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비만치료제 시장의 무게 중심이 빠르게 이동하고 있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주사형 GLP-1 계열 치료제가 압도적으로 시장을 주도했지만, 이제 흐름은 명확하다. 주사에서 알약으로. 제형의 변화는 단순한 편의성 차원이 아니라 환자 순응도, 장기 복용 지속성, 나아가 치료 패러다임 전체를 흔드는 변곡점으로 작용하고 있다.

비만은 고혈압이나 당뇨처럼 장기 관리가 필요한 대표적 만성질환이다. 그러나 기존 주사제는 환자에게 지속적인 부담을 줬다. 주 1회 자가주사 방식이 도입되면서 과거보다 편리해졌다고 하지만, 여전히 ‘주사 바늘을 찌르는 행위’는 환자들에게 심리적 장벽이었다. 조사에 따르면 약물 투여 선호도를 묻는 질문에서 10명 중 6명 이상이 경구 복용을 선호한다고 답했다. 이는 효과가 동일하다면 환자들이 주사제보다 알약을 선택할 가능성이 훨씬 크다는 의미다.

그로쓰리서치 강동재 연구원은 “비만은 단기간의 치료로 끝나지 않고 오랜 기간 약물을 복용해야 하는 만성질환이다. 따라서 환자가 불편함을 최소화하면서 꾸준히 약을 복용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치료 성과의 핵심”이라고 강조했다.

편의성은 단순한 기호 문제가 아니다. 비만 치료에서 복용 지속성은 치료 성패를 좌우하는 핵심 요소다. 만성질환 환자는 생활 속에서 오랜 기간 약물을 복용해야 하므로, 불편이 누적되면 치료 중단율이 높아진다. 경구제는 간편한 복용법과 휴대성 덕분에 환자가 스스로 치료를 이어갈 가능성을 높여준다. 제약사들이 주사제보다 알약 개발에 속도를 내는 배경에는 바로 이러한 환자 행동학적 요인이 자리하고 있다.


이 같은 흐름은 다른 질환에서도 이미 입증됐다. 다발성경화증 치료제 ‘길레니아’는 주사에서 알약으로 전환되며 시장 판도를 바꿨다. 경구제로 전환되자 환자의 재발률이 절반 이상 줄었고, 치료 효과도 개선됐다. 결과적으로 ‘길레니아’는 출시 직후 블록버스터 약물로 성장했다. 이 경험은 비만치료제 시장에서도 경구제가 주사제를 대체할 수 있음을 강하게 시사한다.

더욱 주목할 점은 비만이라는 질환의 특성이다. C형 간염처럼 완치가 가능해 시장 자체가 축소되는 역설이 발생할 가능성이 낮다는 점이다. 비만 치료는 단기 성과가 아니라 장기 관리가 필요하다. 따라서 경구제가 도입되면 주사제와 경쟁하기보다 함께 시장을 확장할 가능성이 크다. 이는 글로벌 빅파마들이 경구제에 집중하는 가장 큰 이유이기도 하다.


국내 제약사들도 이 흐름에 발맞춰 발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일동제약 자회사 유노비아는 경구용 GLP-1 계열 후보물질 ‘ID1156’을 개발 중인데, 초기 임상에서 4주 만에 최대 6.9% 체중 감량 효과를 입증하며 시장의 주목을 받았다. 디앤디파마텍은 미국 멧세라와 협력해 경구제 전환 플랫폼 ‘ORALINK’를 기반으로 기술이전을 성사시키며 글로벌 진입을 앞당기고 있다. 이외에도 동아쏘시오그룹, 인벤티지랩, 삼천당제약 등이 각각 신약 개발, 플랫폼 기술, 제네릭 개발 등 다양한 전략으로 경구용 시장에 뛰어들고 있다.

강동재 연구원은 또 “국내 제약사들이 경구제 전환 기술을 확보한다면 단순히 내수 시장을 넘어 글로벌 기술이전과 협력의 기회를 확대할 수 있다. 이는 장기적으로 한국 제약 산업의 위상을 높이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궁극적으로 경구용 비만치료제의 성공 조건은 두 가지다. 첫째는 주사제와 맞먹는 체중 감량 및 혈당 개선 효과다. 둘째는 환자가 꾸준히 복용할 수 있는 편의성이다. 의학적 효과와 생활 속 편의성이 동시에 충족될 때 비만치료제는 진정한 혁신이 될 수 있다.

주사에서 알약으로의 변화는 단순한 제형 혁신을 넘어 환자 중심 치료로의 진화를 의미한다. 비만 치료의 미래는 더 이상 병원 진료실의 주사기에 머물지 않는다. 환자의 손안에 들어온 작은 알약이 치료 패러다임을 바꾸고, 나아가 시장의 질서를 새롭게 쓰고 있다.


■ 필자인 한용희 그로쓰리서치 연구원은 투자자산운용사 자격증을 보유하고 있으며, SBS Biz, 한국경제TV 등에 출연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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