술력에서 강점을 가진 한국 기업들이 글로벌 무대에서 전략적 파트너로 급부상하고 있다”고 강유민 연구원은 덧붙였다.
무엇보다 GLP-1 계열 치료제는 비만뿐 아니라 제2형 당뇨, 지방간, 심혈관 질환, 심지어 알츠하이머와 같은 신경질환으로 적응증 확장이 가능해 단일 플랫폼 기술의 경제적 파급력이 크다. 이는 제형 혁신이 단순한 복약 편의성 개선을 넘어 치료 영역 전반의 구조를 바꾸는 핵심 변수로 작용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결국 향후 비만 치료제 시장의 성패는 ‘어떻게 복약할 것인가’라는 방식에 달렸다. 제형을 혁신하고 이를 실제 임상과 대량 생산에 연결할 수 있는 ‘end-to-end’ 역량이 향후 시장의 게임체인저를 결정지을 핵심 요소가 될 것이다. 한국 기업들이 이러한 변화의 중심에서 글로벌 기술 수출을 본격화할 경우, 국내 바이오 생태계 전반에도 획기적인 성장 기회가 열릴 전망이다.
■ 필자인 한용희 그로쓰리서치 연구원은 투자자산운용사 자격증을 보유하고 있으며, SBS Biz, 한국경제TV 등에 출연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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